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종이에 관한 이야기, 요즘 읽으면 좋을 시와 문장, 그리고 노래 한 곡을 가져왔습니다. 천천히 즐기며 읽어주세요. 📜 종이감수성 인간입니다 종이는 조용하고 가볍고 연약하지만 그 무엇보다 무겁고 힘이 세서 아주 오랫동안 존재합니다. 화면 속 기계 글자보다 종이 위에 쓴 사람의 글씨는 왜인지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문구점이나 화방에 가면 지류 코너를 기웃거리며 여러 종이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합니다. 얼마나 다양한 두께와 질감과 색감의 종이들이 있는지, 종이를 만지는 것은 언제나 즐거워요. 저는 종이를 사기도 하지만 모으기도 해요. 팸플릿, 티켓, 영수증, 포장지, 엽서, 봉투 등등의 것을요. 받았던 모든 종이들을 모으는 것은 아니고 제 눈에 필요한 것, 예쁜 것을 골라 모읍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정리를 한답시고 종이뭉치들을 한데 모아 큰마음 먹고 버린 적도 있지만, 종이 수집은 업데이트 되어 종이의 부피는 날로 늘어만 갑니다. 종이의 자리는 부담이 적어 한 장 두 장 계속 모으게 되는데 티끌 같은 종이도 어느 순간 태산이 되어버려요. 종이는 낱장이거나 묶여 있거나 둘 중 하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집에 있는 모든 종이를 낱낱이 펼쳐보면, 바닥을 넘어 벽을 넘어 지붕까지 집 한 채를 충분히 덮고도 남을 거예요. 그렇게 보면 종이가 집에서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가볍게 살고 싶지만 종이는 쉽게 버릴 수가 없네요. 좋아하고 아끼는 책들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제가 몇 년 전에 산 책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의 신 이야기'라는 책입니다.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들었어요. 냅킨, 식탁 매트, 커피설탕 봉투, 컵받침, 전단 등등. 이런 것들을 커다란 포켓파일에 한 장씩 넣어 두었다가 여행별로 파일을 만들어 보관한다. (...) 94세. 그의 유연한 감성, 풍부한 상상력에 나는 늘 압도당한다. 하지만 지금 같으면 그나마 파리의 빵가게에서 받아 온 종이봉투를 귀하게 간직하는 감수성이 받아들여지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 예술의 거리 상제르망 드 프레에서 갓 구운 빵을 샀던 그날 파리의 하루는 이 봉투에만 담겨 있다. -오다이라 가즈에 글, 고바야시 기유우 사진, 오근영 옮김, <종이의 신 이야기>, 책읽는수요일, 25-26p *책 속에는 파리의 빵가게 폴에서 바게트를 담아주는 종이봉투 사진이 실려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종이가 있어요. 7년 전 처음으로 갔던 파리 여행에서 처음으로 먹어 본 마카롱. 마카롱을 담아 주었던 에메랄드빛의 종이박스, 그 안에 있던 연한 베이지색의 이 종이를 아직도 버리지 않고 액자에 끼워두고 있습니다. 특별히 맛있었던 기억은 없어도 벤치에 앉아 이 예쁜 것을 내가 파리에서 먹고 있구나, 하는 그날의 감각이 종이를 볼 때마다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책 속의 말처럼 그날 파리의 하루가 이 종이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겠지요. 수없이 뿌려졌을 종이겠지만 이 종이는 제게 특별하고, 흔적과 추억이 묻은 제 종이가 되었기 때문에 쓰레기 취급하며 휭하니 버리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이렇게 여행을 가기 어려운 때는 여행의 종이가 귀해지고 종이의 힘은 더 막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책 속 문장을 짧게 바꾸어 이런 것을 저는 '종이 감수성'이라 부르려고요. 종이 감수성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분명 좋아하실 책이라 믿어요! *아 그리고 하나 알려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얼마 전 예스티비에서 정지돈 작가님의 What's in my bag 영상을 보았는데요. 