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연말의 기분은 변함없이 찾아옵니다.
한 해가 벌써 이렇게 갔구나……
이 문장 끝에 산뜻한 느낌표보다는 말줄임표가 써집니다.
그 안에 많은 것이 생략되어 들어있지요.
여러분은 어떤 기분으로 연말을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맘때 저는 늘 비슷하게 그렇습니다. 한 해에 내가 무엇을 한 것보다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한 해를 회고해 보며 어느 한쪽 헛헛함이 드는 것은 그건, 그건 다 제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그 욕심 떼놓고 보면 올 한 해도 무사히 잘 보냈습니다. 그거면 됐다, 충분하다 싶습니다.
이것은 너무 소박한가 자기 위안인가 의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믿기로 했습니다.
자주 나를 깎아내리고, 왜 이것밖에 못 하나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마음은 단골처럼 찾아오기에 정말 괜찮다고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그렇게 말해줘야 합니다.
어제는 아가가 한참 가다가 엄마, 아빠를 보면서 "산책 가자" 해서, 이렇게 같이 돌아다니는 게 산책이라고 말해 줬다.
오늘은 또 한참 가다가 엄마, 아빠를 보면서 "저기 큰길에 가면 산책이 있을 거야"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너무 춥진 않나, 멀진 않나, 지루하진 않나 싶어서 "집에 갈래? 계속 갈까?" 물었더니 아가가 말했다.
"응, 끝까지 갈 거야."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
-금정연,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북트리거, 22p.
위 문장을 읽으면서 알아차린 것이 있습니다.
새해의 첫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빈틈없이 존재했다는 사실을요.
이 한 해에 뭐가 있을지 몰랐는데, 왔습니다 여기까지.
그렇게 우리는 끝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그 자체로 대견하고 대단한 것이라 또 한 번 토닥입니다.
며칠 전에 알게 된 건, 던 리스트(DONE LIST).
할 일을 적는 투두 리스트(TO DO LIST)와는 달리 한 일을 적는 것인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자신 있게 조용히 적을 수 있는 것은, 존재했다는 것.
□ 한 해의 끝까지 왔음
^^
눈웃음도 지어봅니다.
올 한 해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가올 새해 안에는 아가의 말처럼 산책도 있을 것이고, 김밥도, 소풍도, 사랑도, 우정도, 웃음도, 눈물도 모두 들어 있을 테지요.
비슷하고 익숙하겠지만 또 알 수 없는 새로운 일들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는 또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 안으로 들어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