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의원 다녀왔습니다.
선생님의 얕은 한숨, 총체적 난국이라는 나의 몸.
약 먹으면 나아질 거라는 선생님의 말이 든든하기도 했지만 어쩌다 몸이 이렇게 약해졌나 싶어 많이 속상했습니다.
보약을 지었습니다.
한의원을 다녀온 그 주에는 마음도 많이 약해져서인지 다 좋아질 거라는 소중한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고마워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엄마와 통화하다가 울음을 턱 끝까지 참아보려는데 연기가 안 되고 다 들켜버려서 아이처럼 엉엉 울기도 했어요.
발랄하게 별일 아니라고 말하면 되는걸, 보약 지어 먹는 일이 뭐 그리 큰일이라고, 거 참. 저도 참.
사실 저는 겨울부터 조금씩 조금씩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어수선하고 추웠던 계절만큼 올해 저의 겨울도 참 길었던 것 같습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걱정하고 자책하고 불안을 산처럼 만들고.
열심히 하지 않는 나를 몰아세우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를 또 싫어하고.
남과 비교하고.
오늘 하루 내가 한 것을 보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어느 밤에는 자려고 누웠는데 심장박동이, 둥. 둥. 둥. 둥, 느껴져요.
작은북이 내 안에 있는 것처럼. 숨이 답답해 큰 한숨을 몰아 뱉어줘야 합니다.
자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마음먹어도 쉽게 잠은 오지 않습니다.
그런 밤은 참 괴롭습니다.
고민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로 어떤 것들을 나는 과연 즐겨도 되는 것인가.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나이만 먹고 있는 듯한 느낌.
그 모든 생각들은 결국 '내가 행복해도 되나'하는 의심까지 미치게 된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나를 너무나 괴롭히고 있구나.
선생님은 나의 몸이 이렇게 된 데에는 예민함이 큰 원인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런 말을 듣고 한의원 간이침대에 누워 침 맞으며 천장을 보는데, 하-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한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싶었습니다.
이런 나를 부정하며 싫다 생각하고 있는데.
며칠 뒤, 사랑하는 이가 예민함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만큼 보고 느끼는 것도 많을 것이라고요.
부정해 봤자 나는 나. 정말 그렇게 내가 보고 느끼는 나만의 것이 있을 테지요.
보약을 챙겨 먹은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갑니다.
저는 지금, 무엇 때문에 '괴로운 나'가 아니라 '괴로웠던 나'로, 힘든 것을 과거형으로 만들었습니다.
힘들었던 과거의 나를 흘려보내고 지금은 괜찮은 나로, 좋은 상태를 현재로 만드는 것을 훈련하듯 반복했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쉬나,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잘 쉬기로 했습니다.
자책과 죄책은 이제 제발 그만.
뭐 어때, 그래도 돼, 괜찮아. 그런 얘기 남한테는 잘 해줄 수 있으면서 스스로에게는 왜 이렇게 박한지.
요즘은 시간이 되면 교보문고에 자주 가려고 합니다.
대형서점이 주는 여유와 편안함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슬렁어슬렁 서점을 산책하다, 제가 좋아하는 잉그리드 고돈 작가의 그림이 보여 책을 반갑게 들어 보았는데요.
비닐로 꽁꽁 포장되어 있었지요. 꽤 크고 묵직한 책을 들어 구경하는데,
책 뒤표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어요.
행복해야 한다.
내 안의 목소리는 이렇게 말하지만
내가 말한다.
'행복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
'글쎄, 그냥 행복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알겠어.'
'그럼 뭐가 중요한지 언젠가는 알게 될 것 같아?'
'아니.'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내 안의 목소리가
목청을 가다듬고 나지막이 말한다.
'그래도 행복해 봐.'
-잉그리드 고돈, 톤 텔레헨(안미란 옮김), 《해야 한다》, 롭 중에서
그래도, 행복하기.
진짜로 진심으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