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표를 끊었다.
일기장에 적고 보니 끊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새삼스러웠습니다.
'끊다'라는 것이 역시나 새삼스러워 사전에 찾아보았습니다.
우리가 '끊다'를 쓰는 경우는 대부분 무언가를 멈추게 하거나 못하게 하거나 중단하는, 그런 뜻으로 많이 씁니다.
'끊다'의 1번에서 9번까지의 뜻이 그러합니다.
실을 끊고 술을 끊고 전기를 끊고 신문을 끊는..
옷감이나 표 따위를 사는 것. 그것은 10번째에 있었어요.
착착착 가위로 옷감을 끊어내거나 절취선이 표시된 종이를 두두둑 뜯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어쩌다 끊다는 이런 뜻까지 포함하게 됐을까.
그러나 저러나 어쨌든 끊어서 사게 된 것은(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면) 오로지 내 것이 됩니다.
비행기 티켓도 모바일로 받을 수 있지만 저는 종이 티켓을 선호합니다.
이곳의 일상을 잠깐 끊어내고, 절취선은 뜯어지고, 그렇게 여행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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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여행이 뭣이라고 그렇게 안절부절, 눈치를 보나. 여행을 특별한 보상처럼 생각지 않고 훌쩍 떠날 수도 있다.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여행 전날 밤엔 잠 못 드는 저이고.
마음먹은 대로 쉽게 달라지지 않고.
며칠 전 교토에서 묻지마 살인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보고 여행 가기 전부터 내내 불안해하고, 결국은 교토에 가서까지 사람들을 내내 신경 쓰며 다녔습니다.
저 사람은 안전한가 여기는 안전한가 별일 없겠지 없겠지.
그런 불안이 내내 꿈틀거려 한껏 즐기지 못하는 내가 조금 괴로웠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창밖을 보니 카모강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아빠와 아이가 산책을 나온 듯했어요.
아이는 작아서 아빠의 무릎 높이만 할까요.
여기서 보면 아이는 쌀알같이 작습니다.
아빠는 아이 사진을 찍어줍니다.
아이는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지고 아빠는 아이를 얼른 일으켜 무릎의 먼지를 털어줍니다.
어른은 아이에게 그런 존재구나 싶었고, 작은 생명을 보니 너무나 귀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냥 그런 풍경을 보는 것이 벅차고 좋았습니다. 무성영화 같은 풍경.
내가 너무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에는 오반자이 식당에 갔습니다.
(오반자이는 일본 가정식으로 평소에 먹는 반찬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정갈하고 깔끔하게 담겨 나오는 오반자이 한 상은 먹을 때마다 만족하게 됩니다.)
우리가 저녁 첫 손님인 듯했고, 뒤이어 커플이, 뒤이어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이 차례차례 들어옵니다.
평온한 식당에 앉아 그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에 섞여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선함이 이긴다. 선함이 이긴다.
그런 마음으로 자꾸 올라오는 불안을 누르고.
숙소에는 일찍 들어왔습니다.
이런 여행.
마치 여기 사는 사람의 어느 주말 같은 여행.
여행의 동선을 대략 그리면 큰 네모.
그 이상을 벗어나지 않은 그런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