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잠이 잘 오지 않던 어느 밤의 편지를 드릴까 해요.
혼자 깨어있는 시간은 참 더디고 그렇게 누워 있다가, 생각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이 생각 편지는 아침이 되면 영 떠오르지 않으니까 급한 대로 핸드폰을 손에 들었습니다.
깊은 방 안에서 나와 함께 눈이 떠진 액정. 밝기를 최대한 낮춰도 잠깐은 눈이 부십니다.
메모 앱을 열어 토독톡톡. 엄지로 쓰는 편지.
손톱보다 작은 자판으로 생각을 따라가려니 오타가 만발합니다.
모든 글자들이 작습니다. 모두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일회용'은 '일뢰용'이 되고 '고맙다'는 '고맙디'가 되고 '여전히'는 '녀잔히'가 되고 있지만.
바르게 고치려다 계속 씁니다.
나만 알아보면 되니까.
그렇게 쓴 편지를 조금 다듬으며 큰 자판에서 열 손가락으로 옮겨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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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가 넘고 2시가 넘고 내 몸과 정신은 잠자는 법을 까먹어버린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노트북을 붙잡고 있어 뻑뻑해진 눈에 일회용 안대를 둘러보지만 뜨거운 온도만 선명하게 느껴질 뿐 잠들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니 잠은, 올 때 소중히 해야 합니다.
아 잠이 와주었구나 고맙다, 감사합니다.
잘 자겠습니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할 것은 나쁜 생각으로 빠지지 않는 것. 이상한 생각으로 괴로워하지 않는 것.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만들어 걱정하지 않는 것.
그 길로 가지 않게 조심하며 차라리 내일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려 보기로 합니다.
오늘 못 간 서점에 가야지, 사고 싶은 그림책을 구경해야지, 마음에 든다면 구매도 해야지.
내일은 춥다는데 무엇을 입고 나가야 할까.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창밖으로 본 것은 눈.
바람이 많이 불어 비인지 눈인지 헷갈리지만 가로등 불빛에 보이는 저것은 확실한 눈.
고요한 밤, 나 혼자 첫눈을 본 것인가 왜인지 외로운 기분이었는데 그러다 아니지 나처럼 누군가도 이걸 봤겠지. 보고 있겠지.
참 소리 없는 눈.
그 눈은 내일 쌓여 있을까.
겨울 부츠를 신는 건 좀 오버이려나.
이렇게 쓰고 있어도 여전히 쌩쌩합니다.
오늘 밥도 잘 먹었고 카페인 섭취도 안 했는데, 설마 낮에 먹은 사탕만 한 초콜릿이 이유라면 말도 안 되고 만약 그 이유라도 이렇게 잠이 안 오다니 억울합니다.
이렇게 별 이유 없이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사실 오늘은 오전 시간을 모두 잠에게 줘버렸어요.
12시간 가까이 침대에 있었습니다.
계속 잘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날.
에라 모르겠다 오늘 하루는 쉬는 거야 생각하면서도 무거운 몸으로 일어났는데 개운한 느낌보다 숭덩숭덩 가버리는 하루가 아깝기만 합니다.
하루를 오후에 시작하는 것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
잠에게 오전을 다 줘버려서. 내가 준 건데도 하루 반나절을 빼앗긴 기분입니다.
이렇게 게을러서야, 이렇게 체력이 약해져서야 뭘 할 수 있겠나 싶고 그렇게 나 자신을 한심스레 여기는 것은 늦잠 뒤에 하게 되는 지겨운 패턴입니다.
잠이 고픕니다.
자고 싶습니다.
새벽 3시가 넘었습니다.
저는 과연 잘 수 있을까요?
이제 내 손안에 쥐어졌던 핸드폰을 협탁에 두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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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다행히도 잠들었습니다.
눈 떠보니 아침.
잔 것 같지는 않지만 잔 것이겠지...
일어나 거실로 나와 보니 눈이, 눈이 많이도 와 있었습니다.
새벽에 내가 본 눈, 진눈깨비 같은 저 눈, 금세 다 녹아 사라지겠지.
아직 11월인데, 이번 주에 눈 소식이 있다 해도 반짝 왔다 그치겠지.
누구는 첫눈을 봤다고 하고 누구는 첫눈을 못 봤다고 하는 그 애매한 눈이겠지.
그러나, 이 풍경은 모두에게 보이는 첫눈이었습니다.
확실한 첫눈. 11월 27일 수요일에는 세상이 온통 하얗게 덮였습니다.
이제 그친 건가 싶어 조금 아쉬워지려는데 내 마음을 읽은 듯 다시 눈이 내렸습니다.
눈 내리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시간엔 잔잔히 내리다가, 어느 순간엔 화난 듯 내리고.
끝없이 내릴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그쳤다가, 다시 또 펄펄 내리는 눈이었습니다.
언제나, 눈은 마법 같습니다.
낮에는 잠 안 오는 밤에 계획해 본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서점을 가기로 했습니다.
겨울 부츠도 꺼냈습니다. 이렇게 눈이 많이도 와주었으니까요.
나와서 보는 겨울 풍경은 또 다르게 아름답습니다.
바닥에 쌓인 눈은 대부분 슬러시처럼 변했지만 나무 위의 눈은 녹지 않았고 수형을 더 멋져 보이게 합니다.
여전히 눈이 내렸습니다. 우산을 챙겼지만 쓰지 않았습니다.
그 어디라도 겨울 왕국, 핸드폰을 들어 지금뿐인 이 풍경을 핸드폰 카메라로 담았습니다.
카메라 렌즈에 눈이 톡 떨어져 화면이 뽀얗게 변했습니다.
눈이 만들어낸 화면은 아련한 풍경을 자아내서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고 여기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단풍잎 위에도 눈이 쌓였습니다.
눈이 지금 이렇게 오는 게 맞는 걸까, 제때에 오는 것은 무엇인지.
소설의 절기는 지났지만 단풍잎은 이 정도의 눈은 예상하지 못했으려나, 가만히 눈을 덮고 있는 모습.
바닥엔 노란 은행잎과 하얀 눈이 함께 있고.
가을과 겨울의 풍경을 동시에 보게 되는, 조금은 이상한 11월입니다.
이렇게 특별한 눈이 온 날.
사진첩에 기록되는 눈의 장면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같은 날 우리 모두 꽤나 닮은 사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은 하얀 눈 덕분이겠지요.
그나저나 오늘 밤은, 모두가 비슷한 모습을 하고서 푹 잘 수 있기를.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밤의 글을 버무려 쓴 오늘의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