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안에서 일주일 동안 안녕하셨나요. ☺️ 오늘도 긴 편지를 드립니다. 천천히 잘 읽어주세요 :) ❄️ 부드러움이 내린다 여기 서울에는 지난 수요일에 눈이 왔습니다. 눈은 하얀색이라 좋아요. 다른 색의 눈을 상상해 보았다가 금세 흰 눈으로 돌아옵니다. 눈은 흰색이어야 해요. 하늘하늘 내리는 눈을 보며 순한 기분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눈이 하얀색이기 때문입니다. 하늘, 별, 밤 같은 단어들이 그렇듯 눈은 단연 눈일 수밖에 없습니다. 짧고 선명하게 발음해야 하는 '보는 눈'과 다르게 겨울의 눈은 조금 길게, 누운이라고 발음해야 합니다. 눈이라는 한 글자는 길게 발음하며 두 글자가 되고 그 소리에 동그라미의 이응(O)의 생깁니다. 눈이라는 단어는 신기하게도 한 글자를 두 글자로 만들고 눈 모양의 동그라미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눈 옆에 눈, 눈 옆에 눈이 내립니다. 사이좋게 소복소복 쌓입니다. 눈이라는 단어와 소리에 부드러움과 여운이 녹아져 있습니다. 눈이 눈이라서 좋습니다. 참 예쁘기도 합니다. 눈이 없는 겨울은 얼마나 심심하고 쓸쓸한지요, 한 계절에서만 볼 수 있어 얼마나 소중한지요. 눈이 쌓인 겨울이라야 그제야 제법 겨울이 겨울답습니다. 눈 내리는 거리를 걸었습니다. 저는 잠시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고 착한 사람이 된 것만 같고 미운 것이 다 지워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신호등 없는 작은 횡단보도에서는 차에게 양보를 받았어요. 착한 마음이 되어 천천히 걷는 걸음, 조심조심 천천히 멈추는 차. 눈이 오면 모두가 조금씩 느려지면서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차가운 겨울이 따뜻해집니다. 눈은 폭신하게 쌓였다가도 금세 녹아내립니다. 녹아내리는 하얀 이불. 모든 나쁜 것들도 새하얗게 감추어 주었다가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줍니다. 저는 마냥 착한 사람이 아니고 여기는 순수한 동화 속 세상도 아니지요. 눈이 와서 행복했습니다. 하늘에서 또 내려와 주면 좋겠습니다. 누운 누운, 하고 부르며 어린아이처럼 또 신나고 싶습니다. 세상이 잠시 느려지고 착해지는 기분은 잠시라도 반갑고 언제라도 좋으니까요. 스치는 눈길이 아니어서 가족처럼 머물고 머무는 눈길이어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모든 구석구석이 눈빛이다 얼핏이 사라진 눈길에 순간이 환하게 갇힌다 태풍이 왔다가 휩쓸고 떠나고 사람들이 왔다가 서로 떠나고 내 가슴속에 눈길이 쌓인다 모두 잠잠한 세상이 따듯하다 -이사라 시집,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눈길의 위력' 일부분 중에서(116-117p) 눈길은 눈이 가는 곳이기도 하고 눈이 덮인 길이기도 하지요. 다른 뜻을 가진 눈길이지만 어떤 뜻으로 읽어도 시 안에서는 다 통하는 것 같아요. 따뜻하다는 말은 모두를 덮어주면서 두 가지 눈길 모두와도 참 잘 어울립니다. 📓 눈 내리는 겨울에 보면 좋을 그림책 한 사람을 위한 맞춤 책 처방으로 유명한 사적인서점에 다녀왔습니다. 마포구 성산동에 시즌3를 새롭게 오픈했어요. 책 처방 프로그램 외에도 책 모임이나 책 픽업 서비스도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저는 얼리버드 북클럽이라는 책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게을러지기 쉬운 월요일 오전 10시,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들고 가 고요하고 느슨하게 책을 읽었습니다. 책 모임이 끝나고 천천히 둘러본 서가에서 아주 귀여운 책을 발견해 여기에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책 제목은 <집에 있는 부엉이> 골라 놓고 보니 부엉이. 북클럽의 이름은 얼리버드였지만, 제가 고른 것은 나이트아울.. (얼리버드 북클럽과 함께 밤에 열리는 나이트아울 북클럽도 있답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한겨울에 특히나 부엉이과인 것 같아요. 일찍 일어나는 겨울의 부지런함에는 큰 결심이 필요하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꽤나 부자연스럽지요. 그만큼 힘든(!) 일이기에 더 큰 보람이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편안하고 자연스레 마음이 기울어지는 쪽은 역시나 밤입니다. 겨울과 밤은 한 쌍처럼 잘 어울려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손길이 간 그림책. 그림책 속 부엉이는 얼마나 엉뚱하고 귀여운지 몰라요. 춥고 눈 내리는 밤에는 몸이나 녹이라고 겨울 씨를 부릅니다. 겨울을 초대한 부엉이라니, 아 정말 유쾌하고 기발합니다. 이 책은 총 5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가장 좋았던 챕터는 '눈물 차'라는 챕터예요. 내용을 간단하게 알려드리자면, 부엉이는 찬장에서 주전자를 꺼냅니다. 그리고 슬픈 일들을 하나하나씩 생각하며 말해요. "다리가 부러진 의자, 부를 수 없는 노래들, 멈춘 시계들..." 주전자에는 부엉이의 눈물로 가득 찹니다. 부엉이는 그것을 어떻게 했을까요? 슬픈 생각을 산뜻하게 날려버리는 부엉이를 보며 미소가 흘러나왔습니다. 추운 겨울, 편안한 옷을 입고 한 장 한 장 천천히 이 즐겁고 귀여운 책의 책장을 넘겨주시기를, 강력 추천해 봅니다. 