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녁을 먹고 운동 삼아 산책을 나갔습니다.
해가 진 시간임에도 천천히 걷는 걸음에도 땀이 나더라고요.
한참을 걷다 매미가 바닥에 있어 멈칫하며 쳐다보는데 매미소리 얕게 울어 매미의 몸이 살짝 부르르 떨리더니 곧 휙 뒤집어졌어요.
그러다 문득 떠오른 건,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 속 대사.
미정: 더위가 가나 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도 헉헉댔는데.
여기만 오면 계절 바뀌는 걸 알아. 서울에선 모르겠는데.
구씨: 이쪽으로 와. 저기 죽은 거 있어.
미정: 뭐야?
구씨: 새.
미정: 엎어 놔 주지. 왜 동물들은 다 죽으면 배를 보이고 누울까? 꼭 사람처럼.
이런 동네에선 아침마다 하나씩 시체를 마주해요.
족제비가 먹다가 만 쥐 대가리.
물통에 빠져 죽은 다람쥐.
옛날엔 제일 많이 보는 게 개구리 시체였는데 지금은 논이 없어서.
집 주변으로 다 논이었을 땐 개구리들이 밤이면 길을 건너서 이쪽 논에서 저쪽 논으로 건너가는데
그때 차가 지나가면 두두두둑 터지는 소리가 들려요. 조용한 밤에 두두두둑.
아침에 나와서 보면 개구들이 종잇장처럼 바닥에 여기저기.
근데... 왜 밤에 건너나 몰라.
낮에는, 발이 뜨거운가?
-
밤길을 걷던 미정이 구씨 옆에서 커피를 쪽쪽 빨며, 이런 다소 충격적인(!) 모습들을 툭툭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장면이에요. (9화 중에서)
5분도 채 안 되는 이 장면이 문득 떠오른 건, 그걸 저도 그 밤에 보았기 때문에.
애초에 매미가 누운 것을 본 건 아니지만, 등이 보이며 얕게 울다 한 걸음 걸었나 싶을 만큼 살짝 움직이다 갑자기 휘릭, 하고 뒤집혀 배가 보이는 순간을요. 정말 그렇네. 배를 보이고 그렇게...
기분이 아주 이상했어요.
미정의 말처럼 저는 엎어놔주지 못했고, 집에 오는 길 먼발치에서 그저 그 작은 걸 신경 쓰며 지나쳤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내가 본, 부르르 떨다 가버린 매미. 그 곤충, 그 작은 것을 본 뒤로 매미소리를 들으면 그 매미가 자동적으로 떠오릅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을 지날 때 귀가 따갑도록 울리는 매미소리에 귀가 아파 귀를 막지만 신경질까지는 짜증까지는 쉽게 가지 말자, 그런 다짐을 하게 됐어요. 인상을 최대한 덜 쓰고 얼른 지나가자, 그렇게 빠른 걸음하며 그곳을 지나칩니다.
수컷 매미가 암컷 매미에게 보내는 구애의 소리.
우리는 매미더러, 늘 운다고 하잖아요.
저 소리는 정말 우는소리일까. 정말 저리도 처절하게 힘차게 그렇게 울부짖는 걸까요.
슬퍼서 기뻐서 아니면 화가 나서. 혹은 울고 싶지 않은데 너무 더워서 너무 밝아서 지치도록 울 수밖에 없는 걸지도.
그렇지만... 하루 종일 저렇게 울어도 괜찮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나치게 덥고 지나치게 밝은 이 도심의 여름은 사람도 매미도 모두 힘든 것 같아요.
요즘은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놓으니 저 뒷산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가 참을만해서 신경질이고 짜증이고 안 부리겠다 그리 쉽게 얘기를 하지만.
훤히 창문 열고 있는데 매미가 방충망에 붙어 알람 소리보다 더한 소리로 내 단잠과 생활을 깨운다면, 거기에 초연하게 굴지는 못합니다.
저리 가라며 방충망을 톡 쳐서 쫓아낸 적도 여러 번 있으니까요.
지난달 7월 11일 메모에는 매미 울음소리를 들은 날이라고 적어놨어요.
한여름을 알리는 자연의 버튼, 한철 여름을 시작하는 소리가 반가웠나 봅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끄럽다고 굴다니.
오늘은 새벽에 깼습니다.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참 쓸데없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흐린 구름 같은 생각을 휘휘 헤치고 싶지만 쉬이 사그라들지 않더라고요.
밖이 깜깜한 걸 보니 아직 해도 뜨지 않은 것 같은데, 뒷산의 매미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요.
밤낮없이 우는 매미소리에 아 정말 대단하다 싶다가도, 이 소리도 딱 이맘때뿐이지 싶었습니다.
순간, 집 베란다 방충망에 매미가 붙었는지 한 마리의 매미 소리가 가까이서 들립니다.
이렇게 깜깜한데. 아직 해도 안 떴는데.
너는 우는구나. 그래 울어라, 내버려뒀어요. (저 또한 매미가 운다고 쓰고 있습니다.)
사실 누굴 위하는 척 굴겠어요.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은 인간. 귀찮다는 이유가 더 컸겠죠.
조금 소리 내다, 다른 곳으로 간 것 같았습니다.
방충망은 아무래도... 울기에 좋은 곳은 아니라는 걸 알았던 것이겠죠?
지금도 매미소리가 들립니다.
소리가 울창하다 잠시 멎습니다.
세상이 조용해져요.
세 계절이 모두 그렇게 조용한데요.
여름은 확실히 소리의 계절입니다.
무성하고 자라나고 널리 퍼집니다.
역시 이맘때의 소리, 저는 오늘도 먼발치에서 매미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