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동안 잘 쉬셨나요 :) 이번 한 주는 정말 빠르게 지나갔어요. 오늘 편지엔 저의 이야기가 조금 길게 담겼습니다. 이번 편지도 잘 읽어주시기를 😌 💭 행복한데 슬픈 이번 한 주는 정말 쏜살같이, 완전한 휴일도 여행도 아닌 빨간 날들을 순식간에 지나왔어요. 1월 28일 금요일부터 2월 1일 화요일까지 4박 5일의 일정을 마치고 저는 집에 잘 돌아왔습니다. 시가에 갔다가 본가에 머물렀고, 그 사이 엄마의 생일과 제 생일도 있었어요. 금요일엔 시가에, 토요일엔 본가에 가서 엄마의 생일을 챙겼고, 일요일엔 장에 나갔고, 월요일엔 만두를 빚었고, 화요일엔 차례를 지내고 제 생일도 보냈습니다. 그 사이사이, 대중교통으로의 이동과 상 차리기, 밥만 먹으면 찾아오는 지긋지긋한 설거지를 꾸준히 해냈지요. 올해는 본가에 오랜만에 오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2년여를 가보지 못하다가 본가에서 명절을 보낸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본가에 가는 것이 마냥 즐겁지가 않습니다. 처음엔 반짝하고 반갑지만 그것은 순간적으로 금세 사라집니다. 제가 살던 동네는 구도심이 되어 점점 빛바래어가고 초등학교 때부터 지내온 본가의 아파트는 벌써 2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우리 남매는 독립을 했고 그곳에서 아빠와 엄마는 단둘이 지내고 계세요. 남향의 아파트에 2층이라 햇살이 잘 들어오고 산과 나무도 잘 보이지만 예전에 지어졌던 아파트가 다 그렇듯 어느 방엔 웃풍이 돌고 뒷베란다는 춥습니다. 변함없는 평면도와 배치, 오래된 가재도구, 낡은 가구들, 닳은 모서리들, 얼룩 벽지, 빠지고 없어진 흔적들이 보입니다. 노인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부모님의 얼굴, 주름살, 흰머리, 작아진 키, 굽어진 어깨, 불편한 허리, 아픈 다리가 신경 쓰입니다. 평소엔 잘 보지도 듣지도 않는 TV소리도, 취약한 방음도 달갑지 않습니다. 세월의 야속함은 눈 감은 채, 오래된 아파트에서 그래도 불행한 기분 없이 일단 우리는 그 속에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지냅니다. 식탁에서는 모두 앉아 밥을 먹을 수가 없어 다섯 식구가 모두 모이는 날엔 거실에 상을 펴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 갓 지은 밥을 따뜻하게 먹습니다. 그렇게 늘 변하지 않는 풍경 속에서 그런대로 잘 지내오고 있습니다. 본가에 가서 아프거나 골골댄 적이 없는데 3일째 되던 날, 이상하게 머리가 무겁고 아파 방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곧바로 살며시 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는데 그 사람은 아빠도 오빠도 남편도 아닌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부엌 일을 하다 말고 앞치마를 두른 채 문을 열고 들어와 가볍게 잠깐 누워 있겠다고 한 내 머리에 손을 얹으며 아무 걱정 말고 푹 자라고 말한 뒤 조용히 방을 나갔습니다. 엄마의 목소리에는 속상함과 걱정이 너무 많이 묻어 있어서 엄마가 나가고 간 뒤 저는 많이 아픈 것도 아니면서도 괜히 미안스럽고 서럽고, 엄마의 말과 손이 너무 따뜻한 나머지 갑자기 울컥하여 모로 누운 눈에서 눈물이 줄줄 나왔습니다. 그 와중에 계속 들려오는 건 거실에서의 TV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세 사람의 대화소리, 그에 더해진 건 부엌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도마 소리였습니다. TV 앞과 도마 앞, 같은 지붕 아래에서 이렇게 다른 분위기가 흐르다니. 나는 누워있고 엄만 별일 안한 다는 듯 쉴 새 없이 집안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누워 있으면서도 편치 않고 마음이 내내 쓰였습니다. 부엌에서의 노동이 내 귀에만 들리는 것인가 싶고 그 모든 소리가 뒤섞여 들려오는 것이 싫어 아픈 머리가 더 아픈 것 같았고,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는 싫은 소리를 제거했습니다. 잠을 자기는커녕 정신은 또렷하기만 했고, 고독한 방에서 훌쩍였습니다. 엄마가 점점 늙어가는 것이 싫고 매번 반복되는 이런 상황에 화도 나고, 가뜩이나 엄마에게 말 못 할 일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는데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습니다. 그저 엄마의 도마 소리가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렇게 몇 십분을 줄줄 울고는 약의 힘으로 일어났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운 얼굴을 지우려 세수를 박박 하고 나와 언젠가부터 그렇듯, 언제 그랬냐는 듯 흘린 눈물은 흘려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 함께 모여 앉아 만두를 빚었습니다. 혼자 눈물을 닦아 버리면 아주아주 별일 아닌 일이 조용히 지나갑니다. 작은 행복에 웃어버리면 그만입니다. 내가 울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고, 이렇게 몰래 우는 일이 많아진 건 속이 상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알고 보면 아빠도 엄마도 오빠도 남편에게도, 그런 날은 많을 것입니다. 슬픈 가운데 잠깐씩 행복하고, 행복하면서도 자꾸 슬퍼지는 명절이었습니다. 급하지 않은 일들은 자꾸만 미뤄지고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하는 나날. 