😉 ⚜️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1982년 개관한 국제갤러리는 국내의 대표적인 화랑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미술의 작가와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루이스 부르주아'와 '권영우' 두 작가의 전시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어요. 1월 30일까지 열리는 전시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녀오셔도 좋을 듯 합니다. 😀 ◽️ 월 - 토 10:00 - 18:00 (일 10:00 - 17:00) ◽️ 관람료 무료 🔸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1911 - 2010) 조각가, 설치미술가로 알려진 루이스 부르주아는 파리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했습니다. 1982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회고전을 계기로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고, 그때 그의 나이는 70세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아랑곳 않고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갔던 그는 지금까지도 영향력 있는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현대미술의 대가, 거장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조각 외에도 천 작업, 드로잉, 회화, 판화 등의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시도했으며, 특히 프랑스어로 엄마를 뜻하는 '마망' 거미 조각으로 유명합니다. ('거미 엄마, 마망' 이라는 그림책도 국내에 나와 있습니다. ) 국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의 제목은 '유칼립투스의 향기'. (젊은 시절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며 유칼립투스를 약용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쓰인 작업 속 유칼립투스는 어머니와의 관계, 추억, 치유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전시에서는 식물이나 신체의 기관을 표현한 듯한 다양한 형상의 판화 작업을 볼 수 있으며 그와 함께 작은 크기의 조각 작업도 함께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덧, 2008년 그가 95세 때 했던 GQ와의 인터뷰도 좋아요!) 🔸 권영우 (1926 - 2013) 저는 국제갤러리에서 이 작가님을 처음 알았습니다. 찾아보니 그는 함경남도 출신의 화가로 해방 직후인 1946년, 국내 최초로 생긴 서울대 미술대학의 동양화과 1기 입학생이었고, 졸업작품전을 준비하던 중 6.25 전쟁을 겪었습니다. 1964년부터 10년 넘게 예술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작품 활동에 더 전념하기 위해 1978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합니다. 그곳에서 종이 작업의 완성미를 갖추었다고 하는데요, K2 건물 2층에서 이 시기의 작품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에 첨부한 사진 속 작품이 저는 가장 인상 깊었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순백의 눈을 표현한 것만 같았고 작품 속 재료는 종이일 뿐인데 입체적으로 빛나는 웨딩드레스를 보는 듯 아름다웠습니다. 그의 작업에는 모두 한지가 쓰였습니다. 한지를 찢고 뜯고 붙이며 다양한 실험을 한 작업과 수묵화 그리고 채색이 들어간 한지 작품 모두를 전시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한지에서 느껴지는 정제된 아름다움이 참 멋스러워서 한참을 머물다 나왔습니다. 끊임없는 열정의 결과물, 시대별로 달라지는 거장의 작품 변화를 두 눈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자극으로 다가왔습니다. (덧, 권영우 작가님 또한 1998년 이례적으로 70대 나이에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 🎼 꼭 한 번은 들어주세요, 이 곡을 Sam ock(샘 옥) - silent ♬ Know that the dawn will come for you. Know that the peace will come for you. Know that my love will be with you. Always. 오늘은 샘 옥의 silent라는 곡을 추천드립니다. 당신을 위해 새벽이 온다는 것을, 평화가 온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사랑도 당신과 함께할 것임을 알아주세요. 언제나. P.S. 오늘은 눈으로 시작해 눈으로 끝난 눈 편지입니다. 1월 21일은 포옹의 날이래요. 따뜻한 포옹처럼 포근한 눈처럼 좋은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바라요 :) ❄️❄️❄️ NOTE 꾸준한 뉴스레터를 잘 만들기 위해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보내주시는 후원금은 소중히 소중히 잘 쓰겠습니다. 🚀 뉴스레터 후원 🚀 3333-04-0148917 (카카오뱅크, 정혜련) (후원이라는 이야기에 부담 갖지 마세요, 떠나가지 마세요. 후원은 자유입니다.) 꾸준히 읽어주신 것만도 제겐 더없는 후원이고 크나큰 힘입니다. 완두콩 구독자분들 모두 모두 감사드려요! 💚 mind_ryeon@naver.com 수신거부 Unsubscribe |
✦ (정)혜련이가 보내는 편지, HYEPEA LE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