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림을 배운 곳에서 여러 작가님들과 수업을 마무리하는 전시를 하게 되었어요.
화요일엔 지금껏 만든 여러 작업들을 전시장으로 가지고 가서 자리를 잡고 못을 박고 수평을 맞추며 전시 설치를 했고요, 목요일엔 전시장에서 지킴이로 있었습니다.
사실 제겐, 전시가 이번 주의 가장 큰일이었지요.
오늘이 9월 마지막 날인 줄도 몰랐어요.
노트북을 켜니, 내일이 10월 1일이라고 알려주기에, 이거 에러인가 하고 느꼈을 만큼 요일과 날짜 개념 없이 붕 뜬 채로 지내고 있었네요.
그리하여 이번 56번째 편지는 금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사실 이런 이야기, 편지의 본성에 기대어 제게 있었던 일, 제 생각들만 들려드릴 수밖에요.
전시를 준비했고요, 설치했고요, 지금 전시 중입니다.
그래서 짠! 기쁜 얼굴을 하며 놀러 오세요, 보러 오세요!
라고만 할 수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
전시 외에 그 어떤 것도 끄집어 낼 수가 없어 이럴 때엔 휴재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싶지만 저는 다시 고민합니다.
휴재가 맞는 걸까,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맞는 걸까.
지난주의 나는 다음 주의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올망졸망한 완두콩 같은 것들을 줍지 못한 한 주를 지냈을 때,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저는 약속이라는 후자를 택했고, 그저 이 소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렵니까...의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단체전이 처음이었던 저는, 일의 명확한 프로세스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모른 채, 앞서거니 뒤서거니 앞으로 옆으로 몸도 마음도 마구마구 흔들리며, 갈팡질팡했어요.
화요일 전시 설치는 5시간이 걸렸고, 집에 오니 두통이 오고 발바닥이 아프더라고요.
그러고는 그 밤 집에 와 약간 눈물바람 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힘들었던 것, 애써 참아낸 것, 모른 척 지나온 것, 전시 후를 생각하며 버텨온 것.
여러 사람들과의 쉽지 않은 조율, 서로 잘 맞지 않는 예민한 부분, 쌓여가는 이해와 오해, 텍스트만으로는 잘 알 수 없는 상황, 모두 좋은 마음으로 모였지만 같은 목표 안에 다른 의견들로 벌어지는 미묘한 마찰과 삐걱거림, 각자 가지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 속에서 일어나는 날카로운 반응들.
써도 되지 않을, 쓰고 싶지 않은 이상한 곳에서 에너지가 나가고 그래서 쓸데없이 자주 지치고, 그 와중에 저는 정신도 체력도 탈탈 털립니다.
이럴 때 보면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주 약한 사람인 것이 티가 나버려서 스스로가 조금 움츠러들고 실망스러워요.
좀 강한 사람이 되면 좋을 텐데, 이런 일쯤 별일 아니라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 가볍게 넘기면 될 텐데, 하고 말이에요.
얼마 전에는, 기쁜 일도 있었는데요.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오임무(오지은과 임이랑의 무슨 얘기)'에 임이랑 작가님의 신간 홍보 영상이 올라왔고, 거기에 기대평을 남겨주는 5명을 추첨해 선물로 책을 주는 댓글 이벤트가 열렸더랬죠.
저는 평소 좋아요만 누르며 조용한 관람자로 지내다가 선뜻 용기 내어 댓글을 남겼고, 운 좋게 당첨이 되었습니다.
임이랑 작가님의 신간은,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이 책이 도착했을 때, 읽고 싶어 사둔 책들은 후 순위로 밀려났고, 작고 큰 불안을 달고 사는 저는 선물로 도착한 이 책을 꼭 껴안고 쉼표의 순간에 많은 부분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괜찮으면 괜찮은 거다."
저는 이 말을 곱씹어 보다가, 반대로도 생각합니다.
지금 내게 온 상황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에 대해서요.
'아,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안 괜찮으면 안 괜찮은 거겠구나.'라고요.
설치를 마치고 온 화요일 밤, 저는 일기를 썼습니다.
기대보다는 걱정과 불안에 초점이 맞춰졌던 제 마음에 대해.
어색함과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던 그날에 대해.
괴로운 마음을 휘갈기듯 쓰다가, 저는 그날, 그리고 지금껏 일어났던 어떤 사실이 보였습니다.
카메라 초점을 맞추듯 중요한 것에 초점을 다시 맞추어보니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데, 제 옆에 있어 주었던 소중한 사람들이 보였어요.
제게 보내준 애정과 마음이 느껴졌어요.
정작 나는 실체 없는 어떤 감정을 스스로 크게 만들어 더 괴로웠던 것이 아닐까.
내 사진첩에 담을 사진을 찍는다면 중요하지 않은 배경은 뿌옇게 날리고 내게 소중한 그들을, 사진에 담기지 않는 그 고마운 마음에 초점을 맞추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잖아.
나를 응원해 주잖아, 격려해 주잖아.
사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괜찮은 척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사실 내가 안 괜찮으면 안 괜찮은 것이었고, 그 마음을 솔직히 털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그렇게 나는 점차 나아지고 진짜 괜찮아질 수도 있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임을 다시 한번 알아챈 밤이었습니다.
힘들 때엔 그런 진심만을 기억하자고 다짐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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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이 되었을 때, 나만의 평온한 주말이 찾아온 듯했습니다.
많은 감정들이 저를 휩쓸고 간 그날 아침이 참 고요했습니다.
지금껏 많은 일을 겪은 건 아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어떤 또 하나의 강을 건넌 것 같았어요.
사람은 이렇게나마 조금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일까요.
지치고 다시 힘을 내고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다가 결과적으로는 다행히도 뿌듯한 일이 되었을 때, 그렇게 찾아오는 나만의 개운함이 좋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저는 다음날의 지킴이 때, 방문객분들에게 드릴 사탕을 사러 나갔습니다.
외출의 목적은 사탕.
사탕을 사러 가는 길,이라니 너무 귀엽다고 생각해서 외출하는 길이 참 가볍고 즐거웠어요.
저는 제가 참 어렵고 또 쉬운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고되었던 과정의 끝에 그럼에도 제게 남겨진 좋은 부분, 제게 선한 것을 주는 사람들과 마음에 또렷한 초점을 두는 현명한 사람으로 거듭나보려고 합니다.
그러고는
잘했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그러면서 내가 내게 괜찮다고 나 스스로를 토닥여 주며 스스로에게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도 되어봅니다. 🙌