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첫날
● 5월 3일 / 금요일 / 날씨: 비
시드니 날씨가 좋다는 얘기는, 말로 사진으로 듣고 보고 했지만 나에겐 비교군이 없어서인지 비 오는 이 도시는 운치가 있었다.
날씨가 우울을 쉽게 데려올 순 없어.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여행자의 숙명(?).
그리 싫지 않다.
내일도 따뜻하게 입고 길을 나서야지.
● 5월 4일 / 토요일 / 날씨: 흐림과 비
여행을 오면 요일 개념이 사라지는 것 같다.
매일이 주말인 느낌.
오늘은 6시 반쯤 눈이 떠졌다.
● 5월 5일 / 일요일 / 날씨: 비에서 흐림
오늘도 12,000보 넘게 걸은 듯.
내일은 또 어떤 하루일까나, 잘 자야겠지.
지금은 비가 많이 내린다. 톡톡톡, 유리창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pm11:12
● 5월 6일 / 월요일 / 날씨: 해
발바닥이, 무릎이, 아프고, 피곤함이 몰려와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
"그래도 더 보고 싶어…" 그런 말이 애틋했다.
아쉬움 없는 듯 즐기는 듯해도 이 시간을 깊이깊이 추억할 것을 안다.
만지고 잡히고 보여도.. 오늘도 나는 꿈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 5월 7일 / 화요일 / 날씨: 흐림
오늘은 어제보다 흐린 느낌.
밤에 일기를 쓰면서도 하룻밤이 이틀같이 느껴진다.
여기는 멜버른이다.
● 5월 8일 / 수요일 / 날씨: 맑음
오늘은 사실 일기도 귀찮았다.
그냥 오늘 보고 느낀 것을 얌전히 몸 안에 넣고 흡수하고 싶은 날이었는데.
이 또한 다 까먹어버릴 것을 안다.
에메랄드 지역이랄까.
기차를 향해 손 흔들어준 어린이랄지, 그런 것들을.
● 5월 9일 / 목요일 / 날씨: 흐림과 비
피곤해 몸만 씻고 누웠다.
여행시간이 쌓이는 만큼 피로도 쌓이네.
아쉬운 체력, 내일은 낫기를…
이 방은 27층이라 그런가 바람 소리가 들린다.
● 5월 10일 / 금요일 / 날씨: 흐림
오다가다 봤던 '스파게티 트리'라는 식당에 가보기로 함.
구글리뷰에서 보고 가장 먹고 싶은 비주얼의 메뉴를 물어봤는데
가장 비싼 메뉴였네ㅎㅎ
● 5월 11일 / 토요일 / 날씨: 맑다가 흐림
(일기 쓰다) 울컥, 아니 왈칵 눈물이 나왔다.
남편이 눈치채서 왜 우냐고 묻길래
"너무 행복해서…" 하며 울었다.
● 5월 12일 / 일요일 / 날씨: 맑음
(1박 2일 차를 빌려 로드트립, 아이폰 메모에 씀)
오늘은 사실 월요일.
어제는 일기 안 쓰고 자뿟다
(...)
빨간 택시.
그의 말을 10퍼센트쯤 알아들었을까,
귀라도 트였다면 좋았을 텐데.
무튼 우리의 여행에 행운을 불어줬지.
파키스탄에서 온 소아과의사.
여기 온 지 4년 됐고.
가족들이 매우 보고 싶은.
a lot.
alone.
● 5월 13일 / 월요일 / 날씨: 흐리고 비
(역시 아이폰 메모에 단어 정도로 남긴 기록)
9시 준비
프렌들리 그로서리
왜케 좋지...
가서 이것저것 사고.
근처 바로 앞 카페에소
블루베리머핀 굿
Grassroots Deli Cafe
레몬머틀 아로마2개
비누 1개
그리곤 런던브릿지/
The Grotto
그리곤 달려
멈춰...
장관...
작은 마을 KFC Colac
산책으로 바로앞가게
Colac Art Supplies(엽서)
Murray St Market(빈티지 구경)
선물도 사고요...!
이제 (다시) 멜버른으로.
● 5월 14일 / 화요일 / 날씨: 맑음
지금은 멜버른 도서관이다.
실감이 나는가...
이틀째 일기를 못 쓰고 내 컨디션은 바닥이지만 여기에 다시 꼭.
의자에 앉아 이 오래된 나무를 느끼며 꼭 한번 책이든 일기든 뭐든 느껴보고 싶었다.
훗날 이걸 읽어보면 이 감동이 느껴질까...
이 멋진 곳에서...
과연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 무엇이라도.
이 글씨만큼의 시간이 담기는 것이리라.
● 5월 15일 / 수요일 / 날씨: 맑음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로.
이걸(일기장에) 손글씨로 쓸 일이 얼마나 될까.
여길 공연 보러 갈 일도.
무튼.. 계속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여기에 오다니!!
그런 생각뿐.
● 5월 16일 / 목요일 / 날씨: 맑음
언제까지고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었다.
중간중간 쉬어가기도 하며.
옆에 찰싹찰싹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이날의 파도는 참 건강하고 싱싱해 보였다.
매섭지도 무섭지도 않은 바다였다.
걷다가 판판한 절벽, 돌이랄까 그런 곳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걸었다.
오늘의 목표는 다른 게 없었기 때문에.
(…)
아쉬워진다. 이제 집에 가도 되겠다 싶었는데 매번 그 생각은 바사삭 사라진다.
매번 새로운 걸 보며 놀라고 좋아했다.
여행 마지막 밤
● 5월 17일 / 금요일 / 날씨: 맑음
너무너무 고마워요! 모든 것들이.
잘 있어요. 모두 모두. 공기와 바람 풍경.
사람과 동물과 새들과 아름다운 건축물들도.
안녕 안녕!
또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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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산더미 같던 빨래를 하다 호텔 조식에서 먹었던 토마토가 툭, 옷에 튀었던 흔적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부분을 세제 묻혀 비비고 세탁기에 넣고 빨았는데, 여전히 그 자국은 흐릿하게 남아 있더라고요. 사라지지 않은 자국이 아쉽지가 않아 미소 지으며 옷을 널었습니다.
첫 여행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 여행에서 하루하루 점점 더 멀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꿈이 아닌가 싶어, 나 좀 꼬집어 달라고 했던 그곳의 내가 멍하니 떠오릅니다.
바닥에서 한 5센티미터쯤 붕 떠오른 기분으로 공간을 누리고 벅찬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것 같아요. 짐을 정리하다가도 여기서 좋은 것보다 거기서 좋았던 것들을 자꾸만 떠올리고.
그러다 오랜만에 나간 산책길에서 빠삐코를 오물거리며 쉽게 행복해져버렸지만... 하핫.
이제는 일상에 착 붙어 야무지게 시간을 보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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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편지는 이렇게 사진과 글로 갈음합니다.
편지를 기다려주셔서, 내밀한 저의 이야기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다음 주의 편지는 오오, 벌써 5월의 마지막날,
31일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