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완두콩 스물세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 시간의 끝에 서서 언젠가부터 시간에 대해 늘 빠르게 간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속절없고 가차없고 매정합니다. 여기 좀 있어 달라고 제발 좀 가지 말라고 잡을 수도 없습니다. 시간의 가차없음이 좋을 때도 있지만 시간은 내 마음도 몰라주고 기다려주는 법도 없고 그저 앞으로 앞으로 가기만 합니다. 올해도 마지막에 왔습니다. 이렇게 연말이 되면 시간의 끝에 서 있는 것만 같습니다. 시간의 끝에 서서 올 한 해는 어땠나 되돌아보다가 머릿속으로는 한계가 있어 사진첩을 들여다봅니다. 사진첩 속에는 올 한해 나의 기록들이 빼곡히 들어있어요. 그것이 올해의 나였습니다. 내가 보았던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시각 영역의 사진첩 속 사진들을 열면 후각도 청각도 촉각도 미각도 모두 열려버립니다. 하나의 감각이 동시에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감각적 심상 같은 것을 체험하게 되는데요. 뿌연 마음과 기억들이 잠시 또렷해집니다. 그중 저의 기본은 시각 영역이 압도적이었고, 눈으로 많은 것들을 보며 좋았고 왜 좋았고, 별로였고 왜 별로였는지 기분과 취향과 감각에 대해 말하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부지런히 작가들의 작품을 보러 다녔고, 갤러리에서 미술관에서 전시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 함께 나의 작업들도 끊임없이 담았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부지런했다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로도 시각의 영역을 씨앗으로 삼고 그에 더해 체험의 영역을 좀 더 키우고 확대해 볼 계획입니다. 저는 이렇게 보냈습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토닥여주고, 못한 것은 반성하고 후회하고 나아지면 됩니다. 작년 이맘때엔 마음이 힘들어 조금 훌쩍이기도 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울지 않고 이렇게 씩씩하게 편지도 쓰고 있습니다. 😀 🌓 끝에서 시작으로 12월에는 반짝이는 노란 조명에 따뜻하고 포근한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나서, 이 즈음의 시기를 좋아하지만 그것 역시나 늘 짧고 이제 한 번의 주말만을 남겨두고 올해를 어김없이 보내주어야 합니다. 마지막, 한 번, 이런 단어 앞에서는 마음이 참 약해져요. 올해는 헌 것이 되고 앞으로 다가올 새것을 기다립니다. 올해도 새해이고 새것일 때가 있었는데 말이죠. 오늘도 마지막이 있고 한 번뿐인데 말이에요.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도, 일 분도, 일 초도. 모두가 모든 것이. 시간이 야속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공평한 것. 우리는 모두 시간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고 보고 말하고 느끼고 울고 웃고 화내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끝도 시작도 모두 할 수 있겠죠? 끝과 시작의 마음을 여기에 적어봅니다. ✔️ 끝의 마음 끝마무리를 잘 하고 싶어요. 바느질 마지막에 만드는 '마음에 드는 매듭'처럼요. 저의 마무리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책을 사고 가족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몸을 보살피며 부르튼 입술에 연고를 잘 바르고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려고 합니다. ✔️ 시작의 마음 시작의 마음이란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고 먹어도 먹어도 배도 안 부르고 참 쉬운 것이지만.. 모든 계획과 실행들은 굳이 1월로 미루어 두고 일단은 큰 덩어리만 생각해 놓습니다. 작고 세세한 것들은 내년의 제가 잘 세워두겠죠. 🤓 🕰 시간에 관한 문장 마스다 미리의 책들을 보다가 시간에 관한 문장들이 있어 공유해 봅니다. (1번 문장은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중에서 / 2번은 '오늘의 인생' 중에서) 1. 나는 달력을 책상에 올려두고 한 주에 이틀, 일정을 넣지 않는 날을 만들어보았다. 일주일 중 이틀은 생각을 하거나 자리잡고 앉아 일을 하거나, 멍하니 있거나, 책을 읽는 날로 하자. 물론 주말은 별도. 기본적으로 주말은 쉬는 날로 정하고 있으니까. 일단 적어두면 의외로 어떻게든 되는 법이라, (...) 나는 펜을 들고 일정을 넣지 않는 날을 일정에 쓱쓱 넣었다. 이것으로 오케이. 간단한 일이었다. 시간이란 것은 거침없이 흘러가지만, 그러나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달력을 바라보고 있으니, 묘하게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마스다 미리 산문집(권남희 옮김),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봄, 24-25p 2. -오늘의 인생스마트폰이요? 그게 뭔가요? 그런 게 이 세상에 있나요? 라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갖고 있겠지. 