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제 어린이날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그 어린이날은 아마 제가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을 텐데, 아빠엄마는 제게 나물을 뜯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저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혹은 좀 근사하고 멋있는 곳을 가길 바랐지만 나물이라니요, 산이라니요.
저는 정말 싫었지만 딱히 할 것도 없었으니 아마도 투덜투덜하며 억지로 따라나섰을 겁니다.
5월의 산천이 참으로 예쁜 달인 걸 몰랐을 때, 그런 것이 나름의 나들이가 되고 소풍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던 때. 저의 입은 그날 아마 뾰로통 불만스럽게 튀어나와 있었을 겁니다.
모든 날이 어제 일처럼 꼼꼼히 기억나지 않아 흐릿한 기억을 점프해 보자면, 저는 벌써 산에 있습니다.
우리가 따려는 나물은 두릅이었고, 두릅이 나무에 달린 것을 그날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아빠는 나물 따는 것에 취해 우리 모녀가 잘 오는지는 약간 뒷전인 것 같았지만 목소리는 들렸고, 그렇게 앞서 부지런히 부지런히 두릅을 따고 저는 중간에 있고 엄마는 내내 제 근거리에 있었던 것 같아요.
햇볕을 가려주는 커다란 챙 모자를 썼던가, 확실한 건 집에서 가장 편안하고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혜련 어린이는 그런 옷을 어린이날에 입는 것도 꽤나 싫었을 것이고요.
하지만 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느 동산에, 저는 아빠와 엄마와 셋이 있습니다.
손이 닿는 나무에서 두릅을 똑 똑, 따고 있습니다.
매년 봄이면 아빠엄마가 산에서 따온 이름 모를 나물들이 거실에 우수수 쏟아지는 풍경.
식탁엔 나물이 줄줄줄, 저는 식탁에서 뱀이 나오겠다고 툴툴툴 거렸습니다.
그런 제가, 그것도 하필 어린이날에 이러고 있는 것이 싫었을 것이기도 한데, 제 눈앞에는 이제 제가 따야 할 두릅이 보입니다.
이제 나는 두릅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고, 두릅을 따면 제 두릅 주머니가 채워집니다.
이러고 있는 것이 막 싫은데도 눈앞에 따야 할 것이 보이니 욕심이 나고 저의 뾰로통한 입은 이제 앙다문 입이 되고, 한껏 삐쳐있던 기분도 스르르 풀려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며 두릅만 봅니다.
제 눈은 두릅만 찾습니다.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안 되는, 적당히 커서 먹기에 좋은 탐스러운 두릅을 찾습니다.
엄마는 제게 말했습니다.
봐라~ 오늘이 가~장 기억에 남을 어린이날이 될 거다~.
그때는 그 말이 약간 놀림조로 들렸고 흥칫뿡, 그런 마음이었고, 어린이날, 나물 따러 산에나 데려오는 엄마가 밉고 아빠가 미웠지만 정말 신기하게 그 말은 정말 마법의 말이 되어 이렇게 제 기억에 고스란히 남게 되었습니다.
나물을 다 따고 산을 내려온 저는 두둑이 채워진 제 두릅 주머니를 보고, 이거 아무도 안 줄 거고 내가 다 먹을 거라고 욕심냈습니다. 산에도 안 따라오고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고모네 왜 우리 것을 나눠줘야 하는지, 애써 뜯은 나물을 선뜻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는 아빠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이.
욕심부리며 따낸 내 두릅은 정말 모두 제 입속으로 뱃속으로 들어왔을까요.
역시나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런 건강한 것들을 듬뿍 먹고 자란 저는 이렇게 컸고, 나물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지나간 추억은 힘들어도 괴로워도 아름다운 날로 미화되긴 하지만, 그날은 생각해 보면 완벽히 참 좋은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5월이었고, 철없던 나는 무척이나 건강했고, 아빠엄마 다리는 튼튼했고, 산은 푸르렀고, 하늘은 맑았고, 나는 아빠엄마 사이에 있고, 그렇게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눈앞에 있는 두릅을 따기만 하면 됩니다.
채워야 할 것은 오직 내 앞에 있는 두릅 주머니.
그 쉽고도 쉬운 시간.
이제야 이렇게 차근차근 떠올려보니 얼마나 행복한 풍경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안에 있었던 제가 그 시간을 싫어했거나 말거나 어쨌든 그 시간도 휘리릭 지나가버렸습니다.
한때입니다.
그런 시절을 아주 멀리멀리 지나왔고, 이 글을 쓰며 저는 약간은 슬퍼지고 그런 날이 갑자기 몹시도 그리워져 괜한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아빠엄마의 흰머리 몇 가닥에도 흠칫 놀라 족집게로 톡톡 뽑아 작은 용돈을 기분 좋게 받았던 저는 당연스럽게도 언젠가부터 어린이가 아니게 되었고, 아빠엄마는 이제 부지런히 산에 가지 않습니다. 이 즈음이 되면 이제 나를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도 이렇게 어린이날 안에 있습니다.
지금은 어린이날의 새벽 4시 13분.
조금 있으면 어린이날의 새 해가 바지런히 변함없이 뜰 것입니다.
이날을 기억할 다음의 어린이날이 또 있을까요.
나를 반겨주는 아빠엄마가 보고 싶은, 그럼에도 저 밖에 몰라 힘들다고 안 내려가는 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정혜련 어린이는 진작에 잃어버렸고 부엉이처럼 새벽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린이날 새벽에 깨어 그 시절의 어린이날을 그리워하며 우는 어른이, 저는 되었네요.
엄마가 제게 던져준 그 마법의 말.
이날은 정말 기억에 남을 거라는 말.
그 말이 나타나 저를 붙잡습니다.
여전히 가운데에서 보호받고 싶은, 여전히 이렇게 덜 자란 저.
여전히 이렇게도 여리고 어린 이.
여전히 여전히..
사실 저는, 아직도 이렇게 주룩주룩 잘 우는 어린이 같은걸요.
그 쉬웠던 두릅 주머니는 사라졌고, 제 앞에는 앞으로 채워야 할 주머니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이런 기억들을 쌓고 쌓으며 저는, 계속 계속 자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