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는요,
정리 정리 정리의 연속이었어요.
지난 편지에 이어 집에 가구 배치가 조금 달라지고 있는데, 물건들을 정리하려고 가구 안의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 보니 쓰지 않는 것들이 참 많이도 나왔습니다.
각종 설명서와 영수증, 물건 없는 빈 상자, 작은 부품들... 기타 등등의 온갖 잡동사니들.
정리가 필요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쌓이고 쌓이던 것들. 그 언젠가의 사용으로 남겨두었던 것들.
지금도 하나하나 잘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던 것이 확실해집니다.
그러면서 기존에 쓰던 10년 넘은 전자레인지대는 버리려고 한쪽에 놔두었어요.
높이 1200mm 폭 600mm. 흰색과 나무톤이 적절히 섞인 MDF 합판 가구.
뻥 뚫린 중간에는 밥솥이나 전자레인지 두고 슬라이드로 쓰는 그 익숙한 주방 수납장이요.
슬라이드는...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전에 고장이 난 상태였지만, 슬라이드 말고는 부서진 곳 없이 멀쩡하고 튼튼했어요.
소재와 취향보다는 가격과 실용에 맞춰 구매한 신혼가구는 점점 더 예뻐 보이지 않고, 그렇게 쉽게 버리려고만 했었는데.
물건들을 텅 비워내고 우두커니 서 있는 전자레인지대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고민해 보니 제 작업방에 수납선반이 필요하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왜 자꾸 뭘 사려고만 하지, 이것을 가져다 쓰면 되잖아.
책상 옆 공간을 줄자로 재봅니다. 전자레인지대가 들어갈 공간이 나왔습니다.
생각한 것이 딱 맞춤할 때 느껴지는 은은한 희열.
쓰지 않는 슬라이드 선반은 작업방으로 들여오며 나사 풀어 아예 빼버렸어요.
그랬더니 전자레인지대는 장소 상관없이 어디서든, 무엇이든 수납할 수 있는 가구가 되어버렸어요.
왜 진작 빼지 않았나... 이렇게 시원한걸.
이제는 작업방에 전자레인지대, 아니 수납장을 놓을 공간을 비워두어야 했습니다.
선반 없이 쌓아둔 바닥의 물건들을 한쪽으로 이동시켜 자리를 만듭니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무엇이 들어오려면 무엇이 나가야 되는, 비움과 채움의 공식 같은 당연한 사실을 이 작은 작업방에서 다시 느껴요.
급 결정된 일이었기에, 하루아침에 제 방은 금세 엉망이 되었고 바퀴 달린 책상 의자의 이동도 버거워질 만큼 순식간에 어수선해졌습니다.
남편의 말대로, 정리란 과거의 나를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내가 대충 해놓았으면 현재의 내가 그 대충 한 것들을 다시 보며 정리해야 하고, 과거의 내가 제대로 해놓았다면 지금의 나는 한결 편했을 텐데요.
집 안 물건 정리는 단순노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뒤, 작업방으로 들어와 계속 정리를 하다 보니 약간 두통이 생겨요. (먼지 때문이었나...)
아무튼, 이것을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취사선택의 고민을 내내 하게 돼요.
그 고민이 계속 이어지며 너무 많은 물건에 사람은 지치며 피곤해지는데, 그러다 갑자기 돌변합니다.
이걸 왜 아직까지 갖고 있나, 이건 대체 언제 쓰지?
스스로도 의문이 드는 물건들은 다 버리기로.
그랬더니 작업방에는 공간 박스 두 개가 텅 비워졌고, 10리터 쓰레기봉투가 2개, 그리고 종이 박스 1개 분량의 쓰레기가 나왔습니다.
수납가구로 바뀐 전자레인지대 덕분에 바닥의 물건들은 적당한 자리를 찾았고, 작업방은 한결 깨끗해졌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 남아있는 것들. 남겨진 것들.
재료와 도구와 종이와 책들이 작업방을 가득 차지하고 있지만.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하는 사람이구나. 이러한 것들을 좋아하는구나 하고요.
정리를 하면서 나를 돌아봅니다.
물건들을 보며 나를 알게 됩니다.
그렇게 저는 며칠 내내 집 안에서 작은 이사를 치러야 했고, 정돈된 새 마음으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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