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유난히 빨리 흘러간 것 같아요.
시간이란 늘 그렇듯 기다려주는 법이 없고 눈 뜨고 보니 9월에 와 있습니다.
올해 9월은 일요일부터 시작해 빈칸 없이 꽉 채워 시작하는 모양새에요.
지난 일요일은 9월의 첫날.
눈이 평소보다 일찍 떠졌고 세상은 참, 조용했습니다.
버릇처럼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그렇게 보다 보다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고 재미가 없어요.
자극은 계속해서 저를 다른 곳으로 이끌고, 저는 질질질, 쉽게 잘도 끌려가지요.
내가 끊어내지 않으면 끊임없이 자극으로 이어지는 세상.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해방과 몽롱으로 보는 밤의 스마트폰과는 다르게, 하루를 시작하는 주말 오전의 스마트폰에서는 왜인지 텁텁한 기분이 들어요.
안되겠다 싶어 스마트폰을 내려둡니다.
침대 협탁에 두었던 책이 보입니다.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이 책은 시의적절의 8월, 여덟 번째 이야기.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시의적절 시리즈는 각 월마다 다른 시인이 릴레이로 쓰는 책입니다.)
시의적절답게 날짜에 맞춰 하루하루 읽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이 책을 바로 보지 못했어요.
8월에 구매해두고는 겉을 살피며 여러 번 집어 들었다가도 선뜻 펼치지 못했지요.
책의 성정 같은 것이, 손쉽게 집어 들어 후루룩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마음의 준비, 시간의 여유.
헤아려 보면 그런 날은 저를 자주 찾아왔겠지만 모른 척하고 휘리릭. 다른 데 눈길 주기 일쑤였는데.
이 날 만큼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자극 말고, 좋은 집중의 시간으로 잔잔한 여운을 내게 집어넣어 주고 싶어 책을 펼쳤습니다.
일요일 오전, 침대에서.
아주 편안할 수밖에 없는 자세로.
이 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던지, 넉넉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다 보니 8월 31일까지 다 읽어버렸습니다.
돌이켜보면 8월은 참 더뎠는데. 날씨만으로도 참 힘들었는데.
쉽고도 짧게 후루룩, 두 손에서 8월이 다 지나가 버렸어요.
어항 같은 나날을 지나 조금 숨통 트이는 9월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읽는 8월의 책은 그렇게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참 더웠지, 더웠지, 더웠지.
이제는 과거형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뜨거웠던 여름.
하지만 과연 덥기만 했었나.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날씨 속에서 나는 과연 뭘 했나 싶어 사진첩을 들여다보니, 8월 8일 사진첩에 캡처해 둔 가사가 보여요.
사실 시간은 동화 속처럼 뒤엉켜 있단다
시간은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가거나
차창 밖 풍경처럼 한결같이 뒤로만 가는 게 아니야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서있기도 한단다
더 늦기 전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모든 눈물이 다 기쁨이고 이별이 다 만남이지
사랑을 위해서 사랑할 필요는 없어
그저 용감하게 발걸음을 떼기만 하면 돼
네가 머뭇거리면 시간도 멈추지
후회할 때 시간은 거꾸로 가는 거야
잊지 마라 시간이 거꾸로 간다 해도
그렇게 후회해도 사랑했던 순간이
영원한 보석이라는 것을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언젠간 풀려버릴 태엽이지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만
찬란한 한순간의 별빛이지
-김창완, '시간' 가사 중에서 (feat. 고상지)
네가 머뭇거리면 시간도 멈추지.
저는 이 한 줄에서 오래 멈추었네요.
사랑했던 순간은 영원한 보석이고, 시간은 찬란한 한순간의 별빛이라고요.
아아 저는 이런 노래 가사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여러 번을 읽고 또 읽습니다.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책에서는 이런 문장에 밑줄을 긋기도 했어요.
사찰에서 아침 종소리가 건너온다.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종을 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이의 손을 떠올린다. 손의 침묵과 종의 침묵이 만나는 찰나, 그 떨림을.
소리는 나를 스치고 만물을 스치고 멀리 간다. 보이는 데 너머, 너머의 너머로 간다. 한번 울린 소리는 없어지지 않고 우주에 계속 존재한다는 말을 생각한다. 그리 생각하면 소리가 귀하다.
-한정원,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중에서, 난다, 12p.
앞서 적은 가사와 문장을 읽으면 시간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내가 세상에 어떤 말을 뱉으며 지내야 하는지 마음이 잡혀요.
여름은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다. 세 번을 거쳐 온 마음은 미약하다. 그래도 싫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
한껏 사랑할 수 없다면 조금 사랑하면 되지.
-위의 책, 42p.
아마도 많은 분들의 마음을 울렸을 이 문장 또한 적어봅니다.
싫다 말하기보다 방향을 틀어 사랑하는 쪽으로.
어려운 마음이지만 그렇게 마음먹어 보는, 꽉 찬 9월의 첫 줄에서.
8월에 기대어 쓴 편지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