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강릉에 다녀왔습니다.
강릉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인데, 갈 때마다 편안함이 느껴지는 도시입니다.
몇 번을 갔어도 강릉의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 갈 때마다 새롭습니다.
여행자 모드로 일부러 열심히 익히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낯설어하고 놀라워하고 헤매는 것이 여행의 묘미니까요.
여행자의 마음에는 너그러움이 장착되어 마음에 드는 것들도 많아집니다.
눈에 띄게 높은 건물이 없는 것도,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하지만 커피의 도시인 것도, 좋아하는 두부와 감자와 배추가 맛있는 것도, 맑은 바다가 있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갈 때마다 들리는 중앙시장도 아주 좋아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어딜 가서도 마음이 상하거나 눈 찌푸리는 일 없이, 좋고 좋은 기억들이 모여 강릉의 인상을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경포호수를 처음으로 가보았어요.
벚꽃이 얼마나 흐드러지게 피어있던지, 이렇게 근사한 곳이 있었는데 이제야 처음 와 보고 크게 감탄했습니다.
호수 둘레로 자전거도로와 도보가 아주 잘 닦여 있어 여럿이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가족이나 커플이 손을 잡고 여유롭게 걷는 모습을 보았어요.
꽃은 피어 있고, 바람은 따스하고, 호수는 잔잔하고, 사람들은 느긋합니다.
이런 것들을 보려고 여행을 왔구나, 싶어요.
이번 여행은 특히나 욕심이 없었습니다.
하염없이 바다만 보고 와도 좋았을 텐데, 멋진 호수와 벚꽃까지 감상했으니 더 바랄 게 없었습니다.
덤으로 많은 것들을 보고 안고 온 기분입니다.
그래도 여행의 마무리는 단연 오후의 바다였습니다.
바다를 보면, 저는 지도가 떠올라요.
내륙 어디에 있어도 잘 인식하지 못하다가 이렇게 바다의 도시에 오면 시야가 저 멀리멀리 줌 아웃되어 땅의 끝에 다다른 제가 아주 작게 보입니다.
세계 속에, 거기에 또 반으로 쪼개진 땅덩어리, 바다와 맞닿은 동쪽 도시 어느 바닷가에 서 있는 것이죠.
그렇게 내가 지도 끝 어딘가에 있구나,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서 있구나, 하는 상태가 낯설게 살아납니다.
지금도 지구는 돌고 있을 텐데, 저 바다는 흘러 흘러 어딘가로 갈 텐데.
나는 자전과 공전과 인력과 중력의 사실을 느끼지 못한 채로 이렇게 아주 가만히 땅에 발을 붙이고, 저 수평선 바다를 멍하니 보고 있는 것을 아주 새삼스레 신기해합니다.
놀이 기구에 탄 듯 뱅글뱅글 어지럽거나, 누가 나를 잡아끄는 느낌이 계속 든다면 잘 살지 못하겠지요.
그렇게 저는 바다를 앞에 두고 아주아주 작은 점이 되어 이런저런 생각에 빠집니다.
자연 법칙이 제 주변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고작 제가 느끼는 것은 이런 새삼스러움, 풍경, 바람, 색깔, 비릿한 냄새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저 좋다는 감각.
아주 일차원적입니다.
누군가 제게 산이냐 바다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저는 늘 산의 편에 서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바다가 주는 뻥 뚫리는 시원함과 무한함에 반합니다.
이렇게 멋진 것들 보면서 욕심 없이 살아보고 싶다고 마음먹다가도, 그것은 정말 쉽지 않음을 서울로 돌아오는 길 빼곡히 들어서 있는 불빛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바다를 보던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요, 풍경이 달라지니 마음이 휙 돌아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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