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편지를 드립니다.
잘 지내셨나요.
편지를 써야지 생각만 하고 너무 미뤄졌어요.
잠이 오지 않는 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공글리다, 그렇게 잠은 더 오지 않고 시계를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벌떡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새벽 2시입니다.
산뜻한 봄 편지라 제목을 써야지 했는데 완전 밤 편지가 되었어요.
새 옷을 입고선 예쁜 편지지에 인사하고 싶었는데요.
늘 입던 옷을 입고, 비슷한 얼굴로 인사드립니다.
편지엔 때가 있거늘 연말의 회고도, 연시의 새로움도 모두 놓쳤어요.
그러나 편지란 불쑥의 묘미도 있는 것이니까.
이렇게 짠! 해보며 나타나봅니다.
사월입니다.
사월을 지내고 있으면서도 아 벌써 사월이지 그런 사월이에요.
벚꽃이 참 예쁜 요즘이지요, 그런 말도 놓친 것 같아요.
벚꽃이 어딘가는 한창일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이제 벚꽃 지고 라일락이 피고 있습니다.
시간이 빠르다는 말은 최대한 하고 싶지 싶은데 또 그런 말을 하게 됩니다.
겨울이 길었어요.
겨울엔 풍경이 잠잠해서 눈치를 못 채겠어요.
그러나 요즘은 정말 하루하루 색이 달라져 있습니다. 노란 개나리 환하게 피었다가 연분홍 꽃이 피고 이제 연두색 잎들이 올라옵니다.
이제는 모를래도 모를 수 없게 온 세상이 봄이야 봄이야 알려주고 있어요.
사월의 색은 돋아납니다.
잠든 것이 깨어나 움직이듯 수채화가 번지듯 그러합니다. 아름답습니다.
오전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요가원 가는 길에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넙니다.
갈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개가 되지만
나만의 첫 번째 횡단보도를 건넌 뒤 두 번째 횡단보도를 건너 그렇게 가는 길로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여러 그루의 은행나무를 만납니다.
나뭇가지에 돋아난 은행나뭇잎은 손톱만 합니다.
주말이 지나고 가면 조금 더 커져있고, 숱도 풍성해져 있습니다.
괜히 흐뭇합니다.
내가 한 건 하나도 없는데요.
작고 여린 새순을 볼 수 있는 것은 딱 요맘때쯤.
꽃이 피는 것도 기적 같고, 새순이 자라는 것도 매번 매해 신기합니다.
새로이 돋아난 잎에선 윤이 나고, 작고 여린 새순을 보면 나도 따라 순해지고 싶고.
큰 나무를 보면 마음도 함께 커질까요.
그렇다면 저는 수시로 수시로 나무를 봐야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편지에서는, 최소한 얼굴 같은 로고는 바꿔서라도, 고정된 듯한 방식 어딘가는 업데이트가 돼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그런 때를 기다리며, 그런 나를 저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지만ㅎㅎ
편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큰 변화이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특별한 것이 평범한 것이고 평범함은 이미 특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런 것이 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가를 수 없습니다.
그럴싸한 모양새를 그리려다 자꾸만 미뤄집니다. 한 자라도 생각날 때 써야겠다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날씨 이야기를 하며 안부를 묻다가,
이번에 새로 바꾼 칫솔, 어디론가 사라진 속눈썹, 다 써버린 샴푸 통과 딱풀 같은 시시콜콜을 말하다, 어느 날은 조잘 재듯 많은 말을 쏟아내기도 할 테고,
그제와 어제처럼 닮은 듯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도 같습니다.
뒤늦게 찾아오는 후회와 유치함과 부끄러움은 여지없이 생기겠지만.
편지는 그래도 되지 않나, 하고 또 물으면
그래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요.
오늘처럼 이렇게 마음 가는 대로 쓰이더라도요, 너그럽게 봐주시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