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정영선 조경가의 전시를 보았고요.
근처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한 뒤, 찻집에서 뜨끈한 대추차를 사 먹었습니다.
다시 국립현대미술관 부지로 들어와 벤치에 도착했습니다.
벤치에는 M자를 설치해 뾰족한 두 부분으로 칸이 생기고 그래서 앉을 수밖에 없었는데, 벤치에 벌러덩 눕고 싶은 사람이 저 하나는 아니어서 그렇게 해둔 걸까 마음대로 생각했어요.
약간은 아쉬운 채로 앉았지만 그래도 맑고 푸른 하늘과 저 멀리 북악산의 산세가 또렷해 기분이 산뜻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체력의 기복이 심해서 한 게 없는 것 같은 날에도 이상하게 피곤하고 그래요.
토요일 그 잠깐의 나들이에도 금세 체력이 방전되어 얼른 집에 들어와 쉬었습니다.
일요일까지 연달아 쉬자고 생각했는데,
찌뿌둥한 일요일에도 여전히 날씨는... 너무 좋은 거 있죠.
이래도 이래도 집에만 있을 테냐...는 기운으로요.
이제 이 시기를 지나면 맹렬한 여름이 성큼성큼 다가올 테고.
봄, 여ㅡ름, 갈, 결 이라는 한국의 사계절. 여름이 지나치게 길어진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만은 아니니까요.
이 시기를 잘 보내고 싶은 유난한 마음은 이 계절에 특히나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일요일에도 다시 밖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김밥 집에서 김밥 사고, 편의점 들러 컵라면 사고, 뜨끈한 물도 챙기고, 새우깡도 하나 사서 가방에 야무지게 넣었지요.
집에 있을 때는 분명 늘어지게 쉬고만 싶었는데 밖으로 나오니 약간 기운이 충전되는 것 같고, 먹을 것만 사는데도 막 신이 나더라고요.
그리곤 우리의 행선지였던 여의도 한강공원을 기분 좋게 갔는데, 아... 역시, 벌써 주차 대기 줄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럼 그렇죠. 안 나오려던 사람도 나오게 만드는 날씨 앞에서 한강공원 주차장은 인기가 만점이었고요.
한발 늦은 듯한 우리는 어쩔 수 없다 포기하지 않고(!) 이촌한강공원을 가보기로 했어요.
여기 또한 주차장에 대기가 있어 아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싶었는데 주차장에 드문드문 자리가 있어 들어갈 수 있었어요.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한강과 조금 떨어진 곳이고 잔디밭 중간에는 공사 중이어서 가림막을 해놓았지만, 이 날씨에 그런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이미 도착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참 귀엽게 보이는 것은, 그곳이 모두 나무 밑이라는 점.
나무의 크기만큼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나무 밑에는 두 명 정도가 있다면, 큰 나무 밑에는 여러 명의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우리도 한 그루의 나무 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로 앞에는 농구장이어서 펜스가 있고, 공사장 가림막 뷰이지만.
나무그늘은 넉넉하고 하늘이 이렇게나 많이 보이니까,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집에서 먹는 음식과 밖에서 먹는 음식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공기 때문이겠죠?
한 입의 김밥이라도, 한 젓가락의 라면이라도, 바깥바람을 함께 먹는 거니까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을 거예요.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는데도 금세 꿀꺽 맛있게 먹었습니다.
요즘의 햇살에 제가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어요.
아름다운 볕뉘를 온몸으로 쬐는 것.
가만한 옷 위로, 펼친 책 위로, 잔디밭에 펼친 매트 위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를 보는 것.
볕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이라고 나오지만, 저는 그 밑에 있는 오픈사전의 뜻에 눈이 동그래졌어요.
'볕의 그림자. 햇볕을 은덕으로 여기며, 고맙게 이르는 말'
물론 그 뒤에 어떤 학자의 이야기가 붙긴 하지만, 저는 햇볕이 은덕이라는 말을 비유로 읽지 않고 그 자체로 보기로 했습니다.
햇볕이 은덕이었던 일요일 풍경.
산뜻한 바람이 불고, 잠깐 비치는 햇살은 따뜻하고.
넓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과 새들의 몸짓을 훤하게 구경하고 있노라니 집에서 누워있는 것과 잔디 위에 누워있는 것.
어차피 누워있는 것은 같지만, 그래도 이것은 천지차이구나 싶었습니다.
한강공원에서 매트를 깔고 누워있는 것이 어찌 보면 참 쉬운 일인 것도 같은데, 잘되지 않는 일 중에 하나에요.
이런 자리도 이런 날씨도 흔치 않아서, 참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의 그림자는 자리를 옮겨가고, 그 그늘을 따라 우리도 6시에서 9시 방향으로 점점 위치를 달리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그게 거의 전부예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쉬어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일까요?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돗자리 섬에 들꽃처럼 앉아있는 사람들.
시기와 질투와 방해와 침범이 없는 평화로운 시간.
고작 내게 날아오는 것은 작은 벌레들, 마른 잎사귀.
어린이가 휭 날려버린 꼬깃꼬깃한 종이비행기.
일요일은 돗자리만큼의 세상에서도 충분히 행복하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