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동과 동 사이 나무들이 있고 그 위에 쌓인 눈이 보여요.
누군가 하얀색이 어떤 색이냐고 물으면, 잘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입니다.
바람이 세게 불었는지, 방금은 나뭇가지에서 우수수 눈이 떨어졌어요.
움직이는 풍경화가 따로 없습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을 지나, 비가 내리고 싹이 튼다는 우수도 지나 이제 정말 봄인가 싶었는데 이렇게 눈이 와버리니... 사실 어떤 기분이 드냐면 음... 아직은 누워있어도 될 것 같아요.
일어나 기지개 펴고 부지런을 떨려고 했는데 아니 아직 겨울이야, 좀 더 자도 돼 토닥이는 것 같고 초조함을 눌러주며 안심시켜 주는 것 같아 조금 더 이불 속에 있고 싶어져요.
말 그대로 이불 속에 있고 싶은 날이긴 하지만 비유적으로요, 뭔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손을 녹이고 몸을 데우고 담요를 덮고 고민의 시간을 천천히 늘려도 괜찮을 것 같은 거예요.
왜냐면, 아직 이렇게 추우니까... 밖엔 이렇게나 눈이 많이 왔으니까요.
저는 요 며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뭘 조금만 해도 피곤하고 피곤해 소파에 누워있기 일쑤였어요.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찬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갔나, 그저 누워서 하루 종일 자고만 싶다 생각했어요.
그러다 유튜브에서 김창옥 강사가 나오는 유퀴즈를 봤는데, 누군가의 고민 상담을 해주시더라고요.
인생 노잼시기를 겪고 있어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는 고민이었는데, 김창옥 강사의 답변은 이거였어요. 어떤 책에서 보셨대요.
인생의 3단계가 있다고.
1. 열정기
이때 사람들은 착각을 한대요. 이 열정이 영원히 갈 것이라고.
근데 사람들 대부분은...
2. 권태기에 이른대요.
전에 의미 있던 일이 지금은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인데, 열정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쏟았던 열정만큼이나 권태가 심하게 찾아온다고 해요.
그리고 권태기 때 우리는 또 한 번의 착각을 하게 되는데,
이 권태의 마음 또한 계속 갈 거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권태도 영원하지 않대요.
그렇게 모든 것을 거친 뒤에 찾아오는 것이 마지막 숯불 같은 상태,
3. 성숙기라고 한다고요.
잦은 경험으로 열정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저의 모습이 익숙하긴 하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성숙이라는 단어는 아직 제게 아득하기만 합니다.
잔잔한 호수처럼 차분하고 평온한 날들에 저는 성숙이라는 말 대신 그 시기를 '잔잔기'라 부르고 싶어져요. ㅎㅎ
저는 분명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있었지만 어느새 다시 또 널브러져 있고. 햇살 같은 에너지가 그립기도 했습니다.
열정이 왔을 땐 기쁘게 맞이하고 권태가 왔을 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마음을 먹어야겠지만, 참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만큼이나 기분도 마음도 참 오락가락합니다.
열정과 권태는 상반되지만 이상하게도 커플처럼 친구처럼 한 쌍처럼 보이기도 해요.
저라는 집 안에 사는 열정과 권태.
열정이 큰 소리로 통화하며 거만해지려 할 때, 권태가 똑똑 노크하고 찾아오는 듯한 느낌.
권태가 밖에 한 발짝도 안 나가고 밥도 안 먹고 잠만 자려 할 때 잠깐 눈 뜬 사이 열정이 차려둔 밥이 눈앞에 있고, 잠깐 힘이 나면 둘은 함께 산책도 나가려나요. 열정과 권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도 같이 손잡고 가는 사이.
이 둘을 잘 데리고 살아야겠지요. 그러다 성숙을 만나려나요.
그러나 역시, 성숙이란 제게 아직은... 먼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