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마음이 충만했다가 또 어느 날은 제가 몹시도 작아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건 아마도 비교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남과 나를 비교할 때, 저는 안 괜찮은 것 같아요.
세상엔 왜 이리도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많은지.
기준을 거기에 두면 저는 늘 못 미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남의 SNS를 보다 보면 못난 마음이 쉽게 차오릅니다.
비교의 마음이 커지면 그만큼 괴로움도 커지기 때문에, 얼른 인터넷 창을 닫습니다.
에잇, 청소나 합니다.
그러다 구석에서 회사 로고가 박혀 있는 포장박스가 너무 튼튼해 버리지 않고 놔둔 걸 발견했습니다.
그걸 색칠하기로 하고 여러 색의 물감 중 연보라색의 물감을 골라 팔레트에 쭉, 짭니다.
갑 티슈만 한 크기의 박스에 한 붓 한 붓, 연보라색을 올립니다.
내 눈에는 예쁘지 않은 회사 로고가 서서히 지워집니다.
저는 그저 이 박스 하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디 안 칠해진 곳이 없나.
꼼꼼히. 구석구석.
이 쓸데없음. 이 하찮음.
그러나 이 잠깐의 시간은 저를 다른 곳으로 옮겨 줍니다.
못난 박스를 칠할 때, 언제 그랬냐는 듯 제 못난 마음도 덮어지고 지워진 것이겠지요.
이 작은 작업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으니, 작업은 작업을 불러오고.
남은 물감이 아까워 종이에 슥슥 칠하다가 또 다른 작업을 하고요.
발견, 우연성.
종이를 잘라 내 마음 가는 대로 붙이는 것.
제 작업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게 뭘까.
사진첩에서 우연히 다시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자수 전시에서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것은 자기 재주대로, 그저 멋대로, 바느질이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만든 것이다.
동그랗게 수놓으려 했지만 완전하게 동그랗지 않고 좀 찌그러진다.
기교적 완벽성을 실현하지 못했을망정
우리는 색색 실의 독특한 색감을 잘 살려가면서 대상에 상관치 않고 수를 놓았기 때문에
예술적 완벽성은 한결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멋대로 놓아서 오히려 현대적인 것이 되고 만 것이 내 마음에 든다.
-김종학, <민예품 수집의 즐거움>, 2004
내 것은 내 재주대로, 그저 멋대로, 내 손이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동그랗게 자르려고 했지만 완전하게 동그랗지 않고 좀 찌그러진다.
색색 종이의 독특한 색감과 질감을 잘 살려가며 붙인 것.
그렇게 하여 '내 마음에 드는 것'
민예품 수집의 즐거움에서 이야기한 그의 문장을 가져와 제 마음대로 고쳐 흡수합니다.
음 됐다, 하고 나의 기준에서 매듭짓는 것.
그렇게 손을 놓고 다음 장을 또 채웁니다.
그러나 제 작업 인스타그램은 작년 12월에서 멈춰있어요.
작가에게 인스타그램은 이제 홈페이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거기서 멈춘 제 SNS는 마치 그 즈음에서 제 작업도 함께 멈춘 듯 느껴졌습니다.
내가 하고 있으면 됐지, 그런 생각이었는데 그 마음도 다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한동안은 정말 이상하게 다 안 돼서 많이도 속상했습니다.
방구석에서 고민만 하고 울기만 하면 뭐 하나,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걸 또 인스타그램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다 들통난 것 같아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이걸 어떻게 잘 해나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브레이크를 걸고, 자꾸만 힘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꼼짝없이 다시 시작을 못 하고 있는 신세.
색채와 분위기가 잘 정돈된 다른 작가들의 인스타그램을 그렇게 부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다 밤에, 제 인스타그램을 쭉 보았습니다.
열심히 그린 것도 있고, 그저 그런 것도 있고, 그렇게 하나하나 보고 있는데 그때는 자신 없게 올린 것들도 이제 보니 괜찮은 듯싶고.
과거의 '나'가 사진과 날짜로 다 떠올랐습니다.
이상하게 기특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인정하는 기분.
밤의 마음은 사람을 이렇게 느슨하고도 느긋하게 만들어서 그 또한 착각일 수 있지만, 그래도 잠시 흐뭇했습니다.
전시에서 위의 문장을 읽을 때 전체에 모두 반하기도 했지만,
마지막 저 말 있잖아요.
어찌어찌 되고 만 것이, 그리하여, 그렇게,
"내 마음에 든다"
내 마음에 든다.
내 마음에 든다.
그 말에 마음이 뻥 뚫리고 시원해져요.
밑줄을 긋고 볼드 처리하고 싶어집니다.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가장 이상한 세 단어> 전문, 《끝과 시작》, 문학과 지성사, 379p.
저는, 내가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쉽게 말했어요.
그러나 이 시에서, "아무것도"는 그렇게 무언가를 창조한다고 말해줘요.
어쩌다 보니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강물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 위로 하얀 나비가 오직 자신만의 것인 날개를 파닥거리며,
내 손에 그림자를 남긴 채 포드닥 날아간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자신만의 것인
그림자를 남긴 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제목이 없을 수도> 부분, 위의 책, 320p.
작업을 다시 시작할 때 목표가 있었지요.
그저, 이 노트 한 권을 채우자.
음 얼마나 남았나, 요즘은 자주 세어 보지만 ㅎㅎ
이제 다 채워갑니다.
이 노트는 오직 나만의 것, 내 마음에 드는 노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