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에는 아빠의 무릎 수술이 있었습니다.
하반신 마취 후 낮아진 혈압으로 아빠에겐 쇼크가 두 번이나 찾아왔고 응급처방으로 빨리 수혈을 받으면 됐지만, 대형병원의 응급실에도 피가 모자라는 실정이라 그런 즉각적인 응급처방을 동네 작은 정형외과에서는 당연히 받을 수가 없었어요.
아빠도 O형이고 나도 O형이라 내 피를 빼서 어떻게라도 드리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을 테니 의사선생님께는 그런 말도 못 꺼내고,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버린 아빠와 너무 놀란 엄마가, 저는 그저 이런 상황이, 너무 무서웠고 두려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행히 아빠는 차차 회복이 되었고, 엄마도 며칠이 지나자 이제야 식욕이 좀 돌아온 것 같다고 해 마음이 한결 놓였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없는 아빠엄마집에서 잠을 자고,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병원으로 가져다드리길 며칠째, 이제 저도 저의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느껴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때부터 조금 이상했습니다.
목이 건조하다 못해 간지럽고 불편한 감이 있어 물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버스 안에서 마스크를 내리는 것은 더 겁이 났고, 공기가 너무 탁하여 창문이라도 열고 싶은데 꽉 막힌 유리로 마감된 고속버스에서는 환기도 하지 못하고, 제겐 물 한병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얼른 서울에 도착하기만을 바랐습니다.
서울 터미널 도착, 고속버스에서 후다다 내려서는 지하철, 그리고 다시 시내버스로 환승하고, 그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날은 16일 수요일, 머리가 아파오고, 목의 통증은 심해져 좀 일찍 잠들었고 17일 다음날까지도 몸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매일 자가 키트를 했지만 음성이어서 단순한 감기려니 생각했고 18일이 되어도 증세가 계속되어 이비인후과를 찾아 진료를 받기로 하고, 혹시 몰라 신속 항원 검사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진료실은 사람이 넘치고 넘쳐 문 너머에까지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길고 긴 대기를 1시간 반가량 했고, 드디어 진료실.
며칠 동안의 증상을 이야기했고, 입으로 츠~ 소리를 내고 있는 동안 선생님은 면봉 같은 것으로 제 콧구멍 깊숙한 곳을 아주 길-게도 찔렀습니다. 으아아 참다 참다 '언제까지 해야 하나요..' 라고 말하려는 순간 검사는 끝이 났고, 10분 정도 대기 후에 다시 진료실로 들어가니,
"코로나예요."
의사 선생님은 아주 덤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에 저는 너무 놀라 걸리면 안 되는 사람처럼 "네??????" 하고, 반응했어요.
-아니, 저 선생님, 저희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아빠엄마가 모두 병원에 계셔서 병원에 있다 온 지가 얼마 안 되는데요, 부모님은 어떡하죠?? 어떡해야 해요??
-코로나 걸렸다고 말씀은 하시고요, 증상이 없으면 검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증상이 없으면 괜찮아요.
아아 왜 하필 이런 시점에.
저는 저보다도 병원에 계신 아빠엄마 걱정이 너무 되었고, 혹시나 나 때문에 아빠엄마가 코로나에 걸려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어쩌지,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끼쳤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약국에 가서 약을 탈 때에도 호들갑스럽게 걱정하는 나의 반응과는 다르게 약사 선생님 또한 아주 덤덤하셨습니다.
-그냥 감기예요, 감기. 피곤하지 않게 하고 잘 쉬면 낫습니다.
그래 별일 아니겠지, 코로나의 심각성이 이렇게나 많이 떨어졌구나 안심되면서도 그래도 저는 자꾸만 자꾸만 걱정이 되었어요.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실까 봐 다음 날 이른 아침, 엄마에게 전화를 해 저의 코로나 사실을 알렸고, 아빠 엄마는 다행히 이상한 조짐 없이 병원에서 잘 지내고 계셨습니다.
엄마는 더 일찍 올려 보낼걸, 아빠는 밥해다 나르느라 피곤해서 그렇구나, 하는 미안함과 속상함과 걱정 어린 말씀들을 하셨죠.
저는 정말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대충 아파도 건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아프지 않다고 거짓말도 잘 할 수 있지만 코로나에 걸린 것은 솔직히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넘어갈 수 없는 이 일은 벌어졌고, 아무리 조심을 했어도 가랑비 같은 코로나를 저 또한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마스크만 잘 써도, 손만 잘 씻어도, 사적 모임을 제한하면, 잘 먹고 잘 자면, 코로나를 비껴갈 줄 알았지만, 저 또한 이렇게 쉽게 걸려버렸습니다.
