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은 연결된 하나.
마음의 체력은 몸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니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몸을 움직여보려 하는데, 날씨가 추워지니 산책마저 꺼려지고요.
실외가 어렵다면 실내에서, 러닝머신에서라도 걸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헬스장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곳에 와본지는 아파트 입주 때, 단지 안에 뭐가 있나 어슬렁거리며 구경할 때이니 벌써 5년이 다 되어갑니다.
겨울이었음에도 답답한 공기와 강렬한(!) 냄새로 인상이 찌푸려져, 이곳을 이용하긴 어렵겠구나 싶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다시 헬스장에 가본 것인데 언제 리모델링을 마쳤는지 꽤나 깔끔해져 있었고, 잊지 못할 냄새도 나지 않아서 이 정도면 쾌적하고 훌륭하다 생각되었지요.
그리곤 며칠 뒤, 헬스장에 등록했습니다.
여러 헬스기구가 있지만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구는 아직 제겐 러닝머신 하나.
이름은 러닝머신이지만 아직 제겐 워킹머신.
얼마나 걸어야 할까. 목표치를 설정해 보는데 자주 걸었던 대략적인 산책 코스를 지도 앱으로 확인해 보니 편도로 2.5km가 나옵니다.
기계 위에서 그 정도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두 볼을 스치는 산뜻한 공기도, 가끔 불어와주는 바람도, 새소리도 없지만.
적당히 유지되고 있는 온습도가 있을 것이고, 언제나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곳은 창문 없는 꽉 막힌 실내이고 러닝머신 기계와 연결된 TV같은 것이 있지만 그것을 보려면 아마도 개인이 챙겨오는 줄 이어폰이 필요해 보이고, 소리 없는 화면을 보자니 조금 답답할 것만 같은데 (지금 여기는 와이파이도 잘 안 터지고 LTE 안테나도 한 칸만 들어오고... 헬스장 노래 말고 내가 선곡한 노래 들으며 걷고 싶은데...) 화면 향해 리모컨으로 전원 버튼을 눌러보는데 영 반응이 없습니다.
조금 뒤, 옆 옆 러닝머신에 다른 사람이 올라오고, 그 사람의 화면은 단번에 나오는 걸 보니 제가 선택한 기계는 아마도 고장이었나 싶어요.
멈췄다 나왔다 하던 에어팟의 노래가 다시 들리기 시작해, 저는 그저 까만 화면을 앞에 두고 에어팟 음악에 집중하며 걷기로 했습니다.
다른 것을 건드리다가는 또 끊길지 몰라, 유튜브가 재생해 주는 음악을 착실히 들으며 걷습니다.
이 와중에 선명히 볼 수 있는 것은 기계 위의 숫자.
'0'에서 시작한 숫자는 내가 움직인 만큼 점점 늘어납니다.
내가 쓰는 시간과 칼로리 그리고 거리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기엔 절대 마이너스가 없고 플러스만 있습니다. 계속 계속 숫자는 커집니다.
어느 때엔 시간의 숫자를 보다가, 어느 때엔 칼로리를 보며 이것은 얼마만큼의 밥공기이려나 생각했다가, 거리는 내가 걷는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귓속으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를 따라 하다 자주 틀리고, 신나는 노래가 나올 땐 리듬에 맞춰 걸어보다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첫날에는, 이런 계획을 신년에 하지 않고 이 애매모호한 연말 12월 27일 금요일에 시작한 것을 기특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이 가벼운 걷기를 마음먹는다면 나는 매일매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로부터 오늘까지 14일이 흘렀고, 걷기 한 날과 안 한 날을 지금 막 확인해 보니 7일과 7일 딱 반반으로 사이좋게 나누어졌네요.
추운 계절, 다른 운동을 시작하지 않는 이상, 저는 아마도 계속 단지 안 헬스장을 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이곳은 저렴하여 좋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100걸음이 채 안 되어 도착하니 추운 날에도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고요.
또 하나 좋은 것은 차림새인데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에 가벼운 캡 모자를 푹 눌러쓰고, 편안한 운동복 차림에 두꺼운 패딩조끼를 입고 내려갑니다.
그렇게 내려가 아주 간단히 스트레칭하고 러닝머신 위를 걸으면 땀이 날까 싶을 만큼 여전히 몸은 건조한데 20분쯤 걷고 나면 몸은 슬슬 데워집니다. 과연 언제나, 걷기를 시작하며 걷기를 얕보는데 걷고 걷고 걷다 보면 이것도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매번 몸으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한편 헬스장에서는 언제나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사람을 봅니다.
그러면 저도 괜히 따라 뛰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요.
속도를 올려 많이 걸었던 날, 종아리가 쑤신 것을, 폼 롤러에서 종아리를 다른 날보다 더 많이 풀어주면서 으, 아, 거리는 제 몸을 알아봤기에, 기분으로 욕심으로 그렇게 내달리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옆에서 훅훅훅 소리를 내며 뛰는 사람이 보여도 나는 그저 내 속도대로 가자고 마음먹으며 괜히 팔을 앞뒤로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오늘도 걷고 왔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걷고 걷고 걸으며, 이것은 참 제자리걸음이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내가 제자리걸음을 하구 있구나 생각하며 오늘도 기계 위의 숫자를 봅니다.
여전히 오늘도 숫자는 늘어나고, 시간은 가고 칼로리와 거리도 쭉쭉 늘어만 갑니다.
그러다, 이것이 정말 제자리걸음일까 하고 의심했어요.
이것은 나아가는 것일까, 한자리에 머무는 것일까.
앞으로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으면서 걷는 것처럼 다리를 움직이는 제자리걸음.
사전에는 '걷는 것처럼'이라 말하고 있지만 저는 러닝머신 위에서 확실히 걷고 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를 닮은 러닝머신 위에서 걷고 걷고 걷는 것은, 반복되는 시간 위에 서 있는 사람을 형상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구분 없는 시간 안에서 연말과 새해를 지나온 요즘이기 때문에.
현재의 나를 의심하며 어떻게 지내야 할까 고민하는 새해이기 때문에.
역시, 이곳에서는 볼 것이 많이 없으므로 눈앞의 숫자를 보며 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에요.
나는 제자리걸음 하는 듯 보여도,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를 것이다.
나는 가고 있다. 시간을 쓰고 다리를 쓰고 그렇게 쓰면서 간다.
마이너스 없는 플러스로. 과거가 아닌 미래로.
그렇게 오늘은 제자리걸음이지만 제자리걸음이 아닌 것이라는 결론을 내며 걸었습니다.
시간 위에서 넘어지지 않고.
언젠가는 제자리걸음이 제자리 뛰기로 바뀌는 날도 오리라 믿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