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전시에서 만난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가을에 읽으면 좋을 책과 음악을 소개해 드립니다. 🌿 인상적인 사람 남산의 피크닉(Piknic)에서 열린 <정원 만들기> 전시를 끝 무렵에야 다녀왔습니다. (전시 기간이 4월부터 시작해 장장 6개월로 길었지만, 다음에 다음에로 미루다가 결국은 끝에 다녀왔네요. *정원만들기 전시(4.24-10.24)는 끝이 났고, 매거진<B>의 10주년 전시가 곧 열린다고 하네요!) 저는 그곳에서 인상적인 분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사진과 영상으로 뵌 것이지만요.) 바로 조경가 '정영선'님입니다. 이런 표현 멋쩍긴 하지만, '미국에 타사튜더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정영선이 있구나'싶었습니다. 제게 그 낯선 이름이 한 번에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은 '선유도공원'이었어요. 스무 살 언저리에 처음으로 갔던 선유도공원에서 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뭐 이렇게 희한하고 조화로운 공원이 다 있지' 싶었어요. 기분 좋은 충격이었지요. 그곳은 원래 정수장이었고, 그곳을 잘 살려 멋진 정원으로 바꿨다는 것이 그때 당시엔 신기하기만 했는데요, 저는 이렇게 아주 한참이 지나서야 그 공원을 만든 분이 정영선님이었다는 것을 전시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것이지요. 추억의 장면이 떠오르며 제 머릿속엔 '선유도 공원 = 정영선'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고 경험에 기반한 반가움에 그분에 관해 자세히 보게 되고, 전시 한편에 마련된 짤막한 인터뷰 영상도 멍하니 보게 되었어요. 서울 아산병원의 조경도 그가 설계했는데, 그 무엇보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가 서로 숨어서 안 보이게 '울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여의도 샛강을 주차장으로 만든다는 말에는 눈앞이 캄캄해져서 한강관리사업소 소장님한테 가서 김수영 시인의 '풀'을 읊어주기도 했고요. 그것은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을 테고, 갖은 노력과 설득 끝에 여의도 샛강에는 생태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아직 아산병원의 공원도, 여의도 샛강 공원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영상의 부분, 부분에서 자주 찡했습니다. 병원은 병원답게, 공원은 공원답게, 강은 강답게. 땅과 흙, 꽃, 나무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정원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작은 몸집과 단단한 말로 몸소 보여주고 계셨어요. 그의 손은 꼭 정직한 농부의 손을 닮아 있었어요. (사진과 영상 촬영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는데 그 좋은 영상들을 더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그에 대해 더 찾아봅니다. (그의 프로젝트를 나열해보자면 앞서 언급했던 곳 말고도 예술의 전당, 88올림픽 공원, 서울 식물원, 호암미술관 희원,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아모레퍼시픽 사옥 등이 있습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조경설계 서안에서 대표작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조경의 대가라고 불리지만 그는 조경(造景)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조경은 경치를 아름답게 꾸민다는 말인데, 조경은 예쁜 화장이 아니라고. "나는 작업을 하면서 시 쓰듯이" 한다는 인터뷰 글을 보았습니다. 시를 예쁘게 꾸민다고 하지 않잖아요. 시를 짓고 만들듯이 그는 땅 위에 자연스럽고 좋은 것을 짓고 만들고 있었어요. 우리가 만나는 녹색 공간은 그러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예요. 치유의 공간은 집이 될 수도 있어요. 비싼 소나무로 정원을 꾸미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포기의 풀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이슬이 맺힌 모양을 본다든지, 잊고 있었는데 꽃이 하나 쓱 올라온다든지. 화려하지 않아도 좋고 여백이 많아도 좋아요. 상추 하나면 어떤가요? 더불어 지내고 대화하는 시간이 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21.06.10 바자르 인터뷰 중에서> 제겐 꼭 외우고 싶은 분이라 여기 이렇게 길게 남겨봅니다. 