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잘 먹고, 잘 잡니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해내고 있으면서도 뭔가 께름칙합니다.
집 안에 쌓인 먼지들을 청소하고, 묵은 빨래들을 세탁기에 넣고 팡팡 털어 널고, 여러 식물들을 돌보고, 한 끼를 뚱땅거리며 차려내고 설거지를 하고, 책 한 권을 뚝딱 완독하는 날이 있어도 어떤 성취의 기쁨은 아주 찰나로 스쳐가고 그 끝에 무언가가 빠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요.
분명 나는 뭘 했는데 뭘 안 한 것 같아요.
나의 일상을 잘 돌보는 와중에도 왜 자꾸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요.
왜 이런 생각이 드는가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요즘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감각이 제게 있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방구석에서 무엇인가를 쓰고 만들고 그립니다.
청소, 빨래, 설거지 같은 것 외에 나에게 빠져드는 몰입의 순간을 느끼고 싶고, 이 작은방 안에서 무엇인가를 발산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잘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잘 하고 싶고, 기대가 있고, 욕심이 나고 그래서 그 경지에 가기까지 꽤 많은 힘이 필요합니다.
방구석에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스스로 살짝 우습긴 하지만, 저만의 이 창작의 여정은 꽤 길다고 제멋대로 계획을 잡아놓았으니 고민, 번뇌, 걱정, 한숨 같은 여러 생각들을 말할 수 있는 발언권 정도는 제게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늘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요.
나, 이대로 괜찮은가.
그러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꾸역꾸역 작업방으로 들어옵니다.
창작에 정답이 있나요, 그런 건 없잖아요.
그래서 마음껏 지지고 볶고 하면 되는데, 잘되지 않는 날이 허다해요.
어쨌든의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해보다가 실패가 전부인 날도 있어요.
그러면 또 하기가 싫어집니다.
하기 '전'의 마음도 괴로웠는데, 하는 '중'의 마음까지 괴로우면 정말 다 놓고 싶습니다.
뭘 얼마나 했다고 그렇게 엄살을 부리냐고 저 스스로 또 채찍질을 하지요.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간임을 자각할 때 역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럴 땐 그림이고 예술이고 이게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맞는 걸까, 싶기도 해요.
이렇게 괴로운데 하는 게 맞을까.
그렇다면 너는 요즘 어떤 결과물을 냈니, 하면 허허허 그거 참 멋쩍고요.
괴로움과 결과물이 비례하면 좋으련만.
정답이 없는 만큼, 좋고 나쁘고의 기준이 모호한 만큼 참 어려운 것이 창작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그렇게 괴로우면 관둬, 하지 마,라고 누가 말해도 내가 말해도 그건 또 싫습니다.
창작의 슬픔과 괴로움을 잊히게 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다행히 뭔지 압니다.
아마 그 희열이 커서 그만큼 괴로운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지만, 그 둘의 상관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문득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슬슬 그림의 대가인 안자이 미즈마루가 떠올랐어요.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라는 책도 있지요.
저는 그의 그림이 좋습니다.
힘을 뺀 듯하여 보기에 편안하고 선과 색채는 자유롭고 천진합니다.
사실 제게는 이게 말이 되나 싶지요.
잘 와닿지 않는,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 배가 아프게 부러울 뿐입니다.
대충해서 멋진 그림이 나온다면야, 저도 대충 하고 싶지만 저의 대충은 꽤나 두렵고 아직 아쉬운 수준이기에, 대충의 미학을 감히 넘보지 못하고 바라만 볼 뿐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경지인지 알지요.
"매력적인 그림이란 그저 잘 그린 그림만이 아니라
여기 그 사람밖에 그릴 수 없는 그림이 아닐까요, 그런 걸 그려가고 싶습니다."
-안자이 미즈마루 지음(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본문 중에서
이렇게 힘 들어가고 욕심이 그득한 저 같은 사람도 언젠가는 힘 빼고 슥슥 가볍게 그리고 만들며, 금세 신나서 오 완성! 을 외치고 쉽게 환호하며 기뻐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7살 조카 선이와 식탁에 마주 앉았고 저는 조카가 그리는 그림을 구경했어요.
어린이의 작은 팔레트를 들여다보니 여러 색의 물감이 차례대로 안착해 있고, 조카는 수채화붓을 들고 마음껏 스케치해놓은 여러 장 중 네모 모양이 그려져 있는(아마 이전에 본인이 색연필로 그려놓았을) 한 장을 골라 마음껏 색칠하기 시작했습니다.
빨간색에서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순으로 이미 짜놓은 팔레트의 무지개색으로 차례대로 색칠을 하더니, 잠깐 제가 밥 먹으러 가 자리를 비운 사이, 모든 색채가 어우러진 아주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냈더라고요.
스케치북 위에는 내 조카의 그림, 조카밖에 그릴 수 없는 선이의 그림이 아주 멋지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대로 괜찮은가의 템포로, 가는 건지 멈춘 건지 모호한 포지션의 요즘 저는 그저 감탄했고, 그 조화롭고 자유로운 색채가 아름다워 얼른 사진으로 담아왔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느끼려고 저는 이 가까이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것이겠죠.
제게도 그 자유로움이 옮겨붙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내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그렇게 훨훨 도화지 위에서 날아다니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쨌든 책상 앞에 앉아야겠지요.
꾸역꾸역이든, 슬렁슬렁 이든, 그렇게 책상 앞에 앉아 실패의 시간을 쌓아야 한다는 걸 압니다.
일단 엉덩이 붙이고 앉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앉아 헤매고 찢고 버리고 좌절하고, 열 장 중에 한 장을 건질까 말까 한 가능성에 덤비고, 자잘한 실패의 시간들을 쌓고 또 쌓아서 그렇게 나도 언젠가 나밖에 만들 수 없는 그런 것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이 욕심쟁이는 그런 마음은 또 이렇게 쉽게 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