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마지막 주 주말엔 날씨가 정말 좋았어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마음만은 두둥실 떠올라 밖으로 무조건 뛰쳐나가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늦잠은 손해라며 미안함을 무릅쓰고 애정 하는 누군가를 흔들어 깨워 계절의 온도와 하늘과 바람을 이른 아침부터 알리고 싶은 날이 몇 번 있는데, 지난 주말이 딱 그랬습니다.
/
지난주 토요일에 저는 책방연희에서 열린 황인찬 시인님의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북토크에 다녀왔습니다.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지난 편지에서 했듯, 좋아하면 궁금하고 더 다가가고 싶잖아요.
예전엔 그저 흘려 보았을 시 관련 행사에, 이제는 호기심이 생겨 클릭, 어떠한 것인지 그 안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게 되었고, 시간이 괜찮다면 해봐도 좋겠다로 마음이 서기도 합니다.
이것은 온라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오프라인 상황과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요.
우연히 지나가던 어느 가게 앞에 서서, 저건 뭔지 잘 모르지만 예쁘다 하며 가게 쇼윈도만 슬쩍 보았던 제가 이제는 저 안이 더 궁금해져 가게 문을 제 손으로 열고 들어가 그 안에 어떠한 것이 있는지 마음먹고 샅샅이 보게 된 것이죠.
내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는 안으로 들어가 봐야 제대로 알 수 있으니까요.
거기서 보석 같은 내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우연이어서 고맙고, 구경만 했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충분히 괜찮은 일이며 툭 가볍게 시도해 볼 만한 일입니다.
이번 기회로 또 다음에 들러볼 수도 있고요.
그렇게 알게 된 가게는 내 감각으로 발견한 소중한 곳이 되어 누군가에게 추천도 해줄 수 있고, 자랑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처럼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그곳이 어떠한 곳인지 제대로 잘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이 애매할 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면 얼른 클릭을 하고 신청해야 합니다.
제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보이지 않는 눈과 손이 저 너머에서 재빨리 클릭 클릭을 해 다른 사람이 다 낚아채버리고, 순식간에 마감이 되어 저는 아쉬운 사람이 되고, 그렇게 놓쳐버리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속이 좀 상합니다.
다행히 황인찬 시인님의 행사 글을 저는 따끈따끈하게 보았고, 보자마자 얼른 신청을 한 덕에 선착순 10명 안에 들게 되었죠.
(게다가 무료 행사였어요! 세상에...)
그렇게 나와 비슷한 마음을 한 사람들이 토요일 오전 11시에 서점에 모였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모여 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제게 정말 우아한 일이었어요.
황인찬 시인님은 방송으로 몇 번 접한 적이 있어 목소리와 말솜씨가 좋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말씀을 잘 하고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 1시간 넘게 가까이에서 시 이야기를 들려주니 기분이 참 묘했어요.
책방연희는 지하에 있어 빛이 인공조명밖에 없고, 여기는 이렇게 노란 조명이 켜진 아늑한 밤 같고 저문 저녁 같은데 밖은 너무 환하고 명백한 오전이고.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무슨 마음을 품고 왔을까 문득 알고 싶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런 이상한 궁금증과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무언가를 몰래 도모하는 기분도 들었고요.
시인님의 말에 집중했다가, 시인님의 말에 동의했다가 안 했다가, 잠깐 혼자 딴 세상에 갔다가, 그렇게 여럿이 함께이면서도 혼자인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은 아주 낯설기도 하면서 익숙하기도 했어요.
깊은 동굴 목소리를 내내 듣고 있다 보니 라디오를 듣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는 책에 소중히 사인을 받았습니다.
'책 사인'에 소신 발언을 해보자면 저는 작가분들이 신간을 내며 면지에 수천 장씩 수고롭게 사인한 책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소중한 한 권 한 권이고 그분의 흔적이 들어간 것이지만, 사인이란 게 작가든 유명인이든 그 누구든 내가 나의 이름을 말하고 그가 듣고 그렇게 적힌 내 이름이 들어간 사인에 저는 마음이 흔들리고, 그럴 때에야 비로소 진짜 사인을 받았다는 감각이 듭니다.
수많은 누군가 중 한 명이 되기보다 눈 마주치며 이름을 묻고 말하고 듣고 받아 적는 일대일의 순간.
그분에게는 스쳐 지나가더라도 내겐 남는 그 순간의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그 누군가를 만났을 때 여운으로 받는 사인을 저는 훨씬 더 좋아합니다.
그렇게 하여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책 면지에는 이런 사인이 남았어요.
내일의 사랑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혜련 님과
2022.8.27
황인찬
행사를 마치고 계단을 올라 나오니, 파란 하늘이 보이고 산뜻하고 선명한 오후 시간이 되었어요.
이럴 때엔 어디에 갔다가 현실 세계로 복귀한 느낌이 아주 쨍하게 들죠.
토요일 오전에 우아한 일을 하나 끝내놓아 하루가 뿌듯함으로 금세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이제 완전한 제 책이 되었고, 책 뒷이야기도 속속들이 들었기 때문에 이 책과 조금 더 친근해졌습니다.
주말 내내 저는 이 책을 가방에 넣고 다녔어요.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잘 읽지는 못했지만, 토요일 오전에 나눈 시의 시간이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
그렇게 이 책과 주말을 보냈습니다.
마법같이 그리고 또 공평하게 빛나는 주말은 지나갔고, 월요일부터는 다시 흐리면서 비가 내렸어요.
날씨는 아무 말이 없어요.
저는 그렇게 순식간에 달라지는 날씨, 그리고 책에 대해 생각했어요.
날씨와 책.
두 가지는 모두 말이 없어요.
말이 없어서 나는 이 둘에게 위로받고, 그래서 고마울 때가 많습니다.
내가 다가가면 이 둘은 그저 가만히 있어줘요.
내가 보려고 하면 보이고, 내가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아요.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만 보이고 들리고 열리는 세상인 것이 이 둘의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저는 흐린 월요일에도 도서관에 갔습니다.
다 읽지 못한 책이 집에 수두룩 한데도 대출 권수 다섯 권을 꽉 채워 빌려왔어요.
나는 중간에 이렇게 놔두고 금세 또 마음이 바뀌어 다른 책을 빌려왔냐고 타박하지 않는, 읽다만 책들, 기다려 주는 책들에게 고맙습니다.
흐린 날을 지나 오늘 날씨는 다시 또 해가 쨍쨍합니다.
이런 날씨가 앞으로도 몇 번이고 반복되겠죠.
오늘 레터를 쓰면서 사인받은 책을 다시 한번 펼쳐봅니다.
내일의 사랑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이 말은 참 좋은 말이구나 하며 다시 한번 문장을 곱씹어 보기도 하고요.
한 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돌이켜 보면, 이렇게 저는 아무 말 없는 날씨 속에서, 아무 말 없는 책들 사이에서 조용히 조용히 위로받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