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단, 집에 있습니다.
긴 장마로 꿉꿉한 날들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반짝 해가 난다 싶어 이불빨래를 하기로 했어요.
여름의 이불을 어둑한 침실에서 꺼내 오니 밝은 빛 거실에서는 이불의 색이 훤히 보였어요.
흰색의 운동화가 새하얀 눈밭에서 비교되는 것처럼.
이불을 대충 반으로 접었는데 이불 상단과 하단의 색다름(?) 현상.
아이구야. 아무리 둘만 덮고 자는 이불이라 해도 부끄러운 자국과 흔적.
이불은 우리의 땀과 때로 꾀죄죄한 모양새였습니다.
어서어서 이불을 깨끗하게.
이불을 번쩍 들고 세탁기 앞이 아니라 화장실 욕조로 향했습니다.
물을 받아 세제를 풀고 이불을 적십니다.
욕조는 차지하는 면적대비 활용도가 참 떨어지는 물건이지만.
오늘만큼은 거대한 빨래 통으로 변모하여 우리의 이불을 넉넉하게 품어주고.
그렇게 어떤 물건이 한 용도를 넘어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는 것이 있지요.
거실에 둔 식탁은 밥을 먹기 위한 곳이지만 차 마시며 이야기도 하고, 생일 케이크를 자르고, 노트북으로 티브이도 보고, 책도 보고, 오늘처럼 글도 씁니다. 식탁을 넘어 유희와 놀이의 장이 되었다가 집중이 필요한 책상이 되기도 하는.
푹 꺼진 소파는 저래 봬도, 안락과 실용을 모두 해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폭신함을 도맡고 있으며, 어느 날엔 낮잠 재워주는 침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집에서는 영화관 의자가 되고, 이곳에 앉아 빨래를 개기도 합니다.
1인이 여러 역을 해내듯, 1물건이 2역할 3역할을 해낼 때 사물에게 은은한 고마움과 기특함을 느낍니다.
다시 돌아와, 저는 거대한 빨래통 안에서 거침없이 이불을 밟았습니다.
햇살이 비치고 마당엔 빨랫줄이 널려있고, 수돗가 근처 큰 고무대야에서 하하호호 이불빨래를 하는, 어디선가 봤을 법한 그런 장면을 그리며 창문 하나 없는 화장실 욕조에서 저는 땀 흘리며 이불을 밟았습니다.
때가 빠지는 것은 물 색깔로 알 수 있었고.. 흠.
몇 시간쯤 더 담가둔 뒤, 이제는 그것을 들어 세탁기로 옮겨야 하는데.
물먹은 솜이란 딱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오랜만에 체험했습니다.
근처에 있는 빨래방, 세탁소를 두고 나는 왜 사서 고생인가...
밟을 때는 신나게 굴어놓고선, 물먹은 이불을 들 때는 너무너무 무거워서 헛웃음이 났습니다.
영차영차 무거운 이불을 세탁기로 옮기고 동그란 다이얼은 3시와 4시 방향 사이 '이불'에 맞춥니다.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세탁기에게도 어려운 일인지, 수평을 맞춰놓아도 자꾸만 흔들리고 불안한 소리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서 세탁실에 후다닥 달려가 보고, 덜덜덜 떨리는 것을 얼마나 자주 잡았는지 몰라요.
그러고 보면 세탁기에게도 사람에게도 수평은 중요하고, 덜덜덜 떨릴 때 잡아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어르고 달래듯 수평을 잡은 지 수차례, 언젠가부터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듯한 세탁기는 더 이상 불안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일정한 세탁음을 내는 안정적인 소리에 이제서야 저도 안정감을 느껴요.
세탁기는 그렇게 거대한 타이머. 화면에 뜬 정해진 시간 동안 저는 무언가를 하죠.
끼니를 챙겨 먹거나 밀린 일기를 쓰거나 책을 보거나 작업을 합니다.
멜로디로 흐르는 세탁 종료 음을 들으면 하고 있던 일은 모두 일시 정지.
발걸음은 무조건 세탁기 앞으로.
동그란 세탁기 문을 여니 기분 좋은 향기가 산뜻하게 퍼집니다.
이미 한차례 빨래를 한 뒤라 베란다 건조대는 빨랫감으로 차 있어, 거실에서 의자 두 개를 간격 두고 이불을 널었어요.
의자 또한 의자의 역할을 넘어 건조대의 역할을 해내고.
이불은 습한 실외보다 실내의 에어컨 바람에서 더 빠르게 건조되는 듯합니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니 이불은 향 주머니처럼 은은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어요.
물기가 사라진 이불을 가볍게 들어 올립니다.
한결 깨끗하고 보드라워졌습니다.
뽀송하고 향긋한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고요.
바싹 잘 마른 이불에서는 바스락 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
바삭바삭 잘 구워진 빵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