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부터 다녔던 그림 학교에서 나름의 마침표로 9월 말 전시를 앞두고 있는데요.
아무도 굴리려고 하지 않는 수레에 탄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좀 착잡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스스로 답답하면서도 한구석은 또 초조합니다.
마음은 조급한데, 모르쇠로 일관하며 에라 모르겠다 벌러덩 누워만 있는 듯한 요즘입니다.
이럼 안되지 싶어 또 벌떡 일어나 무엇이라도 해보려는, 그래서 앞서 말했던 저의 새로운 도전은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본 것입니다.
그림 작품을 볼 때 크기를 cm단위로 볼 때도 있지만, 종종 이것보다는 10호, 50호, 100호 같은 호수로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불리는 '호'는 캔버스의 규격 기준을 말합니다.
저도 그림을 배우며 캔버스를 접하게 되었고, 캔버스는 나무틀 규격에 맞춰 씌어 크기가 정해집니다.
캔버스 사이즈는 1호부터 100호까지 다양하게 있는데요.
같은 호수 안에서도 약간의 크기 차이가 있습니다.
인물형(F, Figure), 풍경형(P, Paysage), 해경형(M, Marine), 정방향(S, Square) 이렇게 크게 4가지로 나뉘어요.
인물형을 기준으로 하여 풍경형, 해경형으로 갈수록 세로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파노마라처럼 길쭉한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 카메라에도 다양한 화각이 있는 것처럼 캔버스도 주제에 맞게 크기를 정해서 그리는 것이죠.
(꼭 그렇게 그려야만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요!)
수업 중에 큰 그림을 그려보라는 과제가 있었어요.
선생님은 100호까지 이야기를 했지만, 100호는 제 키만한걸요.
A5나 A4 크기에 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갑자기 160cm가 넘는 사이즈에 그림을 그려본다는 것은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잖아요.
100호에서 저는 반을 줄여 50호, (사실 저는 인물형, 풍경형이며 이런 것도 자세히 모른 채로 가장 많이 쓴다는) F형을 샀습니다.
116.8x91cm라는 숫자를 보고 알고 샀어도 그 실물 크기는 가늠이 잘되지 않는데, 택배로 집에 도착한 50호의 캔버스는 위력이 대단해서 저는 좀 놀랐습니다.
이 위에 무엇인가를 어떻게 그릴지 막막하여 이 캔버스를 비워진 벽에 세워두었다가, 베란다로 두었다가 장소 이동만 몇 번인가 하면서 노려보기만을 몇 달째 했지요.
이것은 수십 장에 몇 천원하는 종이가 아니고 값도 꽤 나가는 것이라 망치면 44,500원이 날아가 버린다는 겁쟁이 마음도 들었어요.
망치면 그만이고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좀 만만하게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은 참 쉽지가 않았고,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언젠가의 날로 미루고 미루다 이렇게 8월이 되었습니다.
언제 구매했나 찾아보니, 작년 10월에 구매했네요...
2달만 더 있었으면 1년이 될 뻔했어요.
저는 그 사이 조금씩 조금씩 그림의 크기를 키웠습니다.
A4에서 A3로, 4절에서 2절로요.
그 위에 그려지는 결괏값이 썩 아름답거나 깊이 있지 않대도, 그저 해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크기에 겁먹지 않는 시도와 경험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몇 차례 계속하다 보니, 커지는 그림 크기에 비례해 손과 팔이 자유로워지고 시원하고 후련해지는 감각도 커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8월 중순 어느 날 마음을 먹었습니다.
"때가 됐다, 해보자!"
무슨 대단한 결심이 서서인지, 그런 말을 내뱉는 스스로가 우스웠지만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50호의 크기를 감당할 이젤이 집에 없기에, 저는 거실 벽에 붙어 있던 소파를 옆으로 치우고, 벽 위에 신문지를 덕지덕지 바르고, 의자 두 개를 가져와 50호 캔버스를 그 위에 올렸습니다.
이제 하기만 하면 됩니다.
얕은 결심의 한숨을 쉬고, 시작하기로 합니다.
