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와 다음 주, 2주에 걸쳐 휴재 사이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들려드리려고 해요.
오늘은 시에 대한 이야기.
시를 좋아하세요?
라고 누가 물으면 좋다고 대답할 수는 있지만 그 마음은 사실 아주 얕고 헐렁하고 거기에 어떻게 대할지 모를 막연함도 있었어요.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시집도, 시인도 제겐 없고 어딘가에서 좋은 시를 보거나 들으면 짧게 감동하고, 익숙한 시집이 보이면 휘리릭 보는 정도였지요.
그러다, 이후북스에서 열린 박참새님의 '참새책책' 팟캐스트 공개방송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며칠 사이 박참새 대담집, <출발선 뒤의 초조함>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다 읽고는
유쾌하고 솔직한 책 속의 인터뷰어 박참새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고, 그 시점에 공개방송 소식을 보고는 재미있겠다! 하며 신청을 한 것이었죠.
방송은 정재율 시인님과 함께 대담을 나누는 형식이었어요.
거기서 저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쓴 시를 그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것이었어요. 대담과 더불어 낭독의 시간도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 날의 경험이 처음인 줄 알았는데, 글을 쓰다 떠올려보니 시 낭독을 듣는 일이 제게 처음은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요, 야자를 너무 빼고 싶은데 그럴 핑계는 마땅치 않고 어떻게 하면 야자를 뺄 수 있을지 친구와 도모해 보다가 시청에서 하는 시 낭독회 행사를 가면 아주 공공연하게 야자를 안 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때 저는 시에 시옷도 모르는 학생이었고, 그저 야자를 안 할 수 있는 그럴듯한 핑계가 있다면 모두 다 오케이인 천방지축.
(아무 이유 없는 땡땡이는 차마 못 치는 겁쟁이이기도 했고요.)
저는 시 낭독회라는 걸 그날 그렇게 얼렁뚱땅 처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기억에 그 공간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저희밖에 없는 듯했고, 모두 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계셨어요.
무대에는 의자 하나가 놓여 있고, 곱게 빗어넘긴 쪽진머리에 고운 한복을 입은 분이 그 의자에 앉아 핀 조명을 받으며 시를 낭독해 주셨는데요.
(한복과 시의 조합은 정말 생경했어요. 다른 몇 분이 더 계셨을 수도 있지만 그 분만 기억이 납니다.)
촉박하게 도착해서인지 저희는 행사장 제일 뒤 아주 먼발치에서 무대를 보았어요.
어땠냐고요..?
아 시란 이런 것이구나, 정말 너무 아름답다, 눈에 별이 반짝.. 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반전은 없었고, 너무 지루하고 진짜 재미없었어요.
저렇게 꼭 목소리를 깔아야만 하나. 시는 저렇게 느린 건가.
속으로 빈정대고 아 여기 왜 온다고 했나 싶은 후회만 가득했지요.
그때는 그런 분위기가 왜 그렇게 무겁게만 느껴지던지, 우리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교복 입은 우리를 막 쳐다보는 것만 같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기분이 들어 잘못 왔다 싶었지만, 소심한 저는 야자 빼먹고 이 낭독회까지 빠질 수는 없어 듣는 둥 마는 둥 그 시간을 억지로 버텼던 기억이 납니다.
시도 뭔지 모르고 낭독회란 더더욱 어떤 분위기인지 모른 채, 적당한 핑곗거리로 치기 어린 대안으로 그렇게 간 낭독회에 재미를 느꼈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일지도요.
그렇게나 지루했던 낭독회는 제 기억에서 완전히 삭제되고 까먹어 버린 줄 알았는데, 이렇게 스르르 기억이 떠오르는 거 보면 그날의 기억이 제겐 충격이었나 봅니다.
처음 들어와 보는 이 시의 세계에 아무도 알려주는 이 없이 당황하고 적응이 되지 않아 외딴섬에 있는 듯한 막막함도 컸을 테고, 어쩌면 그래서 그 기억은 나쁜 쪽이었던 게 아니라 너무 낯설고 어색해 이곳에 나는 어울리지 않다고 혼자 벽을 두고 그렇게 느껴버렸는지도 몰라요.
너무 아무것도 모르니까 더더욱 재미없다는 쪽으로.
