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동그라미라면, 여름 동그라미를 반으로 나누는 기준은 장마일 것 같아요.
장마를 기점으로 왼쪽은 초여름이었다가 장마를 넘어서면 덥고 습한 오른쪽 편에, 참기 힘든 찐여름이 남아 있습니다.
그 반을 견디고 견디려면 그 앞서 든든한 무언가가 있으면 좋을 거예요.
저는 요즘 이러다가 살짝 노란색에 물들지 않을까 싶게 거의 매일 초당옥수수를 먹고 있습니다.
탕수육 취향을 나눌 때 찍먹, 부먹이 있듯 옥수수도 찰옥수수파와 초당옥수수파가 있는 것 같던데 저는 완전히 초당파입니다.
찰옥수수는 찜기에 쪄야 합니다. 그래야 확실히 맛이 좋지요.
초당옥수수는 찜기에 쪄도 되지만 과일처럼 생으로도 먹을 수 있고 전자레인지에 3분 정도 돌려먹어도 충분히 맛있습니다.
처음 초당옥수수를 접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맛있다는 정보에 의심이 들었습니다.
거의 웬만한 요리는 직접 가스불에 찌거나 삶거나 팔팔 끓여야 맛있다는 생각이 있었으니까요.
긴가민가한 마음을 품은 채로 초당옥수수를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처음 맛보았을 때.
아! 눈이 땡그랑 커지며 알았죠. 이렇게 간단하고 맛있는 옥수수가 있었구나.
그날 제게 옥수수의 신세계가 열렸습니다.
저는 초당옥수수를 씻어서 바로 먹는 것보다 호빵을 호호 불어먹듯, 뜨끈뜨끈한 옥수수로 먹는 것이 좋아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습니다.
허리를 구부려 싱크대 저 깊숙한 곳에서 찜기를 꺼내지 않아도, 냄비로부터 오는 뜨거운 열기가 없어도 되는 것이 제게는 아주아주 큰 장점이에요.
전자레인지 문을 열고, 그 안에 동그란 접시에 올린 샛노랗고 탱글탱글한 초당옥수수를 넣습니다.
띡띡띡 버튼을 눌러 시간을 맞춰준 뒤, 전자레인지에서 옥수수가 뱅글뱅글 도는 그 3분 동안 스트레칭을 하거나 식탁 정리를 하고 있으면 뚝딱하고 뜨끈한 초당옥수수가 완성됩니다.
초당옥수수는 그렇게, 아주 간편하여 먹기 전부터 좋습니다.
찜기에 찌면 어떤 맛인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 전자레인지의 맛도 충분히 좋아서 이 맛을 잘 누리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과일은 체리, 포도, 딸기 같은 것들인데 따지고 보면 모두 껍질을 깔 필요 없이 씻어서 바로 후루룩 먹을 수 있는 종류의 것들입니다.
저는 먹기 전, 번거로움이 덜한 것에 손도 입도 더 자주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초당옥수수도 제게 딱인 것이죠.
초당옥수수는 수분이 많고 한 알 한 알이 톡톡 터져요.
식감은 아삭한 과일과 일반 옥수수 그 사이 어디쯤에 있어요.
어느 때는 옥수수를 왕, 하고 물면 조개입에서 물 빠져나오듯 과즙이 삐쭉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예상 밖의 일이라 살짝 약이 오르지만 혼자 재밌기도 한 순간입니다.
아주 잠깐 형광색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줄무늬 티셔츠에 멜빵바지를 입은 개구쟁이 소년이 된 것 같거든요.
초당옥수수는 일반 옥수수보다 당도가 매우 높아 초당超糖.
뛰어넘을 '초'에, 엿 '당'을 써서 초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해요.
일반 옥수수의 당을 초월한 녀석이죠.
저는 이 달콤하고 귀엽고 앙증맞은 초당옥수수가 나오는 계절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 계절은 반갑게도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매일 뜨끈뜨끈한 옥수수 꽁다리에 젓가락을 하나 푹 꽂아서 야금야금 부지런히 초당옥수수를 먹습니다.
앉아서도 먹고, 서서도 먹고, 돌아다니면서도 먹을 수 있는, 간소하지만 편안하고 든든한 먹을거리.
왼쪽의 여름을 지나 오른쪽 방면의 힘든 여름을 대비하기 위해 알알이 박혀있는 촘촘한 옥수수알을 든든히 먹어둡니다.
뱃속에 기억 속에 이 노란 달콤함을 채웁니다.
그렇게 저는 이 계절을 작게나마 기다리고, 버틸 힘을 얻습니다.
일어나기 힘든 아침에, 입맛 없는 요즘에 생각합니다.
아, 냉장고에 초당옥수수가 있지!
무거운 몸을 산뜻하게 움직여주는 귀여운 원동력.
이 여름에 이 당도를 먹어줘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초당옥수수를 야무지게 먹고, 초당인간이 되어 무덥고 무서운 이 여름을 무사히 무사히 지나가보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