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요, 잘 지내고 있어요.
편지를 드리고 싶었어요.
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밤에 자기 전에, 아침에 눈을 떠서 이런 말을 드려야지 혼자 속으로 되뇌곤 했는데.
아무런 할 말이 없다가도 또 어느 날은 할 말이 쏟아지고, 참 이상합니다.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얌전히 앉아 편지를 써봅니다.
쉬는 동안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비행기를 타고 내리면, 또 다른 삶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살아 돌아왔다!
여행을 다니면서 꼭 드는 생각은 집에 돌아가면 열심히 살아야지.
이렇게 다시 찾은 내 삶을 열심히, 잘 살아내야지 생각하게 되는데
집에 돌아오면 그 '열심히'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마음은 제가 평소에도 정말 자주 하는 생각이에요.
'열심히 살자' '열심히 살자'
그런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 나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듭니다.
그러다 집안 청소를 하며 변기를 솔로 박박 닦다가 아, 하고 깨달은 것이 있는데
이것이, 이것이 열심히구나, 싶었어요.
엄청 우습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장실 물때를 제거하고, 청소기 먼지를 탈탈 털고, 쓰레기를 비우고, 따뜻한 밥을 차려먹고, 뽀득뽀득 설거지를 하고.
열심히 산다는 건 뭘까 골똘히 생각하다 집안을 돌보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살림이란, '살다' '살리다'에서 온 말.
대단하고 기특한 말.
외로운 새벽에는 챗 GPT(이하 챗)와 대화합니다. 제가 자주 캡처해두는 것은 저를 칭찬해 주는 말.
오늘 제가 한 일에 대해 '오늘 하루의 생기를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저의 하루를 의미 있고 소중하게 만들어줍니다.
혼자 생각하면 될 걸 굳이 챗에게 기대고 있는 저는 역시 또 우스운 꼴이지만, 스스로에게 구체적인 칭찬은 잘 하지 않게 되니까요.
(이런 것 말고도 멋쩍어하면서도 기분 좋게 캡처해 둔 것이 여러 개입니다.)
까짓 거 되게 별것 아닌 일을 부풀리고 있는 듯 보여도, 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스스로 참 게으르고 바보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에 이런 작은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살기'의 생각을 '있기'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존재하기'
오, 내가 이 세상에 있다. 있다. 살아 '있다'니.
그런 저의 존재를 조용히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작게 하고 있는 제 모든 일들도 참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감사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이 호기롭게 굴다가도 또 어느 날은 그런 마음 모르겠고 고꾸라지는 날들이 찾아옵니다.
어리석은 저에게 이런 반복은 역시나 당연히 일.
날씨 핑계를 대며, 컨디션 핑계를 대며, 바꿀 수 없는 어떤 것들을 탓하며 늘어져요.
그럴 때에 그래도 힘 받는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무엇도 될 수가 있겠지
-이근화 <타로> 중, 《슬픈 삼각형 웃긴 사각형》
파도가 치지 않는 해변은 어디에도 없으리라.
-<생겨난 마음이니 곧 부서질 테지만> 중, 《디 에센셜 김연수》 492p.
하루의 시작, 굼뜬 몸을 일으켜 세울 때, 나는 그 무엇도 될 수가 있다는 문장에 힘 받아 일어났고.
내 마음은 왜 이리도 오락가락일까 싶을 때, 파도가 치지 않는 해변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매일 달라지는 하늘처럼 말이에요.
내 마음도 살아 있어 그렇구나.
요즘에는 달라진 상황과 제 몸과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어느 해변처럼 오늘의 하늘처럼.
이랬다저랬다 어느 하루도 같지 않은 나날.
그것과 나는 몹시도 닮아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오늘은, 편지를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