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저녁 먹고 매일 걸으려고 노력해요.
산보와 경보 사이의 속도로요.
너무 더운 이번 여름에서는 더위 내성이 생겼는지, 웬만한 습도에서는 거뜬하고요. 아주 조금의 바람에도 감사해져요.
밤에도 아직 더워서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는데 그게 약이 오르기보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쉽게 효과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나는 고작 몇 분 걷기밖에 안 했는데 몇 킬로는 뛴 것 같은 엄청난 효과. 손 안 대고 코 풀기.
제가 걷는 숲길에는 저녁에도 걷는 사람들이 많고, 으슥한 곳이 없어 다행히도 안전한 기분으로 다닐 수 있습니다.
살랑살랑 꼬리 흔들리는 강아지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 씩 웃기도 합니다.
어제는요, 제가 어렸을 때 선물 받아 클 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강아지 인형과 아주 똑 닮은 개를 봤어요.
토이스토리처럼 인형이 살아난 듯.
유난히 유난히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 개는 나를 모르는데 나 혼자 반가워했어요.
내가 이런 사람이 되었다니 그게 참 신기합니다.
저는 지금껏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가까이 지내본 적도 없습니다.
개는 사람을 보면 크게 짖는 동물. 그렇게 무서운 동물.
시골 마당에 개집이 있고 개가 목줄에 묶여있는 그런 풍경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고, 어느 날은 큰 개가 나를 따라와 엉엉 울던 기억.
떠올려보면 그 개는 나를 물지도 않았고 나의 뒤를 따라온 것뿐인데 그때는 개가 집채만 하게 느껴져 그저 무섭고 싫기만 했어요.
나를 물어버릴까 봐. 나를 해칠까 봐.
그렇게 다 크고 나서도 이쁘다 순하다 개를 쓰다듬거나 만지지는 못하는, 미리 겁먹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몽실이.
몽실이는 하얀 진돗개, 털이 곱고 눈빛 또렷한 건강한 개였습니다.
지금의 남편이 대학생 때 지냈던 하숙집 개의 이름.
남편은 거의 평생 강아지와 함께 지냈고, 세상엔 귀여운 강아지와 더 귀여운 강아지가 있을 뿐이라는 사람.
하숙집 주인이 키우는 몽실이를 얼마나 예뻐했을지 말 안 해도 다 보일 정도였어요.
그 하숙집에 놀러 갔을 때 개가 있다는 사실이 저를 주춤하게 만들었는데 몽실이는... 저를 보고 짖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나는 처음 가는 낯선 사람인데...
이미 다 아는 듯한 평온한 맞이에, 저는 놀라면서도 안심했습니다.
몽실이는 남편이 지내는 2층에 올라와 오래 함께 시간을 보냈고, 등하굣길에도 서로 찐하게 인사를 나누고.
몽실아~ 밥 묵으라~ 하는 하숙집 아주머니의 말이 들리면 도도도 1층으로 계단을 내려가고.
밥을 다 먹으면 몽실이는 또다시 2층에 올라왔지요.
주택이었던 하숙집은 출입문을 열면 베란다로도 나갈 수 있고, 집의 길이 뻥뻥 뚫린 곳을 몽실이는 자유롭게 드나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저는 처음으로 느꼈어요.
개는 무섭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준 몽실이.
저에게 참 소중한 경험을 안겨준 고마운 몽실이.
더 많이 눈 맞추고 만지고 안아볼걸.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개 앞에서 참 어색하고 서툰 사람이었습니다.
이제서야 개에게 반가운 눈빛이나마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몽실이 덕분입니다.
그 처음이, 그 자연스러운 경험이 얼마나 중요했던 것인지 많이 느껴요.
많은 시간이 흐르고 저는 숲길을 숱하게 걸으며 숱한 개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렇게 익숙해져 버려서 어느 순간 무서움이라는 것도 많이 사라졌어요.
아주 큰 개를 보면 여전히 조금은 무서워 티 나지 않게 살짝 거리를 두지만..
저는 이제 개를 바라봅니다. 개에게 시선이 갑니다.
저 눈을, 저 털을, 저 꼬리를, 킁킁킁 냄새 맡는 코와 거침없는 발걸음을.
그러다 잘 오는 건가, 같이 나온 사람을 바라보고 함께 걷는 움직임을.
저는 가끔 저 눈빛을 가까이서 보는 사람은 어떠할까. 와구와구 이뻐죽겠다며 어디든 입을 맞추는 거침없는 사랑의 기분은 어떠할까 짐작만 해봅니다. 저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개의 깊은 눈망울과 발바닥의 꼬순내, 보들보들한 털이 주는 위로와 따뜻함 같은 것.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모르는 나.
하지만 숲길에서, 산보와 경보 사이에서, 움직일 때마다 통통통 울리는 개의 귀와 꼬리, 털에 감춰져 보일 듯 말 듯 한 까만 눈동자를, 둥그런 맨발을 오늘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반갑게 개를 만나면.
아직은, 아직도 여전히 이게 다이지만... 제 안에서 이쁘다 귀하다 사랑스럽다 눈빛이 나올 거라는 걸 이제는 알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