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문득 조명에 대해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는 옥상 달빛의 라이브 북 콘서트를 다녀왔습니다.
두 분은 얼마 전 '소소한 모험을 계속하자'라는 책을 냈고, 신간 홍보를 위해 북 콘서트를 연 것입니다.
조명은 무대가 시작하기 전에는 관객을 환하게 비추다가, 행사 시작에 앞서 서서히 밝기를 낮춥니다.
조명이 비치는 위치는 관객석에서 무대로 바뀌었고, 까맣던 무대를 환하게 밝힙니다.
무대에 있던 가장 크고 화사한 노란 조명은 아무 때나 켜지지 않았습니다.
북토크의 흥을 돋우는 시작과 끝 공연에서, 혹은 새로운 사람이 등장할 때만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아주 반짝 켜졌어요.
조명이란 무대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조명 덕분에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조명에 따라 제 눈빛과 표정도 함께 바뀝니다.
콘서트뿐만 아니라 무대가 있는 모든 곳에서 조명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장면전환이 되어 배우와 무대가 바뀔 때 조명이 꺼지지 않고 환하게 켜져 있다면 얼마나 적나라할까요.
숨김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양은 썩 아름답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4호선 지하철을 타고 대공원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남태령역에서 선바위역으로 갈 때 하얗던 형광빛이 한꺼번에 주르륵 꺼지더니 아주 최소한의 조명만 덜렁 남겨졌습니다.
잠시 어두워진다는 어떤 안내 멘트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스마트폰을 집중해 보고 있어 몰랐나, 혹은 듣고 있던 음악 때문에 못 들었던 것일까요, 어쨌든 제게는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초행길이었던 저는, 순간 무슨 일이 있나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다른 승객들이 아주 태연하게 있는 걸 보니, 이 구간에서는 자주 있는 일인가 보다 하며 안심했지만 공공시설에서의 빛은 밝고 환해야 확실히 안전하다고 느끼는구나 싶었어요.
가끔 저는 그런 상상도 했어요.
만약 지하철의 빛이 하얀색이 아니라 노란색이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조금 더 따뜻해질까, 사람들의 눈빛은 달라질까.
대공원역으로 간 이유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가기 위해.
애정 하는 친구가 예매해 준 덕분에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을 보고 왔습니다.
전시장은 자주 보던 각진 곳이 아니었고, 둥근 원형의 형태로 바깥 원에는 회화 7점이 벽면에 걸려있고, 그 안쪽 원에는 피카소의 도자기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회화 작품이 적은 대신, 살짝 비치는 시폰 커튼이 드리운 공간 안에서 영상이나 전시 도록을 볼 수 있도록 휴식 공간을 여유 있게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작지만 포근했던 전시라고 해야 할까요.
그중 인상 깊었던 건 조명이었습니다.
전시장 안의 조명은 서서히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일정치 않은 조명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는데, 찾아보니 당시 거장들이 활동했던 파리의 분위기, 가로등이 켜진 노천카페를 연상할 수 있도록 설계된 조명이라고 해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특별한 공간의 전시장이 될 수 있을까에서 비롯된 고민의 결과겠지요.
친구들과 카페처럼 꾸며진 공간에 앉아 담소도 나누고 영상도 보고 도록도 보았습니다.
테이블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고, 의자는 폭신.
작품들은 이미 다 보았는데, 나가기가 싫었습니다.
반대로 이곳이 얼굴 잡티마저 모두 비추는 지하철 조명을 썼다면 더 있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오며 조명의 '조'는 인공적인 것을 뜻할까 싶었지만, 집으로 돌아와 조명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비칠 '조'를 쓰고 있었습니다.
비치다, 비추다, 밝다, 환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었어요.
북 콘서트에서, 지하철에서, 전시장에서의 조명들을 떠올립니다.
각자의 위치와 타이밍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조명들을.
대학 시절에는 조도를 실험해 보는 과제를 했었는데, 자료조사 차 방문했던 어느 식당에서 파란색 조명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파란색 조명이 비치는 음식 앞에서는 아무리 잘 먹는 우리도 입맛이 좀 떨어지더라,라는 조명 색의 중요성을 결론으로 냈던 리포트였죠.
조명의 역할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하며 조명을 의식하기 시작한 그때도 문득 떠오릅니다.
가끔 가지는, 지하철에 노란 조명이 켜져 있다면? 하는 상상은 제가 피곤하거나 차가운 분위기에서 느끼는 상상. 그래서 뭔가 위로받고 따뜻해지고 싶어서 하는 상상일 테고요.
때와 장소를 맞추지 못하는 조명은 얼마나 얼마나 이상하고 불편할까요.
조명은 참 중요합니다.
조명에 따라 저도 달라집니다.
시야와 기분이 달라지고, 안전과 불안을 느낄 수도, 이성과 감성을 오락가락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은 조명이 필요한 깜깜한 밤입니다.
제 머리 위에는 하얀 도자기에 파란 무늬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하얀 천장 조명이 켜져 있고, 제 등 뒤에는 스틸 소재의 노란 테이블 조명이 켜져 있지요.
편지에는 어떤 것을 담아야 좋은 것일까요.
하얀 쪽일까요, 노란 쪽일까요.
제대로 된 자리에서 알맞게 빛을 내면 좋을 텐데요.
방에 켜진, 색이 다른 두 조명처럼 오늘의 글도 참 뒤죽박죽인듯합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어떤 조명이 켜져 있나요, 어떤 때에 어떤 모양과 어떤 빛의 조명을 키나요, 어떤 것을 비추나요, 괜스레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