지금 제가 그때의 저를 만난다면, 교복 입은 어리숙한 우리를 쳐다본 어른들의 표정과 눈빛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 자세히 잘 살펴보라고, 저기 저 무대에서 들려오는 시 읊는 목소리를 눈 감고 다시 잘 들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사실 그날이 의외로 참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지루해 재미없어! 하며 그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제가 보여 웃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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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재 2022년 공개방송으로 돌아와 봅니다.
시는 여전히 잘 모르지만 저는 이제 시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의 시옷 정도에라도 관심을 두는 어른이 되었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신청한 공개방송에서는 맨 앞자리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시간의 격차만큼이나 제게는 큰 변화가 생긴 것이네요.
그래서인지 그때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종이에 적힌 시, 그 시의 주인인 시인의 음성으로, 시인만이 아는 속도와 박자로 시를 읽어주는 시간.
공기에 떠다니는 낱말과 문장들을 귀에 담아보는 것.
다시 또 너무 오래간만의 경험이라 저는 적응을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다행히 금세 적응하고 아주 잘 녹아들었어요.
이번 대담에서 함께 나눈 시집은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라는 시집.
행사 시작 전, 저는 제목만 보고 덥석 시집을 구매했고 시집을 구매한 덕에 시인의 음성과 제 손에 들린 시집 속 글자들을 함께 따라갈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음성으로만 듣는 것보다 더 편하고 마음이 놓입니다.
소리로 놓친 부분을 글자로 다시 되짚을 수도 있고, 낭독의 여운을 글자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집은 총 5부로 되어있고, 정재율 시인님은 한 부에 하나씩, 시를 골라와 낭독해 주었고, 낭독이 끝난 뒤에는 해당 시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누가 쓴 시를 추측해 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직접 들려주는 시 너머의 이야기는 얼마나 특별하던지요.
평소 잘 쓰지도 않는 단어이지만, 머릿속에 내내 톺아본다는 동사가 떠나지 않고 맴돌았습니다.
정해진 시간에나마 시 한 권을 샅샅이 살펴보는 경험은 소중했고, 마음속 어딘가가 아주 말랑해지는 기분이었어요.
또 하나 느낀 것.
저는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공개방송의 무대라는 것이 가리는 것 없이 훤히 보였고, 그 책상 위에는 참새님이 들고 온 시집이 보였는데, 제 책은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 매끈한 새것의 모습이었다면 그의 시집은 하얀 겉표지가 벗겨진 연두색 양장본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그래서 더 예뻤고), 갖은 포스트잇과 메모, 접힌 자국들로 가득했습니다.
똑같은 모양의 책은 누군가에게로 가서 모두 다른 책이 되겠지만, 맨 앞자리에서 저는 그런 것을 보았습니다.
내 책과 저 책의 다른 모습, 그가 여러 번 읽었을 책의 상태를 보니 책의 애정도가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저는 책을 깨끗이 보는 편이긴 하지만, (책에 밑줄을 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나도 저렇게 마음에 드는 책을 자주 만져 흔적을 남기고 마구마구 손때 묻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건 정말 애정 어린 마음이겠지요.
저녁 7시 반에 시작한 행사는 2시간이 훌쩍 넘어 끝이 났고 그래서 엉덩이가 조금 아프긴 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았어요.
엉덩이 배기는 것쯤이야, 눈감아줄 수 있을 만큼 좋았으니까요.
마음이 좋을 때는 그 무엇이라도 좋다가 답답한 마음이 들 때엔 시가 뭐라고, 시가 뭘 해줄 수나 있을까 싶은데,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시는 그 언제라도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요.
시 같은 거 몰라도 되지만, 알면 좋고, 이 세계도 좋아지면 끝이 없겠구나 싶어요.
시를 좋아하냐고 누가 묻기 전에, 요즘은 시가 좋다고 먼저 말할 수 있어요.
여전히 막연하고 어렵지만, 그것은 그런대로 두고 저는 이제 시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커진 데다 그 사이 감명받은 시도 몇 개나 된답니다.
메모장에 제가 이런 말을 써놓았더라고요.
예전엔 시가 검은 봉지였다면 이제는 반투명한 노란색이거나 하늘색이어서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주 살짝 보일 것만 같다.
신기합니다.
안 지루해, 재미있어, 심지어... 좋아!
정말 큰 변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