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은 설날에 만두를 빚습니다.
만두피도 만듭니다.
보드랍고 뽀얀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툭 뜯어 주물럭 주물럭 길게 모양을 만들고, 길어진 반죽을 도마 위에 올려 새끼손가락 마디만 하게 톡톡톡 썰어요. 그것을 다시 납작한 동그랑땡처럼 만들고는 도마 위에서 밀대로 슥슥슥 얇게 얇게 밀면 만두피가 완성되는데... 그것을 아빠가 혼자 시작하면 모양과 크기가 모두 제각각이에요. 그것을 지켜보던 엄마는 만듦새가 영 마뜩잖고...
이런 풍경도 몇 년째, 아빠는 여전히도 실력이 늘지 않아 결국 엄마가 올해도 도마 앞에 앉아 만두피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만든 일정한 만두피를 만두소가 든 대야 테두리에 툭툭 널어두면, 우리들은 하나씩 하나씩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두고 만두소를 채워요.
나는 언제부터 만두를 만들었을까, 떠올리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설날 연휴에 늘 당연하게 할머니 댁에 갔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큰 갈색 대야에 한가득 만두소가 있었고. (만두 만들기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명절 숙제(!)같았고..)
어쨌든 저는 할머니 곁에서 만두를 만들어서인지 내 만두는 할머니가 만든 만두를 참 많이도 닮았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모이는 식구의 숫자도 줄었고 대야도 작아졌지만 그때의 풍경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란 저는 우리 집에서만큼은 괜찮게 일하는 경력직이 되었지만...
만두를 사 먹는 건 어떨까, 연휴에 가족들끼리 어디 놀러 가면 안 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기 거실. 바닥에 앉아 테두리에 걸친 만두피를 걷으며 만두를 만듭니다.
만두를 만들어 쟁반에 쪼르르 차례대로 두면 엄마는 또 만두피를 만들다 말고 만두로 꽉 채워진 쟁반을 들고는 부엌으로 가 찜기에 만두를 찝니다.
수증기로 가득 찬 찜기 안의 만두는 목욕한 듯 뽀얘지고 투명해지고 그야말로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끈따끈 갓 만든 만두는 참 얄궂게도... 맛이 좋아요.
만두는 된장 고추장처럼 만드는 집마다 다른 맛을 내잖아요.
다행히도 우리 집 만두는 내 입맛에 꼭 맞습니다.
휴. 명절이 뭘까, 만두란 뭘까.
언제부턴가 명절은 즐겁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TV 같은 델 보면 명절은 신나고 즐거운 것처럼 나와 즐거워야 하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의 노동이 많이도 들어가는 명절을 아는 때부터 명절은 즐거움이 아니라 약간의 한숨이었습니다.
저는 명절이 반갑지 않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명절은 달갑지 않습니다.
한쪽으로 쏠린 노동과 수고로움이 들어간 풍경.
목소리를 내야 하는 사람이 이제 이렇게 말고 다르게도 해봅시다! 하고 나서주길 바라지만 우리 집의 명절문화는 쉽게 달라지지 않네요.
규모가 작아졌지만 한 끼의 차례상을 위해서 아빠와 엄마는 며칠 전부터 준비를 해왔을 테고.
그 수고와 노고에 핀잔과 잔소리를 끼얹기보다 저 또한 늘 해왔던 대로 조용히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제 앞에는 찐 만두와 완성 중에 있는 만두가 모두 있습니다.
약간의 밀가루가 묻은 손으로 호호 불어 먹는 만두는 참 맛있고...
오물오물거리며 다시 만두를 만듭니다.
만두가 터지지 않게 만두피 위에 적당히 만두소를 담을 것.
한 땀 한 땀 만두피를 잘 붙일 것.
갓 만든 촉촉한 만두가 서로서로 붙지 않게 다 만든 뒤엔 밀가루로 톡톡 마사지를 해줄 것.
검지와 엄지로 집게손을 만들어 펼쳐진 만두를 접어 오므릴 때는 실 없는 바느질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꼼꼼히 야무져야 하고 마무리까지 신경 써줘야 합니다.
그렇게 쟁반에 만두 하나하나를 옮겨 담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쟁반에 담긴 만두들은 참, 만드는 사람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글씨체처럼 내가 만든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게 재밌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4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본가에서 나와 남편은 낮잠 한숨은커녕 오후까지 일을 했지만, 그렇게 힘들어져서 뾰로통해지려다가도 먹을 것을 입에 넣고.ㅎㅎ
이러고 있는 나의 몸과 기분이 무척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러고 보면 또 그렇게 기분 나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선조들은 현재의 우리가 고생하라고 이런 걸 만든 게 아니라 식구들 모두 모여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일 텐데.
그러나 즐겁게 하려고 해도 노동은 노동.
이런 게 명절이지 싶어 순응하다가도 허리가 아파질 때쯤 무리하지 않고 그만하자고 했지요..ㅎㅎ
만두를 만들며 이것 참 복주머니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두를 복주머니라 생각하면 저는 올해 많은 복주머니를 만들었어요.
만두를 만들기도 하지만 빚는다고도 하지요.
빚는다는 말은 예쁘지만 빚는 것에는 정성이 들어갑니다.
숙성의 시간과 총총 썰어 넣은 영양가 있는 재료들이.
우리의 품이, 우리의 말소리와 간혹 터졌던 웃음소리까지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만두를 사서 먹을 수 있지만 그래서 편할 수 있지만 많은 과정들과 시간이 생략되겠지요.
그리하여 새해를 맞아 빚는 우리 집의 만두란...
여러모로 꽉 찬 만두. 생략이 없는 만두. 촘촘한 만두.
그리하여 아직은 그만둘 수 없는 음식인 것입니다.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