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 이번 편지도 천천히 잘 읽어주세요. 🚦 이제 조금씩 속도를 내야 할 때 ⚪️ 이번 한 주는 의도치 않게 조금 쉬는 한 주가 되었습니다. 명절 전후로 마음 쓰는 날이 잦았던 탓인지 애써서 무언가를 할 의욕이 나지 않았어요. 몇몇 날을 넷플릭스에 유튜브에 하루 반나절을 몽땅 쓰기도 했습니다. 싱겁게 시간을 흘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간간이 들지만 멈출 수 없어요. 한 편이 두 편 되고, 두 편이 세 편 되고, 이러다 최종화까지 가버리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나를 유혹하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서 헤어 나오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멈춰있거나 혹은 여기에서의 1분이 10시간이 돼버리는 시간의 방에 들어가고 싶지만 저의 시간은 현재에서 어김없이 똑딱똑딱 지나가 버립니다. 그렇게 멍하니 온종일 눈 아프게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하루 끝에 내뱉을 말은 텅 비어버린 허무함일 겁니다. 불량식품을 내내 입에 달고 있는 듯한 기분에 하루 끝이 꽤나 텁텁할 것입니다. 그런 적이 여러 번 있는 경험자라 잘 알고 있지요. 그렇게 수많은 영상에 파묻혀 지낸 날, 이제 저는 괜스레 잠자기 전 책을 들고는 몇 페이지를 읽습니다. 그런다고 쉬이 보낸 하루가 알차지진 않지만 그래도 하루 끝에서만큼은 마침표를 잘 찍어야 할 것 같아서요. 텁텁한 입에 넣어주는 시원하고 담백한 동치미 한 모금 같은 맑은 기분을 내는 것. 그래 오늘 책도 읽었네,로 마무리되는 자기 위안. 그래봤자 사실 기분은, 개운하기보다는 여전히 조금 떫습니다. ⚪️ 두 번의 기회를 주는 것만 같은 음력 새해도 지났고요, 이제 더 이상 핑계 대며 도망갈 곳이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세운 계획들 중 어떤 것은 잘 되고 어떤 것은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한다던 마음과 의지는 어디로 가고 다시 이렇게 널브러져 있는 제 자신을 볼 때면, 또 이렇게 흐지부지 보내고 있구나 싶어 한심스럽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안 한 것에 가까우니까. 하지만 정말 저는 흐지부지한 인간이고 싶지 않습니다. 올해를 확실하게 잘 끝맺으려면 푹 꺼진 소파에서, 세상 달콤한 침대 위에서 벗어나야겠지요. 다시 꾸준함의 템포를 올리고 조금 더 성실히 촘촘히 하루하루를 보내자고 이곳에 다짐합니다. 이렇게 다짐했다가도 또다시 푹 퍼질 것을, 이 역시 경험자의 혜안으로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만 그럴 때마다 또 다짐하면 됩니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풀썩 주저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나를 일으키고 또 일으키고. ⚪️ 차도 많고, 속도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로 빠지거나 혹은 국도로 빠질 때 희한한 안도감과 편안함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좁아지며 달라지는 도로로 빠져야 할 때는 반드시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도 생각했어요. 아 나는 지금 속도를 줄여 휴게소에 왔구나, 혹 지금 나는 국도 구간에 있구나..하고요. 하지만 이제 다시 고속도로로 나갈 때가 되었다고 느껴요. 잘 달리면서도 틈틈이 잘 쉬는 것. 늘 고속도로에만 있는 것은 힘들잖아요. 정 힘들고 지친다 싶을 때엔 휴게소로 빠지거나 천천히 달리는 국도로 가면 됩니다. 저의 목표는 일단 잘 그려진 그림들을 모아 낼 책 한 권. 그 도착지를 향해 잘 달리고 또 잘 쉬겠습니다. 의도치 않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잠깐의 쉬는 시간은 지나갔다고 생각해요. 이제 팔을 걷어붙이고 조금씩 속도를 내봅니다. 🚙 이렇게 하루가 갔구나 싶으면서 불 꺼진 방안에서 그런 일상의 소리들을 들으면 평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무섭게 외로워졌다. 하지만 곧 엄마가 들어와 하루종일 잠만 자느냐며 엉덩이를 툭툭 치고 불을 켜면, 그렇게 해서 내게 익숙한 것들, 아직 며칠은 거뜬한 귤과 무시무시하게도 길어서 영영 끝나지 않을 듯한 몇 권의 책들이 눈에 들어오면 나는 다시 이 겨울을 이렇게 보내고 새로운 봄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아 괜찮아지곤 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리운 겨울방학의 시간들. -김금희 산문, <사랑 밖의 모든 말들>, 문학동네, 17p 이제 두꺼운 겉옷은 점점 가벼워질테고, 올해의 겨울을 그리워하는 날이 저에게도 오겠죠. 다시 또 새로운 봄이 오고 있어요. 언제나 짧기만 한 겨울방학을 이렇게 지납니다. 😃 꼭 소개하고 싶은 전시 이 전시는 정말 너무 좋아서 잘 소개하고 싶습니다. 완두콩레터를 보며 혹, 하실 수 있도록 잘 소개해 볼게요! '드는봄' 전시는 총 3가지의 설치 작품이 있습니다. 2. 해와 달, 가변크기, 조명, 나무, 전동장치, 2022 3. 퇴비언덕, 가변크기, 1~3년간 발효한 퇴비, 2022 모든 작업의 크기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가변크기이지요. 그것이 정말 매력적인 것인데요, 차근차근 살펴보자면, <1. 땅의 볕>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입니다. 말린 식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전시공간이 꽤나 어두워 조금 놀랐지만 상주해 있던 작가님은 다정한 인사를 건네주셨고 이 어두움도 곧 적응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자연은 그런 것이잖아요. 적응하면 편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았지만 어둠에 눈이 익어 주위가 차차 보이는 암순응을 전시장 안에서 경험하였습니다. 