여든한 살의 나이에도 매일 현장을 오가며 일하는 정영선님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인터뷰를 읽어보세요 :) 🍁 가을입니다 가을과 어울리는 책 세 권을 추천드립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인터넷서점으로 이동합니다) 1. 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글/ 요제프 차페크 그림(배경린 옮김/조혜령 감수), 펜연필독약, 2019) 앞서 얘기한 피크닉 전시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정원가의 열두 달"은 가드닝 분야의 독보적인 고전이라고 합니다. 열두 달이라는 1년의 모든 계절 안 정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원가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카렐 차페크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러합니다. "정원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그러나 가장 좋은 건 역시 정원사에게 맡기는 것이다." 책소개에서 눈치채셨듯이 이 책은 차페크 형제가 함께 만든 책인데요, 요제프 차페크가 그린 그림이 제 눈에는 정말 일품이에요. (*요제프 차페크의 그림들은 <정원만들기> 전시티켓과 달력 외에도, 메인포스터로 쓰이기도 했죠! 😉 ) 2. 나뭇잎 일기 (허윤희, 궁리, 2018) 전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모든 나무와 모든 관목, 모든 풀 하나하나마다 그것이 푸른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그 식물 특유의 가장 선명한 색을 띠었을 때 잎 하나를 표본으로 채집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잎의 윤곽을 그린 다음, 물감으로 그 색을 정확하게 표현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 책은 얼마나 멋진 기념품이 되겠는가? 아무 때나 책장을 들추기만 해도 가을 숲을 산책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의 빛깔들(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의 불복종, 강승영 역, 은행나무>) 중에서 작가 허윤희님은 소로가 이루지 못한 구상을 실현하고 싶어 2008년부터 나뭇잎 일기를 남기는데, 그 수가 천여 장이 넘고 <나뭇잎 일기>는 그중 380여 편을 엮은 책입니다.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가 그날의 빛깔을 담은 나뭇잎을 채집해 그림으로 그리고, 그날의 일을 짧은 글로 담았습니다. 총 420페이지로 꽤 도톰한 일기장을 엿보는 기분이 듭니다. 저도 이 책을 보며 나뭇잎 몇 개를 주워왔지요. 사실 저는 가을이 되면 매년 나뭇잎을 줍는데요, 가을에 허리 숙여 '나뭇잎을 줍는 나'를 좀 어여쁘게 보는 편입니다. 😄 요즘이 딱 푸른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다양한 나뭇잎 색을 볼 수 있는 계절이 아닌가 싶어요 :) 3. 가을에게, 봄에게 (사이토 린, 우키마루 글 /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이하나 옮김, 미디어창비, 2020) 이 책은 그림책입니다. 이 책은 사실 좀(많이...) 사랑스러워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봄과 가을이 서로 안부를 묻는 책이거든요. 봄은 가을에게 벚꽃에 대해 말해주고, 가을은 봄에게 코스모스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그 사이에는 여름과 겨울이 있어 서로의 소식을 전해주지요. 여름과 겨울이 있기에 가을과 봄의 마음은 서로에게 가닿습니다. 서로 이어주고 결국 이어집니다. 마음을 나누며 다정한 안부를 묻는 사이란, 정말 정겹고 사랑스럽지 않나요. 추워지는 계절에 따뜻한 그림책을 추천드려봅니다. 😌 마음이 편안한 연주곡 Hideyuki Hashimoto(히데유키 하시모토) - maru 피아니스트 히데유키 하시모토의 연주곡입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곡을 함께 감상해 보세요 :) P.S. 예쁜 가을의 중간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중하고 건강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오늘도 긴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음에도 완두콩같은 것을 주워 또 돌아올게요! mind_ryeon@naver.com 수신거부 Unsubscribe |
✦ (정)혜련이가 보내는 편지, HYEPEA LE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