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는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는데,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팝업스토어를 발견했어요.
음악 하는 밴드의 팝업스토어라니?
반가우면서도 의아해하며 부스를 바라보는데 밴드의 보컬, 덕원님의 얼굴이 빼꼼히 보였습니다.
음반회사 직원이 아니라 밴드 멤버들이 직접 홍보하는 팝업스토어라니!
물론 일방적으로 저만 아는 얼굴이지만... 너무 반가운 나머지, 오!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고,
덕원님은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시며 팝업스토어를 하고 있다고, 이번에 나온 앨범과 함께 여러 굿즈를 설명해 주셨는데 아쉽게도 8시 마감시간이라 마감을 하고 계셨어요.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8시 4분쯤... 또르르.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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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너마저.
20대 때, 줄 이어폰으로 듣고 또 듣고 했던 '앵콜요청금지'
지금으로 치자면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았던 노래.
그때 느끼기에는 밴드 이름도 특이한데, 노래 제목마저 특이했습니다.
대학생 시절, 다른 사람들의 눈을 많이도 의식했고, 유행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또 반대로 하고 싶은 것은 따라갈 수는 없던 그때.
외로웠고 지루했고 막막했지만, 노래는, 노래만큼은 내 취향을 잔뜩 담아 선곡해 들었습니다.
나는 말이지 어디에나 흘러나오는 노래들보다 이런 숨은 노래를 찾아 들어, 그런 생각에 흠뻑 빠져있기도 했던 시절.
이런 노래도 안다, 자랑하지 않아도 스스로 뿌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에요.
지금 들어도 좋은 도입부의 멜로디가 17초쯤 울리다,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라는 첫 문장의 가사가 그때는 그렇게도 인상적이면서도 좋았습니다.
그 뒤로 점차 점차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는 유명한 곡이 되어, 나만 조용히 듣고 있는 노래(사실 그런 것은 없을 텐데...)를 지나 너 나 우리, 거의 모두가 아는 곡이 되기도 했지만.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나의 한 시기가 지나면서 닳고 닳을 때까지 들었던 노래의 열기도 자연스레 식어버리고, 나의 어느 한때와 겹쳤던 노래 또한 함께 저물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브로콜리너마저 밴드의 곡들과 뜸해졌다가도, 신곡이 나오면 반갑게 찾아듣기도 했고.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자연스레 다른 장르와 새로운 곡들로 채워지기도 했지만.
그 시절, 익숙함을 넘어 가사를 숨소리처럼 자연스럽게 뱉을 수 있는 나만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저의 20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게 그때부터 지금까지 브로콜리너마저를 듣고 있습니다.
혼자 가까웠다 멀어졌다 했지만 제게는 꾸준히 들어온 오래된 밴드이니까요.
그러한데...
콘서트를 찾아다니며 열정을 뿜었던 것은 아니고 조용히 음악만 찾아 들었던 저라서, 밴드 보컬의 얼굴을 가까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저녁 산책길에서 부스 매대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나 가까이, 내가 아는 가수의 얼굴을 보는 것이 신기하고 반가웠습니다.
행사 마감시간은 지나있었고, 내일 오후 2시부터 다시 팝업스토어를 연다고 했지만.
내일은 일정이 있어 못 올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렇게 짧은 만남으로 끝이지 않나!?
아 반가웠다, 신기했다 인사한 것으로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도리도리 절레절레 이것은 아니다. 지금! 무엇인가! 해야 한다! 싶은 마음이 충동적으로 일었어요.
매대를 재빠르게 눈으로 훑으니, 너무나 귀여운 굿즈가 있었어요.
브로콜리너마저의 정체성(!)이 담긴 키링 굿즈.
초록색의 브로콜리와 브로콜리너마저 밴드의 분홍 로고가 달랑달랑 달려 있는, 귀엽다를 넘어서 갖고 싶다의 마음이 드는 귀여움.
그리고 옆에는 밴드의 이번 발매 앨범이 있었습니다.
음...아... 앨범이라... 사실, 망설였습니다.
음악은 거의 음원사이트에서 듣게 되니까...
그러나, 덕원 님 앞인데! 앨범을 홍보하려고 만들었을, 굿즈 앞에서만 흥분하는 내 모습이 참...
키링은 덥석 구매한다고 했으면서... 앨범 앞에서는 몇 초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앨범도 함께 구매했지요!
급한 마음에 사인받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사진 요청을 조심스레 드렸습니다.
작은 사탕을 입에 물고 있던 덕원님은 밝게 웃으며 끄덕끄덕해주셨고, 오물오물 작은 사탕은 손에 들고 브이자를 만들어주며 환한 미소로 사진을 함께 찍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마감 시간임에도... 이렇게 우연히 찾아온, 발매 앨범이 아니라 키링에만 눈 반짝이고, 새로 나온 앨범 앞에서 그냥 음원으로 들을까...
망설였던 나, 참 민망하고 부끄럽다...
닳도록 많이 들었던 밴드의 보컬 앞에서.. 예전만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좋아는 해요.. 그런 마음이었던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아아 뭔가 계속 민망하고 부끄러운 기분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얼마큼, 어떻게 좋아해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브로콜리너마저 분홍로고 키링 18,000원
브로콜리너마저 4집 앨범 22,000원
들고 오면서도, 키링과 앨범의 가격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키링이 비싼 걸까, 앨범이 싼 걸까.
누군가의 발매 앨범을 얼마 만에 산 건지 모르겠어요.
앨범의 비닐을 뜯는 기분부터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앨범을 듣기에 앞서, 만지고 들여다보기.
갑자기 그들이 더 궁금해져 찾아보는데 9월의 인터뷰가 보였습니다.
덕원, 잔디, 류지, 동혁 네 사람은 세상을 뒤바꿀 강렬한 성취보다는 매일 먹는 밥 한 끼의 귀중함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일상을 잘 돌보아야 한다는, 작지만 큰 진리를 삶에서 실천하려 애쓴다.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자며 준비했다는 4집 앨범이 더더욱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 《리빙센스》 2024년 9월 인터뷰 중에서
강렬한 성취보다는 매일 먹는 밥 한 끼의 귀중함.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자며 준비했다는 이번 앨범의 글귀를 읽으며 흐뭇해졌습니다.
이렇게도 창작을 할 수 있구나, 이렇게도 창작을 해도 되는구나.
참 건강한 앨범이겠구나. 멋지다.
냠냠 꼭꼭 정성스러운 한 끼를 먹듯 앨범을 들어야지.
잘 먹고 잘 자는 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요즘 들어 더 절실히 느끼고 있는 제게 이 인터뷰가 선사해 주는 선한 영향이 좋았습니다.
가사집을 앨범에서 꺼내 차근차근 읽었습니다. 읊기도 했어요.
시집을 읽는 것 같았어요.
기분이 처져 있던 어느 아침.
동그라미 CD를 앨범에서 꺼내 보며, 이 얇은 플라스틱 안에 음악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신기해합니다.
지름 12센티미터, 시디 크기만큼 엄지와 약지를 펼칩니다.
차갑고 딱딱한 시디 앞에서 손가락은 언제나 조심스러워지고, 플레이어 동그란 자리에 시디를 올려 놓고,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순식간에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듣는 음원과는 확실히,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브로콜리너마저의 4집 앨범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를 들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