굳어진 생활의 관성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꾀하기엔 조금 힘든 시점. 언젠가는 어느 여행지 숙소에서 명절을 지내보자는 말이 나왔는데 말이 말인 채로 끝나지 않도록, 모두가 즐거운 환경 속에서 서운함과 미움이 껴들지 못하는 명절 풍경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거기에 훗날 그리는 꿈은 양지바른 땅에 번듯하고 따뜻한 부모님의 집을 지을 수 있는 날도 꼭 오리라 바라는 것이고, 그리하여 저는 본가에 갈 때마다 열심히 살자고 매번 마음을 먹게 됩니다. 집에서도 혼자 있지만 집은 번잡스러운 노동의 공간이지 고요가 고이는 공간은 아니다. 게다가 집이 퍽 좁았다. 20평형 아파트에 네 식구 기본 살림뿐인데도 남은 공간이 손바닥만 했으니 발 뻗고 누우면 몸이 레고블록처럼 방에 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에서 뭐가 해일처럼 수시로 밀려왔고 그것을 애써 눌러두곤 했다. 애들 보는 데서 울면 안 되니까. 그렇게 저만치 밀쳐놨던 눈물이 꼭 차에서 터졌다. 일몰의 쓸쓸함과 음악의 척척함이 준 효과도 컸으리라. 어떤 날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마저 울고 안 운 사람처럼 얼굴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갔다. 그 모든 걸, 내 눈물범벅 청승의 역사를 자동차는 지켜보았다. -은유, <다가오는 말들>, 어크로스, 79p 그러고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영정사진이 걸린, 웃풍이 도는 추운 방은 지켜 보았겠지요. 내가 운 것을. 아니 할머니, 할아버지도 보고 들으셨으려나요. 이 손녀가 주룩주룩 우는 것을요, 제게 들린 슬픈 도마 소리를요. 그렇다면 위에서 더 잘 봐주세요. 나와 우리를, 그리고 특히나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소중히 모시는 우리 엄마와 아빠를요. 🥟 이런 한식 책, 또 없습니다 출처: 교보문고 필자 54명, 한식 레시피 1백58품, 한식 대표 요리 전문가들, 참여 인원 1백여 명, 사진 612장, 제작 기간 2년. 이 모든 수식어가 붙은 <K FOOD: 한식의 비밀> 책을 소개해 드립니다. 이 책은 1987년 창간한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에서 약 2년여간 만든 책이며 디자인하우스가 펴내고 공익 재단 오뚜기함태호재단에서 제작비를 지원해 만들어진 책입니다. 총 5권으로 다섯 권의 표지에는 한국의 미를 표현하는 주요 요소인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인 오색을 사용, 삽화에는 각각 책 속의 키워드를 표현한 이미지와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생생한 재료의 색 표현을 위해 백색과 흑색은 지양하고 짙은 남색, 자주색으로 변형 / 삽화는 동양화가 김진이 작가가 그렸다고 합니다.) 페이지가 무려 1,128페이지나 되네요. 책 소개에 이런 말이 나와 있습니다. "한식은 '만든다'라고 하지 않고 '빚는다'라고 말한다. 그냥 빚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손맛을 더해 빚는데, 이는 비비는 행위로 드러난다. 한민족의 대표적 발효 음식도 대부분 비비는 손맛을 통해 완성된다." 이번 설날에는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만두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만두도 빚기 전에 만두 속을 골고루 섞어 비벼주고요, 얇은 만두피에 속을 가득 얹고는 터지지 않게 조심하며 만두를 빚습니다. 거기에 정성이 안 들어갈 수가 없어요. 정성스레 비비고 빚어 만든 만두를 한 입 가득 먹습니다. 먹기 싫은 한 살도 함께 먹고요. 소장 가치 충분할 것 같은 이 책은 작년 가을에 나왔는데요, 소개하고 싶어 메모해 두었지만 적당한 때를 찾지 못하다가 대명절, 만두를 만들어 먹은 이 즈음에 소개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 괜찮아지기 위해 Anson Seabra - Trying My best ♬ 항상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해요. 잘 모르겠어요. 완벽한 길이 어디인지. 하지만 나는 알아요. 괜찮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장기하의 '새해 복' 노래를 추천하면 역시나 결이 맞았으려나요. 방방 뛰고 싶은 연휴였다기 보다 조용한 곡이 더 잘 어울리는 나날이었답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이 곡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어요. P.S. 편지가 도착하는 2월 4일은 입춘이지요. 신기하게도 봄은 오겠죠? 저도 다음주에 맑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NOTE 꾸준한 뉴스레터를 잘 만들기 위해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보내주시는 후원금은 감사히 소중히 잘 받아 더 나은 양질의 컨텐츠로 보답하겠습니다. 🚀 뉴스레터 후원 🚀 3333-04-0148917 (카카오뱅크, 정혜련) (후원이라는 이야기에 부담 갖지 마세요, 떠나가지 마세요. 후원은 자유입니다.) 꾸준히 읽어주신 것만도 제겐 더없는 후원이고 크나큰 힘입니다. 완두콩 구독자분들 늘 감사합니다 💚 mind_ryeon@naver.com 수신거부 Unsubscribe |
✦ (정)혜련이가 보내는 편지, HYEPEA LE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