매달린 식물들은, 작가님이 자급자족의 삶을 지내며 농사를 짓고 있는 공동체 텃밭에서 나온 곡식이나 채소를 말린 것들입니다. 작물의 뿌리와 꼭지, 양파, 마늘, 사과, 귤의 껍질도 있고, 배춧잎, 시래기, 고사리, 박 등 아주 다양한 작물이 실에 꿰어져 걸려 있는데 그 모양과 형태와 색깔이 너무나 자연스러운데다 보기에도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어떤 것은 꽃 같기도 했고, 어떤 것은 별 같기도 했고, 어떤 것은 행성 같아 보이기도 했어요. 말린 작물들을 조심스럽게나마 하나하나 만져볼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귀한 경험인가요 :) ![]() <2. 해와 달> 가장 넓은 벽면에 위치한, 해와 달의 움직임이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해와 달은 저마다의 기울기, 저마다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작가님의 설명이 내내 남았던 작업인데요. 해와 달은 전시장 전체를 360도 빙 돌아 움직입니다. 해는 해대로, 달은 달대로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전시장 안에 서 있으면 해와 달이 나의 품에 들어올 수도 있어요. 저는 뿜어져 나오는 빔 화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기도 했어요. 해와 달의 형상을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 누가 뭐라 해도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해와 달을 보고 있자니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지기도 했습니다. 해와 달의 모습을 비춰주는 전동장치 또한 아날로그적인 톱니바퀴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약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드문드문 작게 들리는데 그것마저도 좋았습니다. <3. 퇴비언덕> 마지막 세 번째는 말 그대로 퇴비로 만들어진 언덕입니다. 1~3년간 발효한 퇴비를 직접 가져오셨다고 하는데요, 퇴비라고 해서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불쾌한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나뭇잎, 톱밥 등이 섞여 만들어진 천연퇴비이지요. 신기하게도 이 흙 위에서 다양한 새싹들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살아있는 작품이라니! 햇빛도 없는 이곳에서 매주 다르게 변하는 흙의 모습, 이 새싹들의 고향은 서울 안 어느 갤러리,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직 정체 모를 새싹들은 어떤 이름있는 나물이나 우리가 알 법한 식물로 자라나겠지요. 흙더미를 천천히 자세히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작은 벌레나 곤충이에요. 전시 안내서에는 이런 문구가 있어요. *공간이 어둡고, 흙에는 살아있는 벌레들이 있습니다. 관람에 유의해 주세요. 전시장에서 이런 문구를 보게 되니, 참으로 신선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퇴비언덕과 함께 보이는 잔잔한 영상에서는 눈으로 흘깃 보면 절대 모를 흙과 곤충, 유익한 지렁이의 움직임이 자연의 소리와 함께 천천히 보입니다. 그 또한 다큐 영상을 보듯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 낯선 전시장 안을 둘러보며 속으로 물음표를 갖고 있던 저를 어떻게 알아보시고는 작가님은 살짝 다가와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무엇인가 더 알고 싶다면 작가님께 여쭤보면 친절히 알려주실 거예요. 혼자 찾아온 제게도 다정하고 세세하게 많은 말씀을 들려주셨거든요. 처음엔 어두운 전시장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적응하면 이보다 아늑하고 편할 수가 없어요. 밀도 있는, 아주 인상 깊은 전시장에서 저는 혼자 오래오래 머물다가 나왔습니다. 실제로 가보지 않으면 잡히지 않는, 전시장 안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분명한 실감이 있습니다. 그러려고 전시를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발견과 감흥을 만나려고요. 전시가 2월 26일까지니 여건이 되시는 분들은 꼭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 나무의 동사 Sookee(수키) - 회복의 노래 ♬ 비옥한 땅 아래에서 깊게 깊게 뿌리 내리거라 신록의 이파리처럼 파릇하게 돋아나라 어느 날 때가 되었을 때에 너의 마음도 너의 몸도 짙어져라 저 초록처럼 초록처럼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은 여전히 겨울 같은데요, 저의 쉬는 시간이 지나가 버린 것처럼 이 겨울 공기도 스르륵 어김없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 계절을 잘 보내주어야 새로이 움트는 계절을 잘 맞이할 수 있겠지요. P.S. 이번 편지도 조금 길었지요? 긴 편지를 읽어주셔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저는 다음에도 완두콩같은 것을 주워 다시 또 돌아올게요. :) NOTE 꾸준한 뉴스레터를 잘 만들기 위해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보내주시는 후원금은 감사히 소중히 잘 받아 더 나은 양질의 컨텐츠로 보답하겠습니다. 🚀 뉴스레터 후원 🚀 3333-04-0148917 (카카오뱅크, 정혜련) (후원이라는 이야기에 부담 갖지 마세요, 떠나가지 마세요. 후원은 자유입니다.) 꾸준히 읽어주신 것만도 제겐 더없는 후원이고 크나큰 힘입니다. 완두콩 구독자분들 늘 감사합니다 💚 주변에 소문도 많이 내주시어요! (찡긋.) mind_ryeon@naver.com 수신거부 Unsubscribe |
✦ (정)혜련이가 보내는 편지, HYEPEA LE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