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을 뚫고 도서관에 들어갈 때 훅 느껴지는 첫 공기는 따뜻함이었다가 빵빵한 외투만큼이나 빵빵한 히터 공기로 실내 공기는 금세 답답함으로 바뀌지만 추운 겨울 이만한 곳이 어디 있나 싶고.
히터 위치를 잘 파악하고 적당한 곳을 돌아다니며 목도리를 느슨하게 풀고 따뜻한 공기에 적응해 갑니다.
시간이 촉박한 것도 아닌데 제 집처럼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들어설 때면 몸과 마음이 어색해 경주마처럼 시야가 좁아져 제 앞만 보게 됩니다.
눈에 익은 열람 자료실이라 해도 오랜만에 오면 공간에도 적응이 필요합니다.
보고 싶은 책, 대출 가능. 책의 위치를 캡처해 둔 책이 책의 위치에 있을 때, 그 사이 빌려 간 사람이 없어 다행인 책을 반갑게 찾아낸 후에는 서가를 한가로이 돌아다녀 봅니다.
그러다가도, 당장 읽을 책이 있는 사람처럼 눈을 재빠르게 굴리기도 하는데, 사실 저에게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고. 아무도 제게 관심이 없지요.
어쨌거나 여전히 천천히 걸으며 먼 나라들이 빼곡히 적힌 모퉁이의 서가에 가서는 책등에 포르투갈, 바르셀로나, 아이슬란드...
먼 나라를 속으로 발음해 보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며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공간에 녹아들며 그제야 공간을 훤히 보게 됩니다.
서가와 서가 사이, 넓고 튼튼한 책상 위 사람들이 보입니다.
모두 앉아 있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서성이는 사람은 나뿐인 것처럼 모두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누군가는 공부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책을 보는 모습.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왜 이리도 아름다운지.
괜히 따라 하고 싶습니다.
도서관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이 집중 모드를 느끼려고.
내가 있는 공간의 분위기,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은 어찌나 중요한지. 하루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제야 아차차, 나 일본어 공부하기로 했지 알아차립니다.
도서관 검색창에, '일본어'라고 쳐봅니다.
730번대로 이동합니다.
여러 책을 뒤적이다가 '일상생활 일본어'책을 대출했습니다.
저녁을 먹고선 일본어 책을 펼쳤습니다.
집 소파 위에서, 도서관에서 내가 본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발음 몇 번 해보고 아 어렵네 쉽게 책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마음만으로 안 되는 것. 늘어지는 집에서 공부하기란 이리도 어려운 것.
왜 외국어는 늘 하다 마는 걸까...
올해 초,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의 지난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2021년)
Q. 최정훈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올까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굳게 믿으며 해올 수 있었던 마음 말이에요.
- 내가 애정을 쏟아부은 시간과 순간에서요.
이 질문과 답변을 자주 생각합니다.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열심히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겠지요.
저 또한 그런 모습을 올해에는 잘 만들고 싶습니다.
책이 책의 위치에 잘 있는 것처럼.
나도 나의 위치에서 나의 할 일을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