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주말에는 강릉에 다녀왔습니다.
1박2일 여행을 다녀온 후 집에 돌아와 일요일 아침 눈을 떠서 강릉에 다녀온 촘촘한 여정을 편지에 쓰려고 했는데요.
그 좋았던 기억은 사진첩 속에, 머릿속 어딘가에 성글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랑하려고 편지 쓰나, 그런 마음 들어 쏙 집어넣어야 하는데(이미 해놓고!).
그래도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일단 도착해서는 장칼국수를 먹었고요.
장욱진 전시를 보러 갔습니다.
백색 건축의 대가, 리처드 마이어와 그의 설계사무소 마이어 파트너스가 설계한 솔올미술관에 드디어 다녀왔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새하얀 건물에 쭉쭉 뻗은 창이 시원해 개방감이 들었으나 뭐가 그리 급했는지 마감이 되지 않은 듯한 부분, 벌써부터 금이 가 있는 것을 보며 아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조금 흐린 눈을 하고 전시를 보았습니다.
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개인 소장' 캡션이 많았다는 것.
장욱진 화백은 그림이 완성되면 오래 붙잡고 있기보다 지인들에게 훌쩍 선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 소장 그림은 액자에 액자를 덧댄 이중 액자가 많았고 그 형태와 상태만으로도 이 그림을 얼마나 소중히 했는지, 그런 것을 보는 것이 흐뭇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해에 그린 그림과 함께 사진을 남겨보기도 했고, 그림을 보던 와중, 마음에 쏙 든 그림의 제목을 마음에 품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희조도. 이 그림은 부채 위에 두 마리의 새를 먹으로 간결하게 그린 작품인데요.
제목의 '희조(喜鳥)'는 기쁨이나 길한 소식을 상징하는 새.
희조희조, 입으로 발음해 보며 아담한 식당이나 카페의 이름으로 예쁘겠다, 그리고 또 어딘가에 이 단어를 써볼 수 있을까 궁리해 보는 잠깐의 시간은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쥐어지는 정직한 크기에 그가 채운 그림의 사이즈를 다시 봅니다.
책상 위에서 엽서만 한 크기에 종이를 오려 붙이며 작업하는 요즘의 저는 그의 그림을 보며 괜스레 힘을 얻습니다.
(23년 9월에도 장욱진 화백의 전시를 소개했었네요.)
저녁에는 강릉아트센터에서 강릉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공연도 보았습니다.
급하게 예매를 했던지라 3층에 앉았는데요.
맨 앞에 나와 곡을 설명해 주는 분도 피아니스트도 지휘자도 연주자도 3층까지는 시선을 주지 않았는데 그 기분이 아주 묘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연주를 몰래 보고 듣는 전지적 시점의 객석.
종교적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신이 있어 우리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우리가 열심히 살고 있는지 꾀를 부리고 있는지 다 알겠구나 싶었습니다. 무대에서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지만 손가락 하나에 음 하나에 허투루가 없는 집중과 몰입의 시간을 저는 감히 다 볼 수 있었던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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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너무 피곤해서 쿨쿨 잠만 자고 싶었는데, 밖에선 벌써 신나게 노는 소리가 들려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숙소 앞 바다로 나갔습니다.
막상 나오니 몸도 정신도 맑아졌습니다.
챙겨간 슬리퍼를 훌러덩 벗고 맨발로 바다 느끼기.
생생한 시원함이 온몸에 퍼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찰싹찰싹 적당히 밀려오는 파도 선을 따라 총총총 달려보기도 했습니다.
검은 츄리닝을 무릎 위까지 걷어올린 게 전부였던 저는 비키니 차림에 아랑곳 않고 천천히 맨발로 걷고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그런 멋진 할머니의 모습을 꿈꿔보면서요.
아직은 붐비지 않는 모래사장엔 둘 혹은 셋 넷 사람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시야에 들어오는 어린 남매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래놀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모래놀이, 그거 어떻게 하는 건가, 싶었지만 저도 무작정 모래를 손으로 파보았습니다.
따뜻한 겉흙을 걷어내니 속 안의 흙은 산뜻하고 촉촉했습니다.
구멍 두 개를 파서 양 발을 쑤욱 집어넣었습니다. 이것은 모래 양말이라며, 헤- 웃고.
제멋대로 즐겨보는 놀이에 저는 마냥 즐거웠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는 다시 해변가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모래사장이 아니라 해변가가 보이는 소나무 숲에 매트를 깔았습니다.
강릉에 있는 동안 들른 서점(고래책방, 윤슬서림)에서 산 책들을 가지고 와 책을 읽었습니다.
같은 도시락도 바깥공기를 쐬며 먹는 건 더 맛있다는데 책도 그러한 것인지. 맑은 공기에 책이 더 맛있게(!) 느껴지고.
책 봤다가 풍경 봤다가, 평화로운 시간을 누렸습니다.
유월의 바다는 이렇게 좋구나.
솔솔 적당히 부는 바닷바람과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에서 한참을 있다가 강릉에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진심으로 해보기도 한 유월의 여행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