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함께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아빠의 칠순을 맞이해서, 그게 올해인가 싶어 해외여행을 가는 건 어떨까 계획했는데
올해 아니시래요... 게다가 아빠의 진짜 생일과 주민등록 생일이 다르고요.
(또 게다가 만 나이 정책으로 나이가 헷갈리는 건, 저 하나인가요.. 이제 저는 제 나이도 헷갈리기 시작했어요..ㅎㅎ)
아무튼 해외여행 말이 나왔고, 엄마아빠오빠도 대찬성이어서 칠순 기념이 아닌 어느 날의 생신 기념이 되었지만.
그게 뭐 중요하겠나, 부모님이 더 나이 드시기 전에 가야겠다 생각하고 올겨울에 아빠 생신 즈음 날짜에 비행기표를 끊어놨는데 벌써 그날이 다가온 거 있죠.
시간은 가는 걸까요, 오는 걸까요.
무튼 그렇게 여행 당일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첫 해외여행 앞에서, 저는 또 역시 이런저런 잔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상한 꿈도 많이 꾸고요...)
제가 해야 할 여행 준비란 그저 걱정과 불안을 잠재우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아무 탈 없이 잘 다녀오겠지, 생각해도 이상하게 겁이 나요.
해외여행 앞에서 매번 반복되는, 걱정과 불안을 누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다행히 걱정이 무색하게, 일본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김포공항에서 출발하고, 엄마-아빠-오빠는 청주공항에서 출발.
우리는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가족끼리 해외여행이라니, 말처럼 쉬워 보여도 그게 참 쉽지 않았네요.
엄마와 일본 여행을 가고 싶어 돈을 모으던 20대의 저는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이유로 여행을 가지 못했고, 이렇게 십 년도 훨씬 지나 이제야 다 함께 여행을 왔습니다.
입국장을 빠져나와 공항 한가운데서 엄마아빠오빠의 얼굴을 봤을 때,
시간으로만 따지면 서울-부산 기차여행보다 덜 걸린 것인데 비행기 타고 이국 땅에서 보는 가족 얼굴은 몇 년 만에 보는 듯 반갑더라고요.
와락 껴안고 깡충깡충 뛰기.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교토로 넘어왔습니다.
여행 내내 비 소식일 것 같더니, 교토의 날씨는 맑고.
선글라스를 써도 눈부신 봄날이었습니다.
숙소에 짐을 놓고 가벼운 몸으로, 이제야 여행지에 왔다는 기분으로 식사를 하러 나왔는데.
그 앞에 벚꽃이 벚꽃이...
교토는 우리나라보다 이르게 벚꽃이 피고, 벚꽃 명소로 워낙 유명한 교토는 정말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운 좋게 이번 여행에서 만개한 교토의 벚꽃을 볼 수 있었어요.
한 걸음 두 걸음 더 가지 못하고, 엄마아빠는 멈추고 또 멈추고 사진 찍느라 바빴습니다.
가려는 식당에 브레이크 타임이 없었다면 숙소 근처에서만 한참을 있었을지도 몰라요.
점심을 배 통통 두드릴 만큼 먹고는 은각사에 가려고 버스를 타고, 은각사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렸는데... 정류장에서부터... 벚꽃이 활짝 피었더라고요.
히익, 꽃 봐라 꽃 봐라~
엄마아빠의 손은 벚꽃을 담느라 다시 바빠졌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여행을 오는 건가 보다 했어요.
엄마아빠가 우와우와 하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려고요.
여기에서 보는 벚꽃이 한국에서 보는 벚꽃과 크게 다르지 않고, 모두 다 똑같이 아름다워 크게 이국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여기는 교토.
잘 들리지 않은 언어들로 생경한 느낌.
낯선 땅을 걸으며 여행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잖아요.
가는 길에 더워져서 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구글 맵에, 가려고 하는 식당과 카페에 별표를 그렇게 많이 해두었는데 여기는 후보에 없던 가게.
우연히 들른 가게의 아이스크림 맛은 참 좋았습니다.
긴 나무의자에 쪼르르 앉아 콘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바깥 풍경은 역시, 벚꽃이었습니다.
며칠 이르게 왔거나 며칠 늦게만 왔어도 이렇게 만개한 꽃을 보진 못했을 텐데 말이에요.
요즘은 꽃의 때를 사람이 맞출 수 있는 게 아닌데 이렇게 작정한 듯 딱 맞춰 오게 돼서 참 신기할 따름이었어요.
그 밤에 저는 일기를 쓰면서도 믿기지 않았어요.
너무 행복해서요.
꽃길이란 이런 것인가 싶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엄마아빠와 꽃길을 걷다니 꿈만 같았습니다.
그다음 날 좁은 도보를 제일 뒤에서 오빠와 함께 걷게 되었는데 오빠가 제 옷을 슬쩍 잡아당기며,
“너무... 좋은 것 같애... 고마워어”
하더라고요, 그 말에 코가 시큰해져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습니다.
...
날씨 운은 첫날에 모두 다 쓴 듯
다음날엔 비가 왔고, 또 그다음 날은 몹시 추웠습니다.
아빠는 분명 초행길인데 자꾸 앞장을 서고.
우리는 내비게이션처럼 오른쪽이요 왼쪽이요 외쳤지만 그래도 해외에 나오니까요,
의지할 사람은 둘뿐이라는 듯 엄마아빠는 자주 서로의 손을 잡았고, 비가 온 덕분에 두 분은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어깨동무를 하고 걸었어요.
우리는 뒤에서 “이래서 여행을 자주 나와야 하나 봐~” 킥킥거렸지만,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 게 참 좋았습니다.
햇살이 비치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교토 곳곳에 벚꽃은 어딜 가나 피어있었고,
'나... 가족들이랑 교토에서 벚꽃 봤다...'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꽃을 보았고,
사진첩에 무수히 많은 꽃과 가족사진을 담은 채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잘 돌아왔습니다.
(미션 클리어!한 느낌과 함께.. 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