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는 막바지 가을을 즐기러 공원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주말 공원 소풍.
이렇게만 봐도 흐뭇해지는 조합이에요.
용산가족공원에 가기로 했는데요.
여기 참 좋대, 말은 들었어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어떠한가 알아보는데, '24시간 운영, 연중무휴'.
공원이 그래야지, 당연한가 싶다가 이 사실이 왜 이리 고맙고 신기했는지요.
막혀있고 잠겨있고, 그런 곳이 더 많은 세상이니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있는 공원이 괜스레 더 소중해졌습니다.
인기가 많은 곳이라 공원 주차장에는 주말에 대기가 있을 수 있으니 이른 시간에 가야 한다는 후기를 보고는 스르르 잠에 들었습니다.
소풍날 아침.
눈이 일찍 떠졌습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게 되는 소풍날의 몸은, 뭉그적거리는 다른 주말과 사뭇 다르지요.
어젯밤 산책길에서 산 떡을 챙기고, 단감과 사과를 깎고, 차를 우려서 텀블러에 담았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
소풍 가기 딱 좋은 주말.
우리가 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가 되기 전.
다행히 주차장은 한산했고, 주말 공원 이른 시간이란 요쯤이로구나 싶었습니다.
주차장과 공원은 매우 가까워서 몇 걸음 걸으면 바로 공원이었는데요.
공원 안으로 들어가자 금세, 저는, 이 공원에 한눈에 반해버렸습니다.
여기구나 여기였어, 그런 호들갑이 나왔어요.
나는 나무다리 위에 있고, 연못이 있어 그 위로 연잎과 수풀이, 나무와 하늘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좋아하는 버드나무와 저 멀리 이름 모를 나무들이 가을색으로 풍요로우며, 그 위엔 더없이 깨끗한 하늘이 보였습니다.
공원의 첫인상이 이러하니, 몇 걸음만에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좋다 하던 다른 사람들의 말이 바로 이해가 가면서, 나 또한 경험으로 말할 수 있겠구나 싶고.
이른 시간의 공원에서는, 마음에 드는 벤치를 고를 수 있지요.
벤치에 앉아 바리바리 싸온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면서, 풍경 참 좋다 좋다 몇 번이고 감탄했습니다.
먹다 말고 눈앞에 보이는 버드나무와 버드나무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차에 둔 삼각대를 꺼내오는 부지런함.
타이머를 맞춰두고, 얼른 화각 안으로 뛰어들어갑니다.
막상 찍힌 사진을 보면, 그저 웃음이 나지만..
그렇게 우리가 즐겁게 사진 찍고 있을 때, 우리 앞에 강아지와 함께 나온 사람들이 있어 산책 나왔구나, 싶었는데요.
사진을 다 찍고 삼각대를 접고 있으니, "이제 사진 다 찍으셨어요~?" 물으셔서, 네~하고 대답했는데, 그분들은 우리가 사진 찍던 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으셨어요.
암말 않고 우리를 기다려주신 것.
세상에나, 이른 공원에는 이런 여유가 있는 것이었나. 감사한 마음.
(그나저나 역시 명당자리였군!?)
다시 우리는 벤치에 앉았습니다.
바로 보이는 잔디 언덕에서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어요.
하얀 천막과 하얀 의자, 그리고 가을톤의 꽃들을 아름답게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결혼하는 사람 좋겠다,
오늘 오는 하객들도 좋겠다,
이 결혼식 나도 보고 싶다 그러면서.
우리는 벤치에서 자리를 정리하고 공원을 더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여기는 잔디 위를 마음껏 뛰어놀아도 되는 것 같았어요.
한 아이가 내 앞에서 어찌나 신나게 뛰던지, 저도 그 신남 따라 하고 싶어서 갑자기 아주 갑자기 잔디 위를 다다다다, 뛰었습니다.
맑고 상쾌한 공기가 나를 가르고, 폭신한 잔디의 감촉이 느껴지는 기분 좋은 뜀박질.
숨이 헉헉 차는데도 웃음만 나옵니다.
어른이 아이를 따라 할 때, 그것은 대부분 이렇게 좋은 일일 것 같아요.
공원을 더 걸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좋은 공원.
벤치가 잘 마련된 공간에서는 아이의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용산가족공원에는 정말 가족적인 행사가 많구나 생각하게 되고.
언젠가부터는 이제 차 소리마저 들리지 않습니다.
새소리 들리고, 바람 불자 단풍잎이 우수수 비처럼 눈처럼 떨어집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서로의 모습을 담다가 머리 위로 툭, 나뭇잎이 떨어졌는데 그게 뭐가 웃기다고 흐흐흐 웃고요.
그러다가 평평한 잔디와 흙길이 트랙처럼 되어있는 곳이 나왔는데, 잔디 위에서 몇 명은 캐치볼을 하고, 어르신들은 흙길 위를 맨발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놓여있는 벤치는 평평한 의자가 아니라 약간의 각도가 있는 의자. 의심하며 앉는데 엉덩이와 허리를 잘 받쳐주는 적당한 각도의 의자였어요.
오 좋은데! 각도가 있어 고개는 자연스레 하늘을 보게 되고, 이곳은 유난히 운동장같이 뻥 뚫려있어 하늘이 넓고 크게 보입니다.
이곳 풍경이 너무 좋아서 아까부터 한 다짐을 또 하게 됩니다. 다음에 또 와야지, 또 와야지.
이곳에서도 기분 좋은 뜀박질을 몇 차례 하고... 다시 의자에 앉아 있는데 통화를 하면서 마치 신발 신은 듯 아주 자연스레 걷는 맨발의 어르신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보였습니다.
약간의 주저함이 있었지만, 나도...? 하는 마음이 들었고, 내가 앉은 벤치에서 수돗가는 얼마 되지 않아서 호기롭게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었습니다.
맨발로 흙길을 밟았습니다.
앗, 차갑고 단단합니다.
자글자글 작은 자갈이 발바닥에 그대로 느껴집니다. 속에서 악악, 작은 비명이 들리지만 참으며 걸었습니다.
차갑고 단단한 와중에 볕이 있는 곳과 그늘진 곳의 땅은 확연히 차이가 났고, 이런 감촉이 얼마 만인가 생각했습니다.
맨발로 땅 밟기. 쉬운 일 같지만 어렵기도 한 일.
다 걸은 뒤 수돗가에 앉아 발을 씻고,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었습니다.
그대로 전해지던 자갈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바닥이 얼마나 폭신한지 제 발은 새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맨발이란 얼마나 연약한지, 신발은 얼마나 든든한 지 몇 분의 체험으로 알 수 있었던 시간.
아까 든든하게 먹은 것 같았는데 금세 소화가 다 되었습니다.
우리는 공원을 나와 점심을 배불리 먹었고, 근처 동네를 산책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상설전시도 보고, 국중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굿즈샵도 들렀습니다.
(국내 굿즈의 자부심을 느끼며, 즐거이 관광객 모드가 되어 멋있는 굿즈와 함께 귀여운 거북이 청자합을 업어(?) 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을 나와 공원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다시 또 공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우와, 용산 100배 즐기기~!)
오후가 되자 오전과는 다르게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와글와글 모여 있는 사람들, 잔디 여기저기에는 사람들의 돗자리로 가득해, 인기 많은 공원임을 눈으로 실감했습니다.
오전, 한적했던 공원을 잘 즐겼다 생각했습니다.
다음번 주말에도 일찍 눈을 떠야지, 오전에 공원으로 소풍을 가야지.
우리 내일 또 놀자~ 그렇게 말하며 저는 배시시 웃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