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혜련입니다.
완두콩 100번째 편지입니다.
세 자리 숫자, 동그라미가 두 개나 붙는 100이라는 숫자 앞에서는
괜스레 마음이 각별해졌어요.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갈 때의 기분이랄까요,
뭔가 기념하고 싶었습니다.
100회, 100회나 됐는데!
그래서 근사하고 멋진 말 하고 싶었는데, 그러니 힘만 들어가고 괜히 쓸 말도 더 안 나오고요.
그런 욕심 훌훌 털고 편안한 마음으로 쓰자 하고 마음먹다가 또 다음으로 미루게 되고 그랬어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는 한도 끝도 없어서 편지의 시작이 이렇게 어려웠어요.
잘 지내고 계셨나요?
오랜만에 인사를 드려요.
하핫. 그래도 100회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어요.
편지는 주고받고, 그곳 어딘가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도 괜찮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이번에도 책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1주년 기념 때 완두콩레터의 문장들을 모아 처음 책을 만들었고,
이번에는 그 이후 50번째 편지부터 99번째 편지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지난번보다 조금 도톰한 책이 되었어요.
작은 책갈피와 엽서, 그리고 편지를 함께 준비했어요.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신청 페이지를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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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저는 휴재 기간 동안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듣고 있었어요.
네 맞아요.
아쉽게도 이 방송은 얼마 전, 23년 만에 막을 내렸어요.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씩 팟캐스트로 챙겨 들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들려오는 종영 소식에 덜컥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친절한 주인장이 계신, 입맛 도는 맛깔스러운 요리를 내주는 아주 오래된 식당이 문을 닫은 것 같았어요.
많이 못 간 걸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네요.
무튼 저는 홀로 아쉬움이 많이 들어, 요즘에는 지난 방송들을 듣고 있답니다.
특히나 김창완 아저씨가 직접 쓰시는 오프닝 멘트가 참 좋아요.
(얼마 전에는 김창완 아저씨가 청취자들에게 답한 편지와 매일 아침 직접 쓴 오프닝을 엮은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주방 일을 하며 지난 2021년 7월 8일 방송을 듣고 있었는데요,
그 말씀이 참 좋아서 여기에도 소개해 보아요.
요즘 그런 얘기 많이들 하죠,
일상의 소중함, 평범의 재발견.
뭐 무심하게 바라보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도 하고
늘 곁에 있어서 존재감 없던 것들한테서 뭉클함을 느끼기도 한다는 말씀인데요,
오늘 아침에 저는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프닝을 쓰려고 제가 제 머릿속을 해찰하고 돌아다니는데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죠 근데,
오늘도 일상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찾아야지-
이러고 있는 거예요.
이거 뭔가가 잘못됐다 싶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내 몸의 컨디션 또는 내 기분, 이런 것 아랑곳하지 않고
일상의 기쁨이라는, 무슨 할 일 있는 것 같이 생각하는 건
기쁨과 행복이 아니라 강박이지요.
그저 지금 내 모습을 안아주세요, 거짓 없이.
그게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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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제가 저를 제일 미워하는 것 같아요.
못났다고 바보 같다고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저의 얼마 안 되는 동선에서 일어난 일들을 열거하며 뭐라도 했다, 그러면서 밤에 구차한 기분으로 일기를 썼어요. 어젯밤에도요.
무거운 마음으로 잤습니다.
오늘의 저에게는 또 다른 하루가 주어졌고 그래서 다시 태어났고 저는 고구마를 튀기다 말고 김창완 아저씨의 말을 듣고 뭉클해져서, 저는 저를 안아줬어요.
지금 그대로의 나를 안아주는 것, 그게 우선이라고요.
우선해야 할 건 무엇인지 모르고 내가 생각한 멋지고 근사한 나와 지금의 나는 거리가 있어서 그 간극에 자기혐오가 자라났었나 봐요.
멋지고 근사한 거 그런 건 뭘까요.
생각해 보면 용기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편지를 쓸 용기가 안 났던 모양이에요.
그저 거짓 없이, 여기까지 온 시간을 축하해 봅니다.
덕분에 우리 함께 여기까지 왔어요.
많이 많이 정말 많이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