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월요일.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열리는 <도넛을 나누는 기분> 북토크.
가고 싶다 생각했는데, 제가 보았을 땐 이미 매진이더라고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것에는 운과 타이밍이 중요하니까. 뭐 어쩔 수 없지 생각하려는데.
"일단 매진입니다. 취소표가 나오겠지요. 노크해 보듯 무시로 들어와 보심 분명 구하실 수 있을 거예요"라는 문구에 마음이 훅.
저는 정말 시간 나는 대로 링크에 들어갔어요.
25명의 독자들은 단단하게 움직이지 않다가 어느 날 툭, 표가 풀리더라고요.
운 좋게 표 하나를 잡았습니다.
봄이 왔나 싶었는데, 이번 주 며칠은 겨울이었잖아요.
내복을 챙겨 입고 나갔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어 걷기로 했어요.
평일인데다 날이 추워서인지 한산했습니다.
마로니에 공원 지나 대학로를 걸었습니다. 곳곳에 붙어 있는 공연 포스터를 구경했습니다.
이곳은 확실히 또 이곳만의 분위기가 있고, 연극 보러 왔던 예전 기억들이 문득문득 떠오르는데 꽤 오랫동안 오지 않게 되었고.
올해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는 것.
그렇게 슬슬 걷다가 서점으로 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시간이 남아서 1층 동양서림에 있는데, 2층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와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느긋하게 들어가지 못하는 나.
시간이 거의 다 돼서야 나선형 계단을 올랐습니다. 사람들 틈에서 오늘 행사하는 시집을 한 권 집어 바로 계산대로 향했어요.
계산대에 유희경 시인과 오은 시인이 계셨어요. 으앗 속으로 놀랐어요. 저 요즘도 오은 시인이 진행하셨던 지나간 책읽아웃 방송 듣고 그러는데요..
그런 말은 하지도 못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가방에 카드지갑이 안 보여서 허둥지둥.
이럴 때 왜 저에게는 침착함이나 여유, 그런 게 사라지는 건지.
"천천히 하세요." 두 분 중에 한 분이 그렇게 말씀해 주는 걸 가르마로 들었습니다.
다행히 카드 지갑은 가방에 고스란히 있었고.
서점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기는커녕, 서둘러 북토크 공간으로 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의자에 앉아서야 조금 생기는 여유.
이곳에서 하는 낭독회를 몇 번 영상으로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오프라인 공간으로 와 참여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도넛을 나누는 기분> 책은 창비청소년시선 시리즈 10주년, 50번 시집 출간을 기념해 20명의 시인이 쓴 시절시집.
오늘 만나 내 손에 쥐어진 이 책의 표지가 참 근사하여 기분까지 근사해지는 책이었습니다.
행사는 시작되었고, 책상 위로 세 분의 말들이 흘러갑니다.
준비해 간 노트와 펜이 있었는데도 많은 것들을 적지는 못했어요.
행사 중간쯤, 창밖에 눈이 내렸어요.
3월의 눈. 시를 낭독하는 시인들은 모를 풍경을 나는 보고 있었습니다.
손을 조심스레 들고 밖에요, 눈이 내려요.. 그렇게 말해도 오와 그러네요, 해줄 것 같은 분위기라고 생각되지만.
어 눈, 조용히 뱉은 내 말을 제 옆자리에 앉은 분은 알아채셨고.
그때에 저는 시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안에서는 시를 나누고. 밖에서는 눈이 내리는.
가끔 그렇게 다가오는 꿈같은 풍경에 잠시 잠깐 멍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덧.
시작 전, 무심코 펼친 책에서 미소 지었던 문장을 적어봅니다.
시인의 시 끝에 시작노트가 있는데요. 그곳에 있는 문장 중 일부입니다.
귀여운 스티커를 어디에 어떻게 붙일지…… 그런 궁리를 하는 게 나는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키링을 가방에 걸고, 어떤 지비츠를 크록스에 매달 건지 정하는 일로 삶에게 별명을 불러 줄 수도 있다고 믿으면서요.
-김소형, 김현, 민구, 박소란, 박준, 서윤후, 성다영, 신미나, 양안다, 유계영, 유병록, 유희경, 임경섭, 임지은, 전욱진, 조온윤, 최지은, 최현우, 한여진, 황인찬, 《도넛을 나누는 기분》, 창비교육, 66p. (서윤후 시인의 시작노트 중에서)
무거운 비장함은 내려놓고, 제법 가벼운 나만의 궁리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 켜진 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뛰느냐 마느냐, 인스타 광고에 홀려 들어간 사이트에서 인공향이 나지 않는다는 아카시아 향 디퓨저를 살지 말지, 이번 주 아빠 칠순 생신에 꽃바구니 축하 메시지에 뭐라고 써야 할지, 그런 궁리를 했습니다.
-덧에 덧.
책 제목 <도넛을 나누는 기분>을 쓰려다 '도넛을 나는 기분'이라 잘못 썼는데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행사 끝나고선 오은 시인께 수줍게 다가가, 팬이에요 하며 가방 속에 있는 자두 맛 사탕을 드렸습니다. 하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