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엔 남편의 생일이 있었어요.
모든 하루가 일 년 중 한 번뿐이지만 대부분의 날은 특별함 없이 지나가니까요. 생일날엔 고깔모자를 써도 이상하지 않고 귀한 대접을 해주고 싶어집니다.
생일 전날 미역국을 끓이다가, 준비한 것이 정말 미역국밖에 없어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안녕하세요 이문세입니다' 라디오에 축하 사연을 보내자 싶었어요.
문세 님 문세 오라버니 문세 삼촌 문세 아저씨...
어떤 호칭이 좋을까 고민하다 문세 아저씨로 정하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전날 밤에 메모장에 사연을 적었어요.
우리 둘 모두 좋아하는 문세 아저씨의 라디오에 사연이 나온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녹음된 것을 매년 생일에 들려줘야지 싶어 마음이 부풀었어요.
신청곡으로는 결혼식에 신랑입장곡으로 썼던 곡이 떠올랐는데 흐릿한 멜로디 말고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광고음악으로 쓰였던 곡이라, 뮤직 앱과 포털사이트에서 다양한 브랜드의 '광고음악'을 검색해 여러 곡들을 들었어요.
30분쯤 요리조리 찾아 헤매다 드디어 찾아냈어요.
그리곤 다음날, 6월 11일 생일 당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전 10시 30분쯤부터 라디오를 틀어두었고, 11시 정각에는 뉴스가 나오는데 막 벌써부터 떨리고.
라디오가 시작하는 시간은 11시 5분.
뉴스가 끝나고 라디오 오픈송이 들려오자마자, 혹시 몰라 맞춤법 검사까지 완료한 사연을 #8001번으로 서둘러 보냈습니다.
이게 뭐라고 긴장돼서 땀이 났어요.
하지만 이렇게 치밀한 준비성이라니,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라디오를 생방으로 듣는 습관은 대학생 때 이후로 다 사라진 것 같아요.
요즘의 저는 듣고 싶은 방송도 거의 '다시 듣기'로 듣고, 즐겨 듣는 팟캐스트 방송도 모두 녹음본이기 때문에 앞의 시간을 뒤에 듣는 청취자인데요.
2024년 6월 11일 화요일 오전 11시, 오늘 꼭 들어야만 하는 생방송 라디오는 떨렸습니다.
계절과 날씨와 시간을 말하고 있는 라디오 DJ와 나의 시간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감각이 너무 오랜만이었고, 설렘과 기대로 듣는 방송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내가 쓴 노래도 아니면서, 음악이 소개될 때마다 내 노랜가 내 노래 나오나 은근 긴장을 하고.
그리고 문세 아저씨는 그랬거든요.
핸드폰 번호 끝자리 대신 이름을 알려주면 이름을 불러주겠다고요.
그래서 제 이름 세 글자도 꼼꼼히 적어냈거든요.
내 사연을 모두 읽지 않더라도 "OO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혜련 씨가 전해달라네요~" 하는 문세 아저씨의 낮고 부드럽고 찬찬한 음성을 들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생일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온 남편에게는 아무 말 않고, 식탁 위에 라디오를 틀어놓고 밥을 오물오물 씹었습니다.
후후 이런 깜짝 이벤트란.
1시간이 채 안 되는 방송인데, 중간중간 광고도 있으니 정작 목소리와 음악이 나오는 시간은 무척이나 짧습니다.
어어,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이럼 안되는데.
허허. 네, 그렇습니다. 예상하셨겠지요.
라디오에 제 사연과 신청곡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 사연이 채택되면 좋겠다는 기대와 바램이 어찌나 컸던지.
제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이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설레발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방송 끝나고 잠시 후의 시간에 나 사실 사연을 썼는데 당첨이 되지 않았다고 시무룩하게 고백했습니다.
안 됐다는 결론을 꾸역꾸역 말하는 나도 참 멋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작은 준비와 정성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것 같아 어찌나 서운하던지요.
사연을 보냈다고 꼭 당첨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문세 아저씨며 방송이며 갑자기 모두 야속하고 미워졌어요.
아무도 안 시킨 일, 혼자 신나 하며 북 치고 장구치고 했는데 아무도 안 봐준다고 토라진 모양새란...
그러나 그렇게 새까맣게 까먹고 지낸 다음 날, 모르는 곳에서 카톡이 왔어요.
"MBCRADIO안녕하세요이문세입니다 님이 기프트쇼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상품명은 광동)비타500병100ml.
치, 이게 아니었다구...
저는 그렇게 입을 삐쭉대면서도 아주 쉽게 금세 웃어버렸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