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며칠 동안 물건을 버렸어요.
월요일엔 수면 바지를 버리고, 화요일엔 바디오일을 버렸습니다.
스마일이 아주 많이 그려져 있는 수면 바지는 버리는 순간까지도 내내 웃고 있어서, 입을 마음이 아니라 버릴 마음으로 그것을 들어 올릴 때 순간 미안(?) 했지만..
지난 겨우내 안 입은 바지는 올해 겨울에도 안 입을 것이 너무 뻔했기 때문에 과감히 버렸습니다.
갖고 있던 시간이 잘 떠오르지 않을 만큼 오래되었고, 몇 년 동안 가만히 옷장 안에 있었네요.
그것 말고도 내겐 도톰한 수면바지가 몇 개 더 있으니까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바디오일은 파리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산 눅스 바디오일입니다.
'파리에 가면 꼭 사 와야 할 목록!'
저는 그런 것에 귀가 팔랑거릴 때였어요.
그때만 해도 바디오일 같은 거 도통 몸에 발라본 적도 없으면서 남들이 좋다 하는 건 막 따라 사고 그랬는데요,
며칠 만에 돌아와서 사람이 잘 변하던가요, 그저 바디오일이란 게 이런 거구나 향은 이렇구나.
신기한 물건 샘플 대하듯 몇 번 발라보고는 자연스레 치워두게 되었죠.
병 디자인도 썩 맘에 드는 것도 아니었는데. (요즘 나오는 병 디자인과 꽤나 다른 디자인)
세 번의 이사를 할 동안 이 오일은 살아(!) 남았고.
내게 그렇게 특별했나 싶으면 그것도 아닌데, 왜 이리 오래 가지고 있었나 싶어요.
아마도 뭔가 이국의 물건을, 그것도 파리에서까지 가서(언제 또 가보겠나 그 나라를...?) 내가 직접 산 물건을 화장실에 두고 싶었던 은근한 허세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제겐, 버리는 순간까지도 내내 웃고 있었던 스마일 바지(허리의 흰색 부분이 옅은 회색이 될 때까지 갖고 있었던 그 바지)를 버렸을 때의 홀가분함과 과감함(!)이 남아있었고 그 느낌은, 하루에 하나씩 물건을 버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다시 보게 된 이 바디오일에게도 갑자기 어떤 미련과 허세가 필요 없어져 버렸습니다.
남은 오일을 버리려고 보니 병목이랄까요, 그곳을 열려고 하는데 도통 열리지가 않아서 스프레이로 분무되는 오일을 칙칙-뿌려가며 남은 오일을 소진했습니다. 버리기로 마음먹은 물건에는 야박함마저 들어 '끝까지 번거롭구나 너는...' 그런 생각도 했고요.
근데 오일의 향이 고스란히 새것처럼 나는 걸 보면 오일의 진짜 사용 기한은 얼마나 되는 건지, 놀랍습니다.
이거... 2014년에 산 건데. 십 년 됐는데.
이 지독한 화장품의 세계란...
수면바지 한 개와 바디오일을 버렸다고 해서 집 안의 무게가 줄었나 하면 그건 전혀 아닐 텐데요.
두 차례의 버림에서 제가 얻은 것은... 산뜻한 쪽의 이별.
시간에게나 계절에게나 사람에게나 거의 모든 것에 미련을 잘 부리는 사람으로서 물건에게만큼은 산뜻한 느낌표를 붙이며 그렇게 인사합니다.
고마웠다! 안녕 잘 가!
그러나 여전히- 이젠 쓰지 않는, 의미를 다한 오래된 물건이라도 바라볼 때의 마음에는 참 복잡한 것이 있어요.
아까워하며 아쉬워하며 연연해하는 마음.
그것들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데, 물건이 안 보일 때는 모르는데 꼭 그 물건을 보면 미련이라는 게 생겨요.
아직 여행의 여운이라는 것을 둥둥 안고 있는 사람인지라 요즘은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은 정말 많지가 않은데...
물건에게 미련일랑 그만 부리자.
가벼워지자, 가벼워지자.
그러나, 이런 저는 얼마 전 올여름엔 이것으로 나겠다! 마음먹으며 꽃무늬 남방 하나와 체크무늬 치마 하나를 구입했고...
그게 또 마음에 들어버렸고...
아아, 물건에 대한 결심이란 이렇게도 나약하게 허물어지는 것인가.
하루에 하나씩 버리면 뭐 하나~ 하루에 벌써 물건을 두 개나 샀는걸, 이렇게 허허실실로 제자리로 돌아온 저를 봅니다.
헛헛헛.
(tmi: 그나저나 10년이 지난 지금의 저는, 바디오일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