편집자와 미팅하며 오래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는데 도중에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무언가를 검색해서 조사할 때는 있어도 꼭 필요할 때 말고는 쓰지 않아야 대화의 리듬이 깨지지 않는다, 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둘다. 그리고 둘다 지금 내 시간을 '당신에게만 쓰고 있어요'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간. 그것은 인생이라고 부를 소중한 것입니다. -마스마 미리 만화(이소담 옮김), <오늘의 인생>, 234-235p 🌠 창문 밖 풍경 아시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윈도우 스왑'사이트를 소개해 드립니다. 세계 각국의 창문 밖 풍경을 볼 수 있어요. (공유해 드린 창 밖 풍경은 영국이네요. MARIETTA네 창문 밖 풍경은 이러한가 봐요.) 풍경과 함께 차 소리, 요리하는 소리 등 생활 소음이 들리기도 하고 누군가가 틀어 놓은 음악이 들리기도 합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간 기분이 들어요. 매일 보는 집 밖 풍경이 지겹게 느껴지는 날에, 클릭 한 번으로 이곳의 공기를 잠깐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 🎬 이 겨울에 보면 좋을 영화 2 스무 번째 편지 영화소개에 다음 주에도 이어진다고 해놓고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역시 제 맘대로 고른 영화 두 편을 소개해 드려요. ![]() ▪️어디갔어, 버나뎃 어느 봄날, 모든 할 일을 시원하게 끝내놓고 방 안에 앉아 노트북으로 이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끝부분에서는 코끝이 찡했어요. 창작을 하는 이라면 '버나뎃'에 더욱 흠뻑 빠져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 버나뎃을 훌륭히 연기하는 케이트 블란쳇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까칠하고 발칙한 버나뎃이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 가족, 관계, 그리고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버나뎃과 뭉클하고 짜릿한 그의 가족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꼬옥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찬실이는 복도 많지 럭키 찬실. 너무너무 제 취향의 영화입니다. 웬만해선 같은 영화를 N회차 보지 않지만 이 영화는 한 번 더 보고 있어요. 씩씩하게 걸어가는 이미지만 봐도 '찬실'의 캐릭터가 그려지실 것 같아요. 관람평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보면 놀랄 영화" 이 평을 보며 저는 정말 유쾌하게 웃었어요! 복 많은 찬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D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영화 한 편을 더 소개해 드립니다. '아더 크리스마스'입니다. 머나먼 북극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산타 가족과 요정들이 나옵니다. 전 세계 20억 개의 선물을 배달하던 중, 실수로 한 아이의 선물이 배달되지 못하는 사고가 벌어지는데요, 산타 가족의 막내 '아더'가 그 사실을 알고는 우당탕탕 선물 배달을 하러 가는 이야기예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매우 확실한 영화. 은근히 쫄깃한 영화랍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 (tmi: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제 나는 선물을 못 받는 어른이라는 점? (또르르..) 저는 자막버전으로 넷플릭스에서 보았습니다.) 🎼 그래도 크리스마스 slowminsteady - Happy Sad Christmas 앨범 신나고 흥겨운 캐롤은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 잔잔한 음악을 가져왔습니다. 슬로우민스테디의 크리스마스 앨범이고 가사가 없는 연주곡입니다. (슬로우민스테디는 3인조 인디밴드 블락스의 기타리스트 문석민이라고 합니다. 정승환, 페퍼톤스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세션을 맡기도 했으며 잔나비의 기타리스트로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앨범 표지가 무척이나 귀엽죠? 앨범명은 해피새드 크리스마스이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요, 어딘가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고 슬프지는 않은 연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P.S. 🎄 MERRY CHRISTMAS! 🎄 어디에 계시든 모두 반짝하고 빛나는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NOTE 다음 주 12/31일 완두콩은 쉽니다. 한 주 쉬고 새해에도 변함없이 완두콩 같은 것을 주워 다시 돌아올게요. 모두 즐겁고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 늘 고맙습니다! mind_ryeon@naver.com 수신거부 Unsubscribe |
✦ (정)혜련이가 보내는 편지, HYEPEA LE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