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요. 🙂 짧아서 늘 아쉬운 달, 2월 마지막 주에 인사드립니다. 이번 편지도 잘 읽어주세요 :) 🧤 분명한 것 한 주 사이에 눈 내리는 것을 두 번이나 봤습니다. 펄펄 내렸지만 두 번 모두 찰나였고 금세 녹아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저는 좀 아쉬웠습니다. 꿈결 속 내 눈에만 보인 듯, 눈과 나 둘만 아는 것 같은 분위기에 눈은 아주 살며시 왔다가 갔어요. 저는 눈도 좋고요, 추운 것은 정말 싫지만 겨울도 좀 좋아합니다. 겹겹이 챙겨 입은 옷 위에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단추와 지퍼도 꼼꼼히 채우고, 털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두 손에 착착 끼고, 부츠를 신고 그렇게 완전히 무장해서 나가는 겨울의 공기에 약간 씩씩해지고 신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씩씩함과 신남과는 다르게 그런 것은 사치라는 듯, 겨울은 냉정하게 차갑고, 그런 공기에 두 뺨은 아리고 코는 맵고 따갑습니다. 아주 가끔은 맵고 따가운 겨울의 공기가 정신 차려! 하며 냉수마찰하듯 정신이 번쩍 들게, 아주 맑고 상쾌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정신과 기운을 차립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공기는 여전히 차갑고 으으으 추워하면서 걸음을 재촉하고 어느 따뜻한 실내로 들어갔을 때의 노곤함, 확 풀어지는 기분은 겨울 안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추운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아주 각별한 따뜻함이 있습니다. 김이 폴폴 나는 따뜻한 잎차나 코코아도 겨울에 먹을 때 제일 맛있는 것 같고요. 겨울에 나누는 온기도 특별하지요. 하지만 곧 3월을 앞두고 있고 이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겨울의 끝자락이 아쉽기만 합니다. 늘 이런 마음이에요. 왜 기대하는 마음은 잘 생기지 않고 아쉬움의 끝에서 늘 동동거리는지, 약간 떨치고 싶은 버릇입니다. 눈이 많이 와서 여기저기 듬뿍듬뿍 쌓여있다면 눈을 오리모양으로 만들어 주는 눈 집게도 사려고 했고, 눈사람도 적극적으로 만들어보려고 했고, 순하게 퍼진 호빵 같은 눈송이들도 더 구경하고 싶었는데, 이제 한동안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 모든 것은 내 힘으로 되지 않고 하늘의 뜻으로 어쩌다가 생기는 만약과 가정의 일이니까요. 금세 사라진 눈은, 이제 겨울은 간다고, 이제 그만 아쉬워하라고, 선물같이 내려와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쉬워하다가도 따뜻한 봄 햇살에 싹이 나오는 것을 보고, 벚꽃이 피는 눈부신 계절 안에서는 또 엄청 신나고 좋아할 거면서. 끝에서는 늘 미련 있는 사람처럼 굽니다. 헤어지면서 안녕을 길게 하는 사람입니다. 겨울이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는데, 눈이 내려와 인사를 해주는 듯해서 아주 반갑고 많이 고마웠습니다. 안녀엉- 내년에 또 만나아. 분명했던 눈의 계절을 지나, 다행히도 분명히도 봄은 오겠지요. 추워서 움츠렸던 어깨와 근육들도 조금씩 펴지고 말랑말랑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따뜻한 차는 맛있고, 그것은 내 뜻대로 언제든 더 마실 수 있습니다. 봄도 잘 맞이해 줄 거예요. 만날 때의 인사도 반갑게, 길게 해줄 겁니다. 👋 🙂 눈에 들어온 그림 서점 땡스북스에서 본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지난날의 스케치: 버지니아 울프 회고록'이란 책이었는데, 사실 저는 책의 내용보다 표지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어요. 표지 날개 안쪽에 적힌 정보는 '©Helene Schjefbeck' 발음하기에도 어려운 그 이름을 살짝 담아온 뒤 집에 와 검색을 해봅니다. 핀란드 대표 화가, 헬렌 쉐르백. 알려진 누군가를 검색하면 정보와 생애, 작업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이렇게 쉽게 얻는 정보는 고맙고 검색 덕분에 어딘가에서 언뜻 보았던 낯익은 그림들도 그의 작품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날을 잡고 그의 작업들을 찾고 또 찾아보았는데 찾아볼수록 좋아서, 아예 프린트를 하여 몇 장의 종이들을 야무지게 묶어두었습니다. 헬렌 쉐르백의 그림들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도 있어 며칠 전에 보았어요. 사회상도 엿볼 수 있는데 이 당시 여성에게는 작품 소유권이 없어 전시회에서 나온 수익금을 오빠가 당연하게 받았으며, 어머니는 늘 오빠가 먼저였고, 예술가인 딸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집안일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보수적인 사회, 가부장적인 가족, 재정적인 어려움과 불편한 몸에도 헬렌은 묵묵히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어느 날 찾아왔던 에이나르와 소울메이트처럼 2년여의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사랑으로 품었던 에이나르는 떠나고 약혼자를 만나자 헬렌은 상실의 아픔을 겪습니다. 그렇게 다 포기할 것처럼 굴다가도 헬렌은 천천히 다시 일어섭니다.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마주하고 깊어진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다행히 그에겐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그리고 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헬레나가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후에 에이나르와도 천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계속 가까운 친구 사이로 지냈다고 해요.) 추워진 집에 불을 때고, 설거지를 하고,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바닥청소를 하고, 이불을 정리합니다. 그렇게 다시 자신을 살핍니다. 청소한 물을 문밖으로 휙 하고 버리는 장면들. 예술인도 생활인임을 보여주는,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에도 저는 마음이 갑니다. 사회의 편견과 억압 속에서도 자신의 삶과 그림을 놓지 않았던 헬렌. 