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진 날씨로 베란다 창가 쪽에 있던 식물들을 거실 창쪽으로 옮겼습니다.
같은 베란다에 있는 것이지만, 거실에는 온기가 있으니까.
아직은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지는 않으니 식물들은 바깥바람을 조금 더 쐬다가 이곳으로, 따뜻한 집 안으로 옮겨지겠지요.
작은 이동이지만 식물들을 옮기니 선반에 가려 보이지 않던 마른 잎들이 바닥에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빗자루를 가져와 슥슥 쓸어보는데 먼지도 함께 풀풀 날립니다.
조금 귀찮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던 참에, 바깥으로 빗자루 쓰는 소리가 들립니다.
경비 아저씨가 낙엽을 쓸고 계십니다.
아저씨의 빗자루질은 씩씩하고 경쾌합니다.
괜히 반가운 빗자루질.
맞춘 것 하나 없지만 시간도 도구도 맞춘 듯, 우리는 각자의 빗자루를 들고 내 앞의 무언가를 쓸고 있습니다.
조금 귀찮다는 생각이 버려지고 내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으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보자는 결심으로까지 가버립니다.
빗자루질하면 올해 여름에 봤던 '퍼펙트 데이즈'가 자주 떠오릅니다.
주인공 히라야마의 알람 소리는 동네 어르신의 빗자루 소리.
아마 하루도 빼먹지 않고 부지런히 내 집 앞을 그리고 주변의 길마저 깨끗하게 청소하는 소리.
흐릿한 내 기억에 엔딩크레딧에 가장 먼저 나오는 인물은 아침을 열어주었던 빗자루 할머니. broom grandma.
히라야마는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뜨고 이불을 개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느 날은 기계 소음이 꽤나 오래 들렸습니다.
계속되는 소음에 불쾌해지려다 밖을 내다보니, 바람을 불어 나뭇잎을 날리는 청소기의 소리였습니다.
아아 저 소리였구나, 기계 소리가 꽤 크구나, 몰랐던 소음이 이해가 되자 그저 가만히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맘때면 바닥에 나뭇잎이 워낙 많이 떨어지니까 그것을 손쉽게 청소하는 데는 기계만 한 게 없을 것입니다.
요즘은 가로수 밑에 있는 포대를 자주 봅니다.
그 안은 나뭇잎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정돈된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히라야마가 누군가의 앞선 소리에 도움받아 일어나듯 저 또한 저보다 훨씬 이른 누군가의 움직임 덕분에 길을 걷습니다.
그 나뭇잎 포대를 볼 때마다 산타의 선물 보따리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부지런히 모아 한곳에 담아둔 나뭇잎 보따리는, 대부분 빵빵합니다.
대충 모았을 리 없을 것 같은 모양.
눈에 보여서 그렇습니다.
눈으로 보면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많다고 느낍니다.
저 또한 이제는 집 안을 청소기로 매일매일 돌리면서 간편하게 청소를 끝내지만 가끔은 비질을 합니다.
내가 집어 드는 도구는 상황에 따라 다르고, 내 앞과 내 주변과 내 일상을 닦는 일이 언제나 그렇게 즐거울 리는 없지만.
영화 속 아침을 깨우는 어르신의 비질, 경비 아저씨의 경쾌한 비질, 그리고 눈으로 보여 더욱 감사해지는 것들을 떠올립니다.
거기에 들어있을 수고로움과 부지런함 그리고 성실 같은 것을.
그리고 잠들기 전, 은은한 조명에 의지해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마음 깊이 들어온 문장은 이것.
삶은 이런 것일까. 아침이 되면, 오래도록 해왔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는 일상을 이어가는 것, 삶의 공간을 부지런히 돌보는 것, 그래서 경건하고도 유쾌한 것.
-서현숙, 《변두리의 마음》중에서, 사계절, 18-19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