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입술 포진이 낫자마자 아랫입술 왼쪽에 또 생겼습니다.
지난주, 바르는 약으로는 한계가 있어 혹시나 먹는 약을 처방받을 수 있을까 싶어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은 거의 다 낫고 있는 제 입술을 보시더니 항생제 약을 써서 바로 낫는 거면 주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내성이 생길 수 있고, 콩팥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며 약 처방은 안된다고, 헤르페스는 한번 생기면 평생 같이 가야 하는 것이고, 아이가 있다면 뽀뽀도 하지 말고 수건도 같이 쓰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진료비도 받지 않으시고 바르는 약 있으면 잘 바르라고 하시더군요.
모두 맞는 말씀이었지요. 평생 가는 것, 옮길 수 있는 것, 저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의사선생님이 한 번 더 그렇게 짚어주시니 괜히 더 풀이 죽었어요.
이제 조금만 피곤해도 약간 겁이 난달까요. 이러다 또 포진 생기는 거 아닌가 의심하며 입술을 만져보면 약간 간질간질 표면이 오돌토돌 느껴져요, 그렇담 바로 다음날 포진 당첨입니다.
어제 그런 느낌이더니, 오늘 아침.
예감은 빗나가지 않고 아랫입술에 볼록한 물집이 생겼습니다.
제 입술 누가 그리 신경 쓸까마는... 혼자... 참, 그러합니다.
입 안이면 모르겠는데 입 밖으로 다 보이니까.
제 물집은 드러나길 좋아하는 외향적인 녀석.
왜 이러나 몰라요. 이 정도의 물집은 숨기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나와 내 입술은 어쩌다 이리 만나 서로가 고생일까요.
몇 년 전 포진 약 사러 들어간 어느 약국에서는, 이러다 입술 모양 다 망가진다고 했던 말도 떠오르네요.
제 입술을 자세히 보면 포진 흉터가 여러 개 남아 있습니다.
내 어디 한구석 신경 쓰이는 곳 있다면 다른 사람들 볼 때 그 부분을 괜히 더 보게 되잖아요.
제 입술이 이럴 땐 사람들 입술을 자주 보게 돼요.
색도 모양도 다 다르죠. 촉촉하고 매끄러운, 그렇게 건강한 입술을 보면 예쁘다 부럽다 속으로 그래요.
어디서 들었던 것 같아요.
입술은 입 안쪽 살이 도르르 말아 올려진 것이라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건 제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그 말을 믿으며 상상해요.
다르게 피어난 입술을요. 태어난 입술을요.
입술을 보면 많은 것이 보이기도 하지요.
어쩔 도리 없이 드러나 버리는 나의 혈색, 나의 상태.
피부 중 가장 불그스레한 색, 부드럽고 연한 살.
작년 어느 날엔, 거울로 제 입술을 한참 들여다본 날이 있습니다.
그때 쓴 시를 적어 봅니다.
<입술>
톡
봉숭아 씨
터지듯
앙 다문 게
톡 터졌다
꽃술처럼 가운데
꽃잎처럼 피었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색깔
나의 지금
꾹
다문 입술은 슬퍼
미소의 곡선과
어설픈 동그라미
나를 살린다
먹고
말하고
사랑하고
하하. 이렇게 제 시를 옮겨 적고, 입술에 대한 편지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입술을 자꾸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 물집 덕분일까요...
하지만, 겨울이 오니 입술뿐 아니라 취약해진 몸 구석구석을 느낍니다.
뚝뚝 떨어지는 저의 체력이 아쉬워지고 속상해지지만, 그래도 겨울을 싫어하지는 않을 거예요.
물집핀 입술이 불편하긴 해도, 저는 여전히 먹을 수 있고 웃을 수 있지요.
포진은 나을 것이고, 건조해진 몸엔 크림을 바르면 됩니다.
작은 것들에 도움받으며 촉촉해지렵니다.
이 겨울을, 잘 보낼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