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주말에는 본가에 내려가 가족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 사이 전시를 세 개나 보았고, 각각의 전시장에서 작가님들을 만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감사한 기회로 그림가게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그림 몇 점과 콜라주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분명 분주한 시간을 보냈는데, 막상 편지에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걱정과 고민만 하다 시간만 갑니다.
공부 시작 전 괜한 정리를 하듯 인터넷 창을 켜고, 쌓여있는 메일을 정리했어요.
이제야 겨우, 읽지 않은 메일이 스무 개 정도로 줄었습니다.
휴지통 비운 지도 오래였는지, 휴지통에는 200개 넘는 메일이 쌓여있고요.
꼭 봐야 하는 업무 메일을 제외하고, 읽고 있는 메일은 하루에 한두 개 정도일까.
쌓이고 쌓이는 정보와 광고에 지치고 피곤해하면서도 일어나자마자 찾게 되는 것은 역시나 폰폰, 핸드폰, 스마트폰.
이 작은 것을 하루 종일 내내 끼고 있습니다.
지친 날이면 소파에 벌러덩 누워 인스타 돋보기를 누르고, 볼 거 없다 하며 릴스와 숏츠에 빠져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어머나 세상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기특함이 아니라 당혹감과 헛헛함.
그렇게 얻은 것은 무엇인가.
약간의 웃음, 요즘 뜨는 소품, 핫한 장소 같은 것일까나.
(얼마 전에 본 '띱' 영상은 "폰 중독 - 이거 없이 어떻게 살았냐"편.
친구와 술 거나하게 먹고 눈 떠보니 어찌 들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혁준.
몇 시지, 확인하려는데 핸드폰이 내 주변에 없네?
시리야 시리야, 아무리 불러봐도 영 대답이 없다.
집 안 여기저기 찾아봐도 없다. 없어.
어제 만난 친구한테 있을까 싶어 전화하려 해도 아아 핸드폰이 없잖아...!
핸드폰을 잃어버린 혁준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에서 확인해보세요.ㅎㅎ)
그러다
요즘 내가 가만히 보냈던 시간을 떠올립니다.
냉장고에 있던 부추.
엄마가 오빠 손에 들러 내게 보내준 부추는, 한 움큼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넉넉한 양.
신문지를 돌돌 싼 그 위에는 '부추'라고 엄마 글씨가 쓰여있습니다.
부추는 씻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듬어야 하니까, 영 손이 가지 않는 재료 중 하나인데요.
해 먹어야지 마음만 먹고 그냥 내버려두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신문지를 펼치기 두려운 때가 오기도 하는데.
어느 날, 이젠 정말 어쩔 수 없잖아, 상했으면 버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돌돌 만 신문지를 살그미 펼쳤습니다.
파릇파릇 싱싱했던 부추는 숨이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상태.
이 게으른 딸은 엄마한텐 비밀로 하고 조금도 해먹지 않고 버리려 했는데 부추 상태를 보니 마음이 참...
버리는 것 없이 모두 먹을 수 있던 부추는 생기를 잃었고, 짓물러 버렸고. 그러나 그중 60퍼센트쯤은 살릴 수 있겠더라고요.
주방 바닥에 철퍼덕 앉아 부추를 하나하나 다듬기로 합니다.
40분쯤 걸렸습니다.
이런 것도 일이다, 다듬는 데서 벌써 이렇게 많은 시간을 까먹고.
그러나 이런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닌 걸까.
하지만 부추를 먹으려면 이 단계가 꼭 필요하잖아.
게다가 이 가만한 시간이 얼마 만인지.
지금 내게 이것은 좋은 시간이구나.
이것은 여유, 내게 그런 시간이 있구나 그런 인식.
다 다듬은 뒤 부추를 씻었습니다. 빗방울이 붙은 듯 부추는 참으로 예뻤습니다.
부추를 정성스레 무쳐서 반찬통에 넣었습니다.
다듬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고르게 손질하며 매만지는 일.
다듬으니 달라지네, 나아지네.
그곳에 깃드는 애정, 시간, 그리고 마음.
나 또한 부추가 되어봅니다.
나 또한 다듬으면 나아질까. 정말, 정말 그럴까.
내 몸도 마음도 나의 작업도, 내 주변 모든 것들도...
믿자, 다듬어 나아지는 쪽으로. 그렇게 믿자.
고요하고 가만한,
부추와 나 단둘이 시간 보내며 얻은 것은 그런 것. 다듬는 시간에 대한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