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지난 예능 '콩콩팥팥'을 보고 있어요.
'이광수, 김우빈, 도경수, 김기방의 코믹 다큐 찐친들의 밭캉스'
강원도 인제 밭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우당탕탕 생초보 농사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그들이 마주한 밭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길을 내는 일이었습니다.
'이랑'과 '고랑'
밭농사 한 번 지어본 적 없는 저도 이랑과 고랑을 듣기만 했지, 무엇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배웠습니다.
이랑은 씨를 심어 곡식이 자라도록 흙을 쌓아 두둑하게 만든 곳이고, 고랑은 그 두둑한 땅과 땅 사이의 길고 좁게 들어간 곳을 말합니다.
이랑 고랑 이랑 고랑... 이랑과 고랑은 그렇게 밭 위에서 나란히 사이좋게 생겨납니다.
이랑이 곡식의 자리라면, 고랑은 사람의 길이 됩니다.
무언가를 심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길을 내는 것이고, 적당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데에 농사는 시작부터 묵직한 배움이 있구나 느꼈어요.
그들은 힘을 모아 이랑에 씨를 심고 모종을 심습니다.
아마 그들은 며칠 간격으로 시간을 내어 밭에 와 보는데 그때마다 무언가가 자라나 있습니다.
식물은 땅에서 자라납니다. 못 본 사이 식물들은 이슬을 머금고 햇빛을 머금고 바람을 머금고 땅 밑에 뿌리를 뻗고 위로 위로 자라납니다.
작은 싹을 틔었을 때 멤버들은 와다다다 달려와 땅을 봅니다.
손톱만 한 새싹을 보려고 몸을 바짝 구부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작은 것들을 보며 환하게 웃습니다.
새싹이 났다고, 깻잎이 자랐다고, 신이 나 소리칩니다.
밤 야식으로 먹은 수박으로 멤버들은 얼굴 위로 수박 씨 뱉기 내기를 하는데, 문득 그것을 심어보자 말하고 고이 간직했다가 까만 수박씨를 밭에 심기도 했습니다.
몇 주 뒤 놀랍게도 수박은 새싹을 틔었고, 그 뒤에는 잎이 커져 있고 노란 꽃이 피었고, 얼마 뒤에는 아기 주먹만 한 수박이 열렸습니다.
그 작은 크기의 수박에도 수박의 그 줄무늬가 어엿하게 보이는데 정말 너무나 귀여웠습니다.
수박씨 심은 데 수박이 났습니다.
당연할 것 같은 사실에 놀라는 것은 그 결과가 언제나 늘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키운 것도 아닌데 저도 같이 놀라고 반가워하고 기특해 했습니다.
밭농사에는 물론 기쁨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모든 씨앗과 모종이 무럭무럭 자라나 있지 않고, 야들야들한 여린 잎은 벌레의 먹이가 되고, 무성한 잡초들이 밭을 장악하기도 합니다.
햇볕은 쨍쨍 뜨겁기만 한데, 할 일은 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농사에 쉬운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 편안히 보고 있지만 저것이 내 일이었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자주 말했을 것 같아요.
그러다 괜히 나도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다 마음이 드는 것은, 올 때마다 달라지는 식물의 모습이 예쁘고 기특해서, 비가 오는 날 기분이 너무 좋다 한껏 웃으며 일하는 그들의 모습이, 노을 질 무렵 허리를 피면 넓고 예쁜 하늘이, 힘든 와중에도 피식거릴 수 있는 유머와 장난이,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이거 먹어봐 맛있지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저 푸릇푸릇 한 색들과 뜨거운 열기가 곧 있으면 여기에도 펼쳐질 텐데도 저기는 꼭 다른 세상 다른 나라 같습니다.
호호 불어먹는 두부와 비지장을, 빵빠레 초코바 멜론을 넣어 만든 특별한 팥빙수를, 갓 따온 깻잎으로 만든 향 짙은 깻잎 모히또, 방금 딴 가지로 만든 바삭한 가지 탕수를 한 입 저도 먹고 싶습니다. 야밤에 이것을 침 흘리며 시청합니다.
고됨 속에서도 틈틈이 톡톡 터지는 좋은 것들에 괜히 마음이 갑니다.
아무래도 지금 여기에는 없는 풍경이어서 이토록 추운 계절이어서 달콤한 아이스크림 한 입, 저 푸른 녹색을 부럽게 바라보며 웃고 있는 나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