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완두콩 스물한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 손끝에 남아있는 아쉬움 가을에 봉숭아 물을 들였어요. 열 손가락을 랩과 얇은 비닐로 꽁꽁 싸맨 뒤 둔탁한 손이 된 채로 갑갑함을 견디며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물이 들까 하는 궁금함과 기대감과 설렘이 뒤섞여 불편함 따위를 쉽게 이겨버렸지요. 아침이 되어 퉁퉁 부은 손을 해방 시켜주며 한 꺼풀 한 꺼풀 비닐을 벗기는데... 어라. 이런. 이게 아닌데. 오랜만에 들인 봉숭아 물은 기대보다 실망이 커서 제 입에서는 탄식만 흘러나왔습니다. 짙고 고르게 물들 줄만 알았던 봉숭아 물은 생각보다 예쁘지 않았고, 손톱 위에는 의도치 않게 물 빠지는 옷과 함께 돌린 빨랫감의 무늬 같은 희한하고 요상한 색이 새겨져 있었어요. 봉숭아 물의 큰 단점은 그전의 손톱 색으로 되돌릴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것임을 오랜만에 다시 자각하며 살짝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매니큐어였다면 아세톤으로 벅벅, 흔적도 없이 지우고 말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손톱을 며칠 내내 노려보며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되돌릴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염색은,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손톱 주변 손가락 살을 원래대로 돌려 놓았고, 며칠 뒤에는 손톱 위에 물든 희끄무레하던 봉숭아 물도 아주 자연스럽게 섞여 예쁘게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지하철에 있는 길쭉한 봉을 휘어잡고 있을 때마다, 자라나는 손톱을 자를 때마다 혹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이렇게 내가 내 손톱을 자주 본 적이 있었나 싶게 제 손톱을 자주 쳐다봤고 자주 흐뭇해했습니다. 손톱은 깎아도 깎아도 어김없이 자라났고 손톱을 꽉 채웠던 봉숭아 물은 크기가 점점점 작아지더니 이제는 손가락 몇 개 손톱 끝에서만 아주 얇고 가늘게 머물러 있습니다. 괜히 아쉽습니다. 열 손가락 위에서, 내 가장 가까이에서, 점차 사라지는 것을 이렇게 훤히 다 보고 있어서 더 그런가 봅니다. 설렘을 가득 안고 손톱에 꽃물을 들이는 번거로움은 하룻밤 새 아쉬움의 마음이었다가 시간이 지나자 아주 흐뭇하게 바뀌었고 아름다운 정이 들어 보내주기 싫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대설'이었더라고요. 아직 올해 첫눈을 보지 못했는데 소설을 지나 대설이었다니. 봉숭아 물이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 귀여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내려온 건지, 제 눈으로 보는 명확한 첫 눈이 오는 날 손 끝에 봉숭아 물은 남아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랑은 이루어 잘 살고 있으니 그저 올겨울에 아픈 일 없기를, 기쁜 일 가득해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웃음과 더불어 재복도 많이 들어오기를 세속적인 것들까지 바라봅니다. 손끝에 남아 있는 희미하지만 확실한 존재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달력의 맨 마지막 장에서 느끼는 12월의 감정과 아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 겨울에 생각나는 그림책 날씨가 제법 추워졌을 때, 딱 생각나는 책이 있었어요. 바로 <눈사람 아저씨>입니다. 표지부터 참 포근합니다. 이 책을 알고만 있다가 얼마 전에 구매해 보게 되었는데요. 이 책은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어느 날 눈사람을 만들고 잠이 든 소년에게 눈사람 아저씨가 찾아옵니다. 소년과 눈사람 아저씨는 집 안을 돌아다니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눈사람 아저씨는 소년의 손을 잡고 눈 내리는 밤을 훨훨 날기도 해요. 한겨울에 펼쳐지는 두 사람의 우정은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합니다. 표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색연필로 그려져 풍부한 질감을 볼 수 있으며 부드러운 그림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추운 겨울, 온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추천해 봅니다. *위 책을 만든 레이먼드 브릭스(b.1934)는 영국을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입니다. <곰>, <눈사람 아저씨>, <에델과 어니스트> 책 등을 비롯, 20권 이상의 그림책을 만들었으며 41년간의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그린 <에델과 어니스트>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레이먼드 브릭스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북극곰에서 나온 <레이먼드 브릭스>책도 함께 슬쩍 추천해 봅니다. 📃 내 책 속 한 문장 "내 책 속 한 문장"은 (2020.12.28 - 2021.12.31) 코로나 기간 동안 서울 시민들의 독서생활은 어땠는지, 한 해 동안 시민들이 읽고 선택한 책 속 한 문장을 온라인상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점을 찍으면 선이 이어지고 문장이 만들어집니다. 온전한 참여형의 사이트가 재밌습니다. 나만의 한 문장을 만들어보고 싶다면, 사이트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저는 "왜 즐거운 내일은 깊이 좋은 모퉁이를 행복하기로 좋은 우리의 어디엔가"가 보였는데요. 이것을 저는 제 맘대로 다시 풀어 "즐거운 내일은 모퉁이를 돌면 어디엔가 우리의 행복이 있을 것이다"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 🎼 요즘 가장 자주 들었던 곡 John Legend - You Deserve It all ♬ 당신은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일년 내내 잘 해 왔잖아요. 몇 주 동안 존 레전드의 You Deserve It all을 가장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캐럴 느낌이 물씬 나지만 캐럴에서 자주 반복되는 크리스마스, 징글벨, 미슬토, 산타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아요. 캐롤의 공식 같은 단어들을 비껴가는 듯해도 캐럴의 기분은 온전히 느낄 수 있어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 모두에게 기분 좋은 박자로 잘 해왔다고 말해주는 곡이에요. 흥겨운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둠칫둠칫 신나는 이 곡을 들어보세요 :) P.S. 여러분, 저는 얼마 전부터 제 머리카락을 빗어줍니다 하루에 한 번쯤 나를 위해 거울 앞에 서서 집에 있는 가장 좋은 빗으로 20번 이상을 슥슥 빗어줘요. 그러면 괜히 머릿결도 고와지는 것 같고 내가 나를 쓰다듬어주는 느낌에 기분까지 더불어 조금 좋아집니다. 여러분은 기분을 좋게 해주는 나만의 작은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아무쪼록 촘촘히 기분 좋은 일이 많은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mind_ryeon@naver.com 수신거부 Unsubscribe |
✦ (정)혜련이가 보내는 편지, HYEPEA LE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