첫 메일을 드립니다. 무엇을 보내야 하나 메일을 드린다고 하고 일주일 동안 고민했어요.마음먹고 종이를 펼쳐두고 무언가를 끄적여보기도, 나를 중심에 두고 가지를 뻗어가며 마인드맵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무언가가 잘 나오지 않았어요. 낮에는 그렇게 풀리지 않는 것을 붙들고 있다가 금세 밤이 되고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엇을 하면 좋을까 또 생각만 하다 잠들곤 했습니다. 잘 풀리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의 뉴스레터를 참고삼아 보기도 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더 안으로 숨고 싶어졌어요. 자꾸 비교가 되고 뭉뚱그려 정해놓은 나의 것이 특별하게 보일 리 없었죠. 왜,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하고 싶어서'로 바로 나왔지만 어떻게, 무엇을,에 대한 것은 아주 빈약했어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을 두고 이렇게 고민할 일인가 싶어 가볍게 생각한 탓도 있을 테고 이것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일상의 뉴스레터를 보며 그저 나도 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자신감이 들었던 모양이에요. 나 역시 툭 치면 펑 하고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그렇게 빈약한 일주일이 지났어요. 저는 웬만하면 약속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뱉은 말에 책임을 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에 여러분께 뱉은 말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게 오늘이에요. 무언가를 보내놓아야지만 저는 오늘 가볍게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거예요. 제대로 된 콘텐츠가 아직 없는 것 같은데 보내는 게 맞을까, 제대로 무언가를 정하고 보내는 게 맞는 것이 아닐까. 역시나 또 고민스러운 문제이지만 생각해 보면 제대로 완벽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싶어요. 완벽한 준비와 완벽한 시작이란 없고, 내가 시작하면 그게 시작점이 될 테니까. 그리하여 무엇이라도 제게 제일 큰 고민은 무언가가 '정해지지 않았다' 가 안 풀리는 포인트였는데 그렇다면 저는 '정해지지 않은 것'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보거나 듣거나 읽거나 사거나 한 어떠한 것들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자유로운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어느 날은 가고 싶은 전시나 축제, 공간, 소개하고 싶은 콘텐츠, 알고 싶은 작가 등등에 대해 보내드릴 거예요. 어느 날은 하나, 어느 날은 두 개, 세 개의 주제가 묶여 보내질 수 있겠죠. 이것은 제가 만들어가는 공간이기에 제 마음대로 꾸려가 보려고 해요. 메일을 여실 때 랜덤박스를 연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서두가 참 길었습니다. 오늘 보내드릴 것은 제가 본 책 열화당의 <미술관에 갑니다> 책이에요. 부모가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서 현대의 작품을 보며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된 책인데요. 책 설명을 보면 '5세 미만용 배움책'이라고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책에 연령을 두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5세 이상이 읽어도 충분히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미술을 보며 알쏭달쏭했던 부분을 이렇게도 풀 수 있구나 싶어 재미있기도 했고, 외국스러운(!) 그림체와 종이의 질감, 손에 쏙 들어오는 판형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쓸데없는 tmi지만 제가 배송받은 책 맨 뒷장이 거꾸로 붙여져 있었어요. 이것은 분명 불량일 테지만 재미이고, 특별함이다,라고 생각하여 교환하지 않고 가만히 가지고 있으려고요ㅎ) 이 책의 모든 장에는 '새로운 낱말'이 있습니다. 제가 보여드리는 이 14페이지에는 '그리다' '하다' '하지 않다'라는 세 낱말이 있어요. 이렇게 다 커서는 흩어진 단 하나의 낱말에 집중하는 일은 참 드물잖아요. 나는 무언가를 '하는' 쪽에 있는 사람인지 '하지 않는' 쪽에 있는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페이지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목에 있는 '완두콩'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해요. 사실 오늘이 제가 정한 마감일이었기에 일단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책상 위에는 샘플 크림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완두콩(두번째 tmi: 아이소이_아이 앤 페이스 크림)이었어요. 완두콩.. 완두콩. 완두콩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는 완두콩을 좋아하지, 완두콩, 완두, 이름도 참 귀엽군.. 하며 떠올리게 된 것은 옛날 짜장면 위에 올려진 몇 개의 완두콩이었어요. 새까만 짜장면 위에 올려진 완두콩은 아주아주 귀여운 포인트가 되죠. 맛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하는 작고 귀여운, 확실한 존재입니다. 작은 욕심이 있다면 그런 것이었어요. 저의 메일이 완두콩 같다면 좋겠다. 새까만 짜장면 같은 일상에 점점이 박혀있는 초록빛이 되면 좋겠다. 있으면 좋은 것, 적당히 잘 버무려져서 맛있고 멋있는 일상을 만드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런 메일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첫 편지라 글이 길었습니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D 또 만나요, 안녕! PS 뜨거운 날씨 뒤에는 비소식이 있네요, 조금 지치는 요즘이지만 우리 몸도 마음도 잘 챙겨보아요. :) |
✦ (정)혜련이가 보내는 편지, HYEPEA LE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