제멋대로 원인을 찾자면 고속버스인 것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부터 흘러나왔는지 모를 입자들, 환기가 되지 않는 답답한 실내공기, 좌석의 반 이상을 넘게 타고 있던 사람들의 호흡들이 얽히고설켜 제게 이런 병을 가져온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저의 요즘 이동 동선은 오로지 집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평균 걸음이 100걸음이 채 되지 않고요.
밥을 잘 먹고 약을 잘 챙겨 먹고 잠을 잘 자야 한다고 하기에 아기처럼 지내야지, 하고 지냅니다.
며칠 지나니 열도 많이 떨어지고 목 통증도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격리와 동시에 인스타그램을 멈추었습니다. 그림도 그리지 않고요.
자가격리 동안에는 질투심과 배 아픔으로 지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내가 잘 하고 싶은 것을, 잘 해놨거나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여력과 여유 대신 오로지 저 즐거운 것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딱히 즐거운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어요.
유튜브의 알고리즘도 한계가 있어 영 흥미 있는 것이 발견되지 않고, 넷플릭스에 들어가 봤자 영화 제목만 내내 훑다가 결국 꺼버립니다. 책이나 볼까, 하고 소파에 앉아서는 주구장창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립니다. 그러다 책을 골라 읽자니 이 책은 이래서 재미가 없고, 저 책은 저래서 재미가 없고, 그나마 손에 쥔 책은 읽다가 꾸벅꾸벅 졸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으니 속이 아주 편안합니다.
아픔이 덜해지자, 자가 격리 동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제게 제 취향에 맞는, 슬기로운 자가격리 생활, 즐거움 세트 같은 것을 집 앞으로 배달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요, 하지만 그런 것은 없고요. 내 입맛에 맞는 즐거운 것은 언제나 스스로 찾아야 하는 법인가 봅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먹어야 하는 것은 밥입니다. 끼니이지요, 밥을 먹어야 약을 먹을 수 있으니 안 먹고 넘어가기도 그렇고, 다행히도 식욕은 있어서 이런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밥해 먹는 것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습니다.
한동안 집을 비웠기에 오랜만에 연 야채실에서는 이 세상 색깔이 아닌 시금치와 짓물러 썩어가고 있는 콩나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누가 뚝딱, 맛있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차려주면 좋겠고, 깔끔한 뒤처리, 윤이 나는 설거지가 돼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그런 일은 역시나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며 나오는 껍데기, 껍질, 빈 그릇, 양념이 묻은 도구, 수저들, 헝클어진 주방은 모두 내 손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어질러진 식탁도, 바닥의 먼지도, 베란다에 쌓여가는 재활용 쓰레기들에도 화와 짜증이 솟구칩니다.
식탁 위는 드라마 속 열받은 회장님처럼 두 손으로 확 다 쓸어버리고 싶지만, 연출이 없는 이 가정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빨랫감은 엊그제 두 번이나 돌렸는데도 왜 아직도 한 바구니가 그대로 있는 건지.
색깔 있는 옷들은 다음에 해야지, 하고 내가 그렇게 놔둔 건데도 막 다 꼴 뵈기가 싫습니다.
먹고 입고 쓴 모든 것들, 쾌적하지 않은 것들을 볼 때의 불쾌함.
자가격리 5일째만에, 성격이 이상해진 것인지.
아니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저에게서 온 것입니다.
입고 먹었으니 쌓인 거고 안 먹었으니 썩어가는 것입니다.
다 내 탓입니다.
가만히 있던 괜한 것에 짜증을 내고 있는 제가 한심스럽습니다.
괴로움을 넘어 살만해지니까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싶고, 모든 게 다 지겨운 듯 몸과 마음이 투정을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 만에 괜찮아졌습니다.
오늘은 잠을 잘 잤고 아침에 만든 핫케이크는 아주 잘 구워졌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그 참에 오랜만에 종이로 작업을 했고, 추가 입고가 들어온 책은 재인쇄를 맡겼습니다.
마냥 적극적으로 쉬어야 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작게나마 나를 위한 일을 하니 뿌듯함도 생깁니다.
콧구멍 너머 목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불편하고 맹맹하고 좀 멍한 상태이지만 그래도 덜 아프고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를 뿜어내던 사람이 하루 만에 평온한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정말 이상해진 걸까요?
집 안에서도 이렇게 일희일비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조금 살만해지면, 언제나 그렇듯 기분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구나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쾌적한 상태와 산뜻한 기분은 역시 중요합니다.
코로나에 걸렸다고, 자가격리를 한다고 해서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은 것이 놀랍습니다.
의외로 평소에도 꽤나 조용한 나날을 지내고 있었나 봅니다.
한가한 일요일을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지내는 느낌이에요.
그것은 엄청나게 좋은 것 같지만 또 그렇게 엄청나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자유가 없는 일요일은 갑갑하긴 합니다.
어쨌든 제 안에 코로나 또한 조용한 일요일처럼 이렇게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