헬렌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 북유럽의 풍경과 색채를 보고 싶은 분, 그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더더욱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자부합니다. 😀 👀 핀란드 영화라서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그 먼 나라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언어에서부터 느껴지지만, 우리에겐 친절한 자막이 있고 언어를 몰라도 감정과 표정으로 충분히 잘 흡수됩니다. 게다가 화실의 풍경, 그림 그리는 장면들도 많이 나와서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어요. (저는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구매(2,500원)해 보았습니다.) 👀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안티 조키넨'입니다. 핀란드 작가 라켈 리에후의 소설 <Helene>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해요. 안티 조키넨 감독은 단편 영화, TV 쇼 등을 만들고 그 외에 비욘세, 셀린 디온, 윌 스미스 등 유명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던 다양한 이력이 있는데 그 경험들 덕분인지 북유럽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색채와 영상미가 그림처럼 펼쳐져 정말 아름답습니다.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도 영화와 무척 잘 어울립니다. 🎨 헬렌 쉐르백 (Helene Schjerfbeck 1862.7.10 - 1946.1.23) ▫️ '여성화가'라고 불리기보다 그냥 '화가'로 인정받고 싶었던 북유럽의 대표적인 화가 ▫️미술에 대한 재능으로 11살에 장학금을 받고 핀란드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 ▫️1917년 50세가 넘어서야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30 ~ 40년대에 걸쳐 여러 전시회에서 자신의 그림을 성공적으로 전시 ▫️전쟁과 가난 등 그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주제들을 화폭에 담았으며 사실주의 작품과 자화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헬렌의 생일 7월 10일은 핀란드 수채화 협회의 주도로 2004년부터 '미술의 날'로 지정해 기념할 정도로 핀란드에서 중요한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다. 그림은, 이런 평범한 인간에게도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알랑거리며 맞춰주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깊은 부분에 숨어 있어 평소에는 자기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감동하는 힘'을 그저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 불러일으킵니다. 그저 눈앞에 '있을'뿐인 그림. 그러나 우리들이 그것에 가까이 다가서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있음' 자체로 시각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부를 흔들어놓는 그림. (...) 문자도, 소리도 없이 그저 침묵 속에서 우리들에게 보이길 바라며 지내온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 그리고 또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을 기다리는 그림들. 그중 하나의 그림과 만난 요행을 누린 저는 미의 진실을 접하고, 그 조용한 감동을 지금까지도 반추하고 있습니다. 그저 '있을'뿐인 그림 앞에서 받는 조용한 감동. 그것은 나만이 느끼는 온전한 감동이며 그 파동과 울림은 조용하지만 경이롭고 작게도 크게도, 내가 받을 수 있는 만큼으로 퍼집니다. 요즘 저는, 식빵을 베어 물 듯 하루 어느 시간에 조금씩 천천히 최혜진 작가님의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을 읽고 있습니다. 그중 와닿았던 부분이 <구원의 미술관> 책의 일부분인데, 궁금하여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어요. 좋은 책이 좋은 책을 불러주었습니다. ☺️ 마음을 배부르게 해주는 책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헬렌 쉐르백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레 찾게 된 책인데, (아직까지 헬렌 쉐르백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이 책도 정말 정말 좋아서 추천하고 싶어요! 🙌 🎼 온기가 담긴 노래 브로콜리 너마저 - 유자차 ♬ 온기가 필요했잖아 이제는 지친 마음을 쉬어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오랜만에 듣는 유자차의 노래 가사가 참 좋습니다. 일주일 동안 어떤 노래를 편지에 담을까 늘 고심하며 선곡을 하는데요, 오늘은 많은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이 차를 다 마시고 우리, 봄날으로 가요. ☺️ P.S. 글씨 크기를 조금 키웠습니다. 시원해져서 더 잘 읽히면 좋겠어요. *저번 주 30호 레터를 보고 안부를 묻고 걱정해 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 정말 고맙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건강하고 안전하시길, 아픈 곳이 있다면 아주아주 조금만 아프기를, 얼른 회복되기를, 낫기를 바라고 또 바라겠습니다. 🙏 NOTE 꾸준한 뉴스레터를 잘 만들기 위해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보내주시는 후원금은 감사히 소중히 잘 받아 더 나은 양질의 컨텐츠로 보답하겠습니다. 🚀 뉴스레터 후원 🚀 3333-04-0148917 (카카오뱅크, 정혜련) (후원이라는 이야기에 부담 갖지 마세요, 떠나가지 마세요. 후원은 자유입니다.) 꾸준히 읽어주신 것만도 제겐 더없는 후원이고 크나큰 힘입니다. 완두콩 구독자분들, 늘 감사합니다 💚 2022. 2. 25 mind_ryeon@naver.com 수신거부 Unsubscribe |
✦ (정)혜련이가 보내는 편지, HYEPEA LE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