브랜드택을 책갈피 대용으로 사용하시더라고요. (5:30분에 나옵니다!) 이것 참 아이디어다 싶었어요. 힙한 책갈피 :) 예뻐서 버리지 못하고 굴러다니고 있는 택이 있다면 책갈피로 사용해 보세요. 😉 🍂 가을에 관한 시와 문장 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중이다 -이수정 구름이 태어나는 높이 나뭇잎이 떨어지는 순서 새를 날리는 바람의 가짓수 들숨과 날숨의 온도 차 일찍 온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고양이의 노란 눈동자 밤새 씌어졌다 지워질 때 비로소 반짝이는 가을의 의지 고르고 고른 말 이성적인 배열과 충동적인 종결 각자의 언어로 번역되는 가을 가을에 구름, 나뭇잎, 새, 온도, 고양이라는 말은 쓸 수 있어도 시인처럼 이런 문장을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각자의 언어로 번역되는 가을'이라는 말은 참으로 근사합니다. 저도 저만의 언어로 이 가을을 번역해 보렵니다. 입동은 지났지만 아직 가을이라고 해도 괜찮겠지요! 그러나 11월, 도로의 절반쯤을 낙엽이 차지하게 되는 계절에는 반드시 귀를 열어두고 자전거를 타야 한다. 귀에 다른 소리가 들어갈 기회를 노래로 틀어막아서는 안 된다. 이 시기에 자전거는 정말 재미있는 소리를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낙엽을 자전거 바퀴로 누르면서 지나가면 스낵류, 특히 감자칩을 먹을 때의 바삭한 소리가 난다. 경쾌하고 고소한 소리다. 그 소리를 듣게 되면 지하철 환풍구 위로 떨어진 은행잎들조차 다르게 보인다. 모양새조차 노란 감자칩이 아닌가! 자연스레 지하철 환풍구는 감자칩을 만드는 건조기나 에어프라이어가 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렇게 온몸으로 가을칩을 만나면서 이동하는 것이다. 사가가가가각, 사가가가가각. 아, 진짜 이 소리 최고다. -윤고은, <빈틈의 온기>, 흐름출판, 149-150p 요즘 나뭇잎의 색을 보면 정말 잘 구워진 빵 같아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나뭇잎 빵. 윤고은 작가님은 그것을 스낵류에 비유하셨네요. 사가가가각은 자전거로 지나갈 때 길-게 나는 소리겠지만 두 발로 나뭇잎 스낵을 밟으면 사각, 하고 짧고 경쾌한 소리가 나겠지요. 사가가가가각은 자전거, 사각사각은 한 발 한 발. 이 소리도 지금이 아니면 들을 수 없겠죠. 마른 나뭇잎이 보이면 눈 밟는 아이같이 신나게 밟고 있는 요즘입니다. 🙈 열심히 할게 10cm - 열심히 할게 얼마 전 10cm의 EP앨범이 나왔어요. 그 중 '열심히 할게'라는 곡을 소개해 드립니다. ♬ 열심히 할게 응원해 줄래 누가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바쁘게 살아볼래 아침 일찍 일어나볼게 그렇게 싫어했던 운동을 하고 건강하게 지낼게 여전히 피곤하고 귀찮지만 나름 노력하고 있어 열심히 한다는 말은 고상하고 세련된 것과는 멀고 놀림을 당할 것만 같습니다. 열심히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인데 말이에요. 이 곡을 이어폰으로 들었는데 담담하게 전해지는 '열심히 할게'라는 말이 정말 슬프게 들리고 또 진짜처럼 들렸어요. 제게 요즘 꼭 필요한 태도인 것 같아 괜히 더 마음에 와닿았던 곡입니다. 날은 추워지고 이불 밖으로 점점 나오기가 싫어집니다. 피곤하고 귀찮지만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다짐의 가사처럼 저는 저에게 말해 봅니다. 열심히 할게. P.S. 한주가 빠르게 지나가네요. 완두콩을 추천해주고 싶으시다면 아래, '완두콩 추천하기' 버튼을 눌러 공유해 주세요. 그럼 저는 다음에도 완두콩같은 것을 주워 또 돌아올게요! 몸도 마음도 건강히 지내시길 바라요 :) 오늘도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mind_ryeon@naver.com 수신거부 Unsubscribe |
✦ (정)혜련이가 보내는 편지, HYEPEA LE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