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에 설렘보다는 늘 막막함과 두려움이 앞서는 제게, 생각해 보니 음악 감상만큼 막막함과 두려움 없이 짧은 시간 안에 도전해 봄직한 것이 또 있을까 싶었어요.
음악을 만드는 것은 지금 제가 감히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을 듣는 것에는 너그러우니까요.
좋으면 좋고, 아니면 다음 곡으로 넘어가거나 꺼버리면 됩니다.
그렇게 들어도 들어도 제가 모르는 좋은 곡들은 계속 계속 나올 것이고, 그래도 평생 지구상에 모르는 곡이 대부분이겠지만 어쨌든 좋은 음악을 듣는 일은 참으로 즐겁고 제 취향의 좋은 곡을 발견하여 모르는 곡이 아는 곡이 되었을 때, 작은 보물을 찾은 기분이 듭니다.
그리하여 저는 서울 책방무사에서 진행하는 청음회라는 것을 신청했습니다.
책방무사는 제주에도 있는데, 책방무사 뒤편에는 무사레코즈가 있어요.
저는 그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작년 가을 제주도 여행 때 가보고 홀딱 반하여 알고 있습니다.
제주라는 장소와 정성 들여 꾸민 인테리어, 멋진 음향시설이 어우러져 어찌나 근사한지 선곡해 주시는 곡마다 참으로 좋아서 계속 머물며 음악을 듣고 싶었는데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어 도착한 것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그곳에서 들었던 가수의 앨범을 그 자리에서 2개나 구매했어요! 그 앨범의 노래들을 들으면 무사레코즈가 생각납니다...)
무사레코즈에서는 '꼬박꼬박 청음회'가 열리는데, 저는 그 청음회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지만 서울에 있는 저는 거리상 쉽게 참여해 볼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오랜만에 들어가 본 책방무사 사이트에서 서울에서도 제주 버전의 청음회가 열린다는 것을 보고 아주 반갑게 들썩이며 신청한 것입니다.
청음회가 무엇인지 참여해 본 적도 없지만, 그래서 자세히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고, 이것은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아니니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가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모르는 누군가가 온대도 가볍게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할 테니 그것 또한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신청한 날짜가 13일이었고, 11일은 남편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신청 칸에 남편 모르게 생일 축하곡을 신청해두고 2인분의 몫을 결제했어요.
서울에서 열리는 청음회의 제목은 '두런두런 청음회'.
당일이 되었고, 저는 조금 설레는 마음과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남편과 함께 책방무사로 향했습니다.
시작 시간은 저녁 8시.
10분 전쯤 서점에 도착했습니다.
입구 문의 유리창에는 조그마한 메모지에 '지금은 두런두런 청음회가 진행 중입니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내가 실수 없이 찾아온 확실한 장소와 시간 앞에서도 안내가 없는 어느 문 앞에 서면, 맞나? 들어가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 이런 세심한 작은 쪽지만으로 마음에 평화와 안정감이 듭니다.
그렇게 안도감으로 책방에 들어가니 안내해 주시는 분이 오늘 신청해 준 사람이 우리 둘뿐이라고 하셔서 약간은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에게 이벤트를 열어 준 기분이었어요.
해가 지고 어둑어둑한 시간에 따뜻한 조명이 켜져 있는 책방 안의 분위기는 참으로 아늑했습니다.
오늘 우리를 안내해 주실 진행자는 유라님이라고 소개 받았고, 우리에게 청음회가 처음이듯 유라님의 진행도 오늘이 처음이라고 하셨어요.
처음과 처음이 만난 자리여서 소중했고, 사람들 앞에 서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그 앞선 몇 분이 긴장감과 부담감으로 얼마나 떨리는 일인지, 몇 번의 경험이 떠올라 오늘의 첫 자리에서 저 또한 들뜨고 떨렸습니다.
셋이 만들어낸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 셋 모두의 얼굴이 반이나 가려져 있지만, 눈으로 반갑고 기쁘게 인사 나누는 것이 좋았습니다.
한 명은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오늘 처음 본 사람.
편안함과 기분 좋은 설렘이 함께였습니다.
책방엔 최소의 조명만 켜져 있고, 나무 테이블엔 은은한 조명이 놓여있습니다.
분명 오늘 참석하는 인원이 둘인 걸 아셨을 텐데 종류별로 준비해 주신 여러 종류의 색깔 펜들과 노트들이 넉넉하여 그것에도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소개가 빠질 수 없습니다.
음악의 자리인 만큼 좋아하는 음악 장르에 대해 말하면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담 없이 가볍게 서로의 소개를 마친 뒤 유라님은 책의 한 문장과 함께 첫 곡을 들려주었습니다.
첫 곡은 이채언루트의 A Song Between Us.
우리는 음악으로 만난 사이.
우리 사이에 들려오는 첫 곡이 책방을 채웠습니다.
서울무사는 제주의 무사레코즈만큼 음향이 좋지 않다고 미리 걱정 어린 말씀을 해주셨지만, 서울은 서울대로 충분히 좋았습니다.
첫 곡의 도입부부터 참으로 마음에 들어 속으로 캬- 소리가 절로 나왔고 첫 곡이 좋아버리니 다음 곡도 궁금해지고 첫 곡이 좋아버리니 그냥 모든 것이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청음회란 이런 것이군, 저 혼자 그렇게 단숨에 느껴버렸습니다.
아마 셋이 만들어낸 오붓한 분위기가 한몫한 것일 테고 그래서 제가 느끼는 기분 좋음이 점점 더 높아지는 데다 소개와 함께 정성스레 들려주시는 곡들이 다 주옥같아서 그 모든 것들의 합이 이루어낸 청음회가 제겐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중간중간에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들을 각자 나누기도 했는데, 아마 우리뿐 아니라 더 많은 참여자가 있었더라면 이렇게 편안하게 천천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가만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음악, 책방에는 은은한 향기가 책이 조명이 앨범이 귀여운 잡화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다 아름다워 마음이 부드럽게 녹는 것 같았어요.
중간에는 제가 남편 몰래 신청해둔 깜짝 생일 축하곡을 센스 있게 틀어주시기도 하셨는데 저 또한 기분 좋게 놀라 유라님을 봤고, 그때 마주쳤던 짧은 눈 맞춤에 제 마음을 알아주신 것 같아 기쁘고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준비한 시간보다 조금 넘게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들은 곡은 20여 곡 정도.
그 여운은 20시간을 넘어 이틀을 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모든 시간이 지금 같을 수 없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처음들이 있습니다.
제겐 처음이었던 청음회.
소중한 처음으로 기억돼 아마도 잘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