나이프로 젯소를 떠서 숭덩숭덩 캔버스 위에 올립니다.
이 작업을 할 때 얼마나 신나는지, 작은 그림으로 몇 차례 연습해 볼 때 알아버렸습니다.
사실 무념무상이 됩니다. 가끔은 이러한 집중과 몰입을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빌리가 발레리노를 꿈꾸며 갖은 역경 끝에 들어간 발레학교에서 오디션을 보는 장면.
"왜 발레에 처음으로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지 말해줄래?"
"모르겠어요."
"빌리,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고 싶은데...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 드니?"
"그냥, 기분이 좋아요. 제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요."
빌리는 면접관의 물음에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기보다 막힘없이 아주 솔직한 답변을 합니다.
왜 처음으로 발레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춤을 출 때만큼은 기분이 좋고, 자신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것 같고, 몸 전체가 변해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그는 그렇게 허공을 바라보며 진실한 얼굴로 말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그렇게나 좋습니다.
나도 모르게 좋아한 무언가, 명확한 시작의 이유를 잘 모르겠는 무언가.
저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사실 저도 왜 좋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어쨌든 좋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보는 것, 사는 것, 하는 것 등등으로 좋아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저는 그림을 좋아하며 이 주변에서 서성이다, 어느샌가 보니 그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의 시작하는 마음 앞엔 언제나 두려움이 커서 불안함과 막막함이 크긴 하지만, 그래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물감이 묻으면 안 되는 집 안에서, 덕지덕지 붙인 신문지 앞에서 뚝뚝뚝 허연 젯소가 떨어진 여러 장의 신문지 위에 무릎 꿇고 앉아 그림을 그리며 약간 씁쓸한 현타가 찾아오긴 했지만, 작고 크고 그건 그 후의 문제라 치고, 어쨌거나 나는 지금 가고 있고,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머리와 가슴에 심습니다.
당장 이것이 대단한 무엇을 가져오지 않대도 나도 아는 그 기분, 어딘가로 사라지는 그 기분을 일단 소중히 품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갑니다.
힘들고 꽉 막혀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도 그 기분은 잊히지 않아 다시 또 사라지고 싶어 합니다.
그 기분을 느끼려면 혼자 해야 해서 그 앞이 이상하게도 너무 외롭고 힘들어 자꾸자꾸 피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을 더 크게 깊이 좋아하려면 그 외롭고 힘든 것을 계속 계속 넘어야겠지요.
50호는 처음이라, 젯소가 얼마큼 들어가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하다 보니 300ml 젯소 한 통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하룻밤 지나고 그 위에 물감을 올렸습니다.
50호의 캔버스를 채워보자니 쓰는 재료들도 역시 숭덩숭덩 사라졌어요.
아까운 마음은 집어치운 뒤 일단 캔버스에 집중했지만, 어째 망친 것 같아 절망했습니다.
흑. 내 5만 원...
복구를 해보려고 그 위에 다른 색의 물감을 올렸습니다.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싶었고, 복구의 물감을 정성스레 모두 올리고 다시 좀 전의 작업을 반복.
오히려 좋아진 결과.
시작은 정말 반이고 그 시작은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것이 확실하긴 한가 봅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50호의 캔버스 위에 무언가가 그려졌습니다.
제가 그린 무언가 가요.
그것은 제가 좋아하는 풀이었고, 제가 좋아하는 색채로 그려졌어요.
거의 대부분의 일은 겁을 먹었다가도, 해놓고 나면 에이 별거 아니었네 싶잖아요.
50호의 그림도 다 해놓고 보니 그랬습니다.
하면 되는 거였네.
이것도 역시 해봐서 아는 느낌이겠지요.
그렇게나 몇 개월이나 벌벌 떨어놓고 고작 한 번 해놓고서 부려보는 거만함, 이 역시 우스웠지만 정말 뿌듯하긴 했습니다.
여전히 엉망인 집구석이 며칠째 제자리로 내내 걸리지만, 살짝 눈 감고 모른 척하며 또다시 사라지는 기분을 위해 일단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 봅니다.
저의 소소한 도전이 언제 또 